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왔어요. 자신을 비엘(BL)이라고 한 제보자는 북극곰이 매년 다이빙대회를 연다고 했어요. 북극곰이 바다얼음 사이로 수영을 잘한다는 건 널리 알려졌지만, 다이빙이라니요? 뚱뚱한 북극곰이 다이빙하면 폼도 안 날 텐데… 점수나 매길 수 있으려나요? 여하튼 눈으로 보기 전까지 진실은 알 수 없는 법이죠.
조사반은 비행기를 타고 북극해 스발바르제도로 날아갔어요. 인간의 최북단 정주지죠. 한겨울이라 꽁꽁 언 바다가 섬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다시 헬리콥터로 갈아타고 북극곰을 찾아다녔죠. 그런데 북쪽으로 한 시간쯤 날아갔을까,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얼음 한가운데 개빙구역(開氷區域)이 있었어요. 마치 작은 호수 같았어요. 거기서 낚시하는 사람처럼 북극곰이 조용히 앉아 있지 뭐예요.
“저기, 혹시 다이빙하는 북극곰 보신 적 있어요?”
“쉬잇~.”
갑자기 얼음 호수에서 하얀 고래 여러 마리가 올라왔어요. ‘벨루가’라고도 부르는 흰고래였죠. 북극곰은 놓칠세라 바다에 뛰어들었어요. 첨벙! 벼락같은 다이빙에 우리는 물벼락을 맞았죠.
“헐! 너희 때문에 허탕 쳤잖아!”
우리는 자초지종을 얘기했어요. 북극곰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죠.
“금방 보질 않았나? 우리 북극곰은 원래 다이빙할 줄 안다오. ‘기후변화 때문에 북극곰이 먹을 게 없어서 흰고래를 먹기 시작했다’고 인간들이 떠들고 다니는 모양인데, 우리는 옛날부터 이렇게 다이빙하며 흰고래를 사냥했다네.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쳤고, 어머니의 어머니가 어머니에게 가르쳤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잠깐만요. 근데 아저씨 다이빙 실력은 형편없던데요.”
“북극곰 교과서를 보시오. 뭐라고 나오는지.”
북극곰은 일반적으로 바다얼음에서 물범을 사냥합니다. 바다얼음은 시시각각 붙었다가 떨어지며 움직이는데, 북극곰의 핵심 사냥 구역은 얼음과 바다가 만나는 곳입니다. 물범이 얼음 위로 올라가 쉬고 있을 때, 북극곰이 몰래 다가가 덮치지요. 물론 북극해를 돌아다니다보면 광활한 사막처럼 바다얼음이 끝없이 펼쳐진 곳에 들어서기도 하죠. 그러다가 이렇게 호수처럼 작은 개빙구역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거기서는 흰고래를 기다립니다. 흰고래는 폐로 호흡하는 포유류여서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얼음이 녹은 곳으로 가기엔 너무 멀어, 이런 호수에서 숨 쉬며 얼음 지형이 바뀌기를 기다리죠.
하품하던 북극곰이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물론 흰고래 사냥이 우리 주업은 아니지. 사냥감이 정 없을 때나 재미로 하는 거지. 캐나다에 있는 북극곰이 새 다이빙 방법을 개발해 교육한다는 얘기는 들었소.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북극곰 사냥 워크숍’이라던가?”
“그 워크숍이 어디서 열리는데요?”
“나야 모르지. 지난해 그린란드에서 만난 북극곰이 그러더군.”
우리는 연구소로 돌아와 문헌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생물종을 처음 조사할 때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이나 해양포유류백과사전 같은 사전부터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북극곰은 광활한 북극해를 중심으로 흩어져 삽니다. 어미가 새끼를 기르는 2~3년을 빼고는 단독 생활을 합니다. 지구에서 가장 고독한 동물이죠. 게다가 워낙 외딴 서식지에서 낮은 밀도로 서식하기 때문에, 개체수를 추정하는 연구 같을 걸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어려워요.
