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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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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행위 자행한 정부

등록 2012-04-04 09:57 수정 2020-05-03 04:26

미국의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상반된 역사적 평가를 받는다. 긍정적 평가는 미-중 수교로 탈냉전의 물꼬를 튼 점에 맞춰져 있다. 반면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임기 중 퇴진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닉슨에게 안겼다. 이 사건은 1972년 닉슨 대통령 쪽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사실이 발각되고도 증거 조작과 수사 방해를 일삼다 의회의 탄핵을 받은 일련의 과정을 일컫는다.
40년 전 남의 나라 이야기를 되짚는 건, 이명박 정부의 ‘전 국민’ 사찰 때문이다. 두 사건은 닮았다. 그런데 두 나라 국가기구의 대응은 천양지차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 일간지 의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딥 스로트’(내부고발자·훗날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 마크 펠트로 밝혀졌다)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실체를 고발했다. 언론과 고위 공직자의 고발로 닉슨의 위헌적 범죄행위는 만천하에 까발려졌다. MB 정부 사찰의 경우 2010년, 피해자 김종익씨의 고발로 실체의 한 자락이 드러났으나 검찰과 법원의 덮어주기식 수사·재판으로 은폐의 늪에 잠겼다. 그러나 진실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는 법. 뒤늦긴 했으나 의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인멸 지시’ 단독 보도(901호 표지이야기), 팟캐스트 가 전한 장진수씨의 고발, 한국방송 새노조의 팟캐스트 의 사찰 파일 내용 보도 등으로 망각의 수렁을 빠져나왔다. 국가기구의 외면 속에 시민과 하위 공직자, 언론의 고발이 이뤄낸 성과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 미국 의회와 사법부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려 분투했다. 연방재판소는 행정부의 압력을 뿌리치고 사건 관련자들에게 중형을 내려 진실의 편에 서려 했다. 상원 워터게이트 특위는 청문회 등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헤쳤다. 하원 사법위원회는 1974년 7월 세 차례에 걸쳐 탄핵안을 가결했다. 사법 방해(1차), 권력 남용(2차), 의회 모독(3차) 등이 탄핵의 근거였다. 닉슨은 1974년 8월8일 TV 연설을 통해 사임을 발표했다. 미국 정치사의 오점인 이 사건이 미국 민주주의 시스템의 힘을 보여준 사건으로도 기억되는 까닭이다.
한국 사회를 거대한 파놉티콘(원형감옥)으로 만들려 한 이명박 정부의 무차별적 사찰에 비하면, 워터게이트 사건은 새 발의 피다. 전 국민을 범죄자로 취급하며 ‘언제 어디서나 감시당하고 있다’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사찰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뿌리부터 갉아먹는 ‘이적 범죄’다. 행정부의 ‘이적 행위’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의 검찰과 국회, 법원은 지금껏 나 몰라라 했다.
한국에서 사찰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하지만 진실의 전모가 드러난 적도, 정의가 바로 선 적도 없다. 예컨대 1990년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 때 고발자인 윤석양 이병은 2년간 감옥에 갇혀야 했다. 반면 사찰의 배후인 노태우 대통령은 보안사령관 경질로 꼬리를 자르고는 며칠 뒤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 선포라는 공포정치로 진실을 덮으려 했다.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이 삼청교육대로 한국 사회를 공포의 수렁에 밀어넣으려 한 것처럼.
21세기 한국 사회를 중세의 공포정치 시대로 역주행시킨 MB는 전두환·노태우의 전례를 따라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떵떵거리며 살게 될 것인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이 백척간두의 시험대에 섰다.
이제훈 편집장
*사찰 대상에 전임 편집장을 포함시킨 이명박 정부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 진실의 전모를 파헤칠 때까지 경각심을 잃지 말고 긴장하라는 배려로 받아들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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