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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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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오고 있다

등록 2012-02-01 10:34 수정 2020-05-03 04:26

토지는 생산할 수 없다. 냉장고처럼 공장에서 만들 수 없고, 벼처럼 논에서 기를 수 없다. 자연이다. 상품 일반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토지의 이런 본성은, 모든 것을 상품으로 전환시키는 자본주의와 상충한다. 헨리 조지 등 많은 이가 토지공개념을 제기한 까닭이다.
정보는 토지와 정반대의 본성 탓에 상품 일반과 다르다. 빵은 반으로 자르면 절반으로 줄고 스마트폰은 쪼개면 못 쓰게 되지만, 정보는 쪼개도 훼손되지 않고 줄지도 않는다.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 원하는 누구든 나눠쓰고 공유할 수 있는 ‘무한 공공재’다. 원본과 복제본의 구분도 무의미하다. 많은 이들이 정보 독점에 반대하며 정보공유운동을 벌이는 까닭이다.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제를 필수 전제로 한다. 모든 것, 심지어 사람(노동력)조차 상품화해 사적 소유제의 그물망에 가두려 한다. 토지와 정보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토지와 정보는 그 공공재적 본성 탓에,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제에 얽히면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각국 경제와 시민의 삶이 부동산 투기 탓에 휘청거리는 근원엔 부자의 탐욕뿐만 아니라 토지의 ‘증식 불가능성’이 놓여 있다.
정보의 경우엔 ‘자유로운 공유’와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미명 아래 절대적 사적 소유권을 추구하는 세력 사이의 투쟁이 치열하다. 미국에서 ‘온라인저작권침해금지법안’(SOPA)과 ‘지적재산권보호법안’(PIPA)을 둘러싸고 벌어진 힘겨루기가 최근의 대표적 사례다. 두 법안은 ‘콘텐츠 해적질’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특정 웹사이트를 차단하거나 링크를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법 복제의 최대 피해자를 자처하는 할리우드 등 영화·음반 업계가 지지하는 반면에 구글·페이스북, 위키피디아 등 플랫폼 제공자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인터넷 검열’이라며 반대해왔다. 이 와중에 미 의회가 입법을 강행하려 하자, 위키피디아 등이 1월18일 ‘블랙아웃’(서비스 중지)이라는 극단적 온라인 시위를 벌였다. “자유로운 지식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으십니까?”라며 시민의 반격을 ‘선동’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24시간 동안 폐쇄된 위키피디아 영문판 페이지에 1억6200만여 명이 방문했고, 법안 찬성 의원들의 누리집이 밀려드는 항의글에 잇따라 다운됐다. 화들짝 놀란 의원들의 법안 지지 철회가 줄을 잇자,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1월24일에 하겠다던 법안 표결을 미뤘다.
‘인터넷 검열’은 한국에선 이미 일상이다. 북한 관련 사이트는 접속 자체가 불가능하고, 지적재산권 보호 등을 이유로 웹사이트와 링크가 차단·삭제당하는 일도 적잖다. 미네르바 사건, 박정근씨 구속 등은 빙산의 일각이다. 모두 국가보안법 등 ‘법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야만이다.
위키피디아 등은 ‘블랙아웃’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누구나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열린 인터넷’을 유지하려면, 그를 뒷받침할 법적 기반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경제가 사회를 잡아먹지 못하도록 방파제 노릇을 할 적절한 법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저명한 경제사가 칼 폴라니식으로 말하자면, ‘악마의 맷돌’이 돼버린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경제를 이제 다시 ‘사회 속에 되묻어가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인간의 의식적인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갈등은 법과 제도로 수렴한다. 아울러 법과 제도의 해석과 집행이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영화 에 대한 대중의 뜨거운 반응은 ‘사법 불신’의 반사경이다. 삼각김밥과 순대·빵 따위까지 집어삼킨 재벌의 무한 탐식은 ‘경제가 사회를 잡아먹은’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고 했던가. 여명과 함께, 시민들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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