그래도 현재까지 정리된 바에 따르면, 북극곰은 모두 19개 지역의 개체군으로 나뉩니다. 북극해 정중앙인 북극분지를 비롯해 배핀만, 축치해, 데이비스해협, 동그린란드, 랭커스터해협 개체군 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들 집단이 사자나 길고양이처럼 자기 영역을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건 아닙니다. 그 지역을 중심으로 다른 곳까지 넓게 오간다는 거죠. 북극곰 한 마리의 서식 영역은 좁게는 2만㎢에서 넓게는 20만㎢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두 배 정도의 면적이에요.
기후변화에 따른 북극의 바다얼음 감소는 북극곰의 사냥에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북극곰은 바다얼음을 무대로 물범을 사냥하니까요. 바다얼음 감소에 따라 19개 개체군 가운데 서부 허드슨만과 남부 보퍼트해 개체군에서 개체수 감소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하더군요. 반면 바다얼음 감소에도 안정적인 개체수를 보이는 개체군도 있고, 자료 부족으로 판단하기 힘든 곳도 많다고 합니다. 그때 조사반원이 소리쳤습니다.
“반장님, 이 대목을 보세요. 혹시 워크숍이 열린다는 곳이 여기 아닐까요?”
그가 백과사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철 바다얼음이 완전히 사라지는 캐나다 허드슨만과 배핀섬 남동부에서는 북극곰이 몇 달 동안 해안가에 머문다. 반면 바다얼음이 멀리 북극해 해분(Arctic Basin)까지 후퇴하는 축치해, 남부 보퍼트해, 스발바르제도에서는 북극곰이 몇 달 동안 바다얼음에서 머물기도 한다.’
“그렇다면 북극곰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얘긴데, 바로 거기서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사냥 워크숍이 열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 캐나다 허드슨만이라면 저번에 ‘다이어트약 먹는 북극곰 사건’으로 조사 나갔던 곳 아닌가? 일단 거기로 가봐야겠군.”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이 캐나다 허드슨만 처칠에 도착한 것은 그해 7월이었습니다. 처칠의 여름은 따스했습니다. 북극곰 관광객으로 붐볐던 지난가을만큼은 아니었지만, 흰고래를 보러 온 사람들로 마을은 북적였지요. 허드슨만 앞바다는 온화한 파도가 쳤지요. 한겨울 북극 바다를 누비던 서부 허드슨만 개체군의 북극곰도 처칠 인근으로 다 돌아온 뒤였습니다.
허드슨만 북극곰에는 크게 두 집단이 있습니다. 처칠 주변에서 허드슨만 서쪽까지 분포하는 서부 허드슨만 개체군, 허드슨만 동쪽으로 온타리오주 북극곰주립공원까지 분포하는 동부 허드슨만 개체군입니다. 한겨울 북극해에서 벌인 사냥으로 배가 빵빵해진 두 개체군은 허드슨만 바다가 녹는 5~7월 육지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바다가 어는 10~11월 다시 북극해로 긴 사냥 여행을 떠나지요.
처칠 동쪽 와푸스크국립공원에서 산딸기를 따는 북극곰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북극곰이 산딸기도 먹나요?”
“허드슨만 북극곰은 여름에는 채식도 합니다. 바다에선 미역도 따먹습니다.”
“차라리 여름에도 얼음이 있어 물범을 사냥할 수 있는 북극의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시지, 여기서 왜 힘들게 머물고 계십니까?”
“그럼, 당신은 따뜻한 캘리포니아에 가서 살지 그러나? 그렇게 못하는 이유는 누구나 고향이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 허드슨만의 북극곰이야말로 2만6천 북극곰 가운데 가장 다재다능한 사냥꾼이라오. 인간들은 우리가 기후변화 때문에 채신머리없게 산딸기를 먹는다고 그러던데, 천만의 말씀! 우리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살아왔다오. 한여름 육지에 머물 적에는 카리부(순록의 일종), 토끼, 새알, 미역 다 먹지. 무엇이든 다 사냥하고 다 채취해 먹을 수 있다는 것, 그게 우리의 자부심이야.”
“혹시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북극곰 사냥 워크숍’을 들어보셨습니까?”
“워크숍은 모르겠고, 다이빙 연습하는 북극곰들은 잘 알지. 물범의 강(Seal River)으로 가보시오.”
