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728호 표지에서 미국발 금융위기를 다루면서 ‘탐욕의 날갯짓-한국 소시민에게 몰아친 월가 나비효과’라는 제목을 달았다. 같은 주에 나온 미국 시사주간지 의 표지 제목도 ‘탐욕의 대가’(The Price of Greed)였다. 이번 금융위기를 다루며 두 시사주간지가 뽑은 열쇳말이 일치하는 걸 보면 분명 문제는 탐욕이다.
최초의 탐욕의 날갯짓이 어떻게 이런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키게 됐는지, 그 과정은 여전히 선명한 채색화로 그려지지 않을 만큼 복잡하기만 하다. 그러나 탐욕의 예기치 않은 나비효과는 만물의 이치인 듯싶다. 박찬열 국립산림과학원 박사의 설명을 듣자면, 숲에 있는 도토리를 지나치게 채취하면 평소 이를 즐겨먹던 멧돼지 등 들짐승이 먹이 부족을 겪게 되고 결국 농가로 내려와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한다. 다람쥐나 청설모 같은 작은 생명들도 더 추운 겨울을 나야 한다는 점은 제쳐두더라도 말이다.
최근에도 탐욕이란 단어가 화제가 됐다. 보수 논객인 소설가 복거일씨는 최근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이 마련한 포럼에 참석해 “이명박 대통령이 총리 역할을 제한하고, 그러다 보니 각료 임명하는 데 실정 법규를 어긴 사람들이 많이 들어갔다. 이 대통령은 탐욕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런 대통령과 내각이니, 발표하는 정책마다 부유층 세금을 깎아주고 그린벨트를 없애고 복지는 축소하는 식이다. 가뜩이나 아파트 입주자들이 돈 몇백원, 몇천원씩 아끼자고 경비 노동자를 잘라내는 시절이다. 탐욕의 부채질인가.
따지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내는 배경엔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다. 자녀 교육에 대한 불안감, 노후에 대한 불안감, 사고를 당하거나 큰 병에 걸렸을 때에 대한 불안감…. 그런 불안을 국가나 사회가 흡수해주지 못하니, 겨울잠을 준비하듯 닥치는 대로 먹어둬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쪽에선 음식을 버릴 정도로 배부른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한쪽에선 아이들이 굶주리는 비극이 벌어진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프랜시스 무어 라페는 지구 한켠에선 풍요가 넘치는데 다른 한켠에선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지구의 모순에 천착했다. 그는 에서 끊임없이 부가 집중돼 결국 경쟁이 성립할 수 없게 되는 시장경제와, 이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허약한 민주주의를 그 원흉으로 지목한다. 그가 대안으로 내놓는 것은 부와 결탁한 권력을 더 많은 시민들에게 분산시키는 민주주의의 복원이며, 이를 통해 사회적 자원 또한 더 널리 나누는 방식이다. 10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예산안 짜기에 참여해 빈곤층에 더 많은 예산이 돌아가도록 한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리 등 수많은 사례도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탐욕 조절장치를 고안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호 ‘보도 그 뒤’에 소개하는 이야기도 아주 작은 탐욕 조절장치에 대한 것이다. 감단직 노동자(감시적·단속적 노동자를 줄인 말로, 아파트 경비원 등을 지칭함) 착취 문제를 다룬 725호 기사를 읽고 경비원을 더 이상 줄이지 않기로 한 오피스텔 사람들 이야기다. ‘인권 OTL’에 나오는 일본의 공교육 혁신 프로그램도 비슷한 색감의 기사다.
민주주의는 급격히 후퇴하고 금융위기의 후폭풍은 온 세계를 덮치는 요즘, 라페의 분석과 제안은 피부로 파고든다. 폐허가 된 골짜기를 지나는 선지자처럼 우리는 탐욕에 대항하는 방법을 명상해야겠다.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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