그가 알려준 곳은 처칠에서 해안가를 따라 서북쪽으로 60㎞ 떨어진 지점에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자, 물범의 강과 허드슨만이 만나는 기수역(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서 헤엄치는 하얀 돌고래떼가 나타났습니다. 흰고래였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북극곰 여남은 마리도 해안가에 있었다는 사실이죠. 이곳의 리더로 보이는 북극곰이 망원경으로 흰고래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인간은 북극곰이 흰고래를 사냥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지. 지금도 기후변화 때문에 우리가 갑자기 흰고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야. 우리는 1만1250년 전 홀로세부터 육상 사냥을 했다오. 처칠 마을에 놀러 갔다가 감옥에 갇힌 북극곰이 육상 사냥법을 알려줘서 과학자들이 논문까지 썼다고 하던데, 아직도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2017년 <미국박물관수련>(American Museum Novitates)에 게재된 이 논문은 서부 허드슨만 개체군의 여름철 사냥법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먼저 ‘쫓기’(chasing)입니다. 북극곰은 큰기러기 무리를 쫓아서 버드나무나 자작나무 숲에 일시적으로 가둔 뒤, 여러 마리를 사냥합니다. 둘째, 몰래 다가가기(stalking). 알을 품은 기러기에 몰래 다가가 잡아챕니다. 어미 기러기는 알을 두고 도망가지 않거든요. 셋째, 매복(ambushing). 카리부떼가 지나갈 때 키 큰 관목 뒤에 숨었다가 대열의 맨 끝 동물에게 돌진해 잡아 뭅니다. 넷째, 청소부처럼 쓸어담기(scavenging). 조수간만의 차로 바위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를 쓸어 먹습니다. 쇠솜털오리 등 다양한 새의 알을 먹어치우지요.
“이런 것 말고도 최신 사냥법을 가르친다고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는 거야. 아주 영리한 방법이지.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다얼음 기반의 사냥 전략과 동일해.”
그때 북극곰이 하나둘 바닷가 바위 위로 올라갔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밀물이 찼고, 바위는 이내 조그만 바위섬이 되어 머리만 드러냈습니다. 수심이 깊어지자 멀리 있던 흰고래떼가 다가왔습니다.
“지금이야, 입수!”
리더 북극곰이 소리치자, 바위섬에서 기다리던 북극곰들이 일제히 흰고래를 향해 뛰어들었습니다. 작살처럼 몸을 날려 다이빙했죠. 하지만 누구도 흰고래를 잡진 못했죠.
“쉽지는 않아. 그래도 배고픈 여름철에 해볼 만한 시도야.”
“언제 이 사냥법을 개발하신 건가요?”
“나도 누가 언제 개발했는지는 몰라. 2014년에 처음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전일 수도 있지.”
“기후변화 때문에 이런 사냥법을 가르치시는 겁니까? 갈수록 바다얼음이 줄어들고 있어서요?”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지. 먼저, 우리가 벼랑에 몰리듯이 뒤쫓겨 얼음이 없는 내륙에서 흰고래를 잡는 건 아니야. 아까 말했잖나? 우리 허드슨만 북극곰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육상 사냥을 해왔다고. 일부 다큐멘터리에서는 마치 우리가 바다얼음이 없어 허겁지겁 육상 사냥을 시작했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그건 사실이 아니야. 우리는 새로운 사냥법을 개발하고 새끼와 동료에게 전파한다네. 바로 문화라는 거지. 오직 인간에게만 문화가 있다는 건 허황된 이론이야.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어. 일본원숭이는 고구마를 물에 씻어 먹고, 혹등고래는 노래를 부르지. 물론 앞으로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바다얼음이 줄어들면, 이런 사냥법이 더 자주 필요해질걸세. 그래서 이렇게 내가 워크숍을 열고 가르치는 거야.”
밤 9시가 돼도 해는 지지 않았습니다. 제아무리 최고의 수영선수인 북극곰도 바닷속에서는 흰고래를 당할 길이 없습니다. 백야의 하얀 햇살 속에서 북극곰은 다이빙을 계속했습니다.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연재 설명: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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