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조사반은 곧바로 현장 조사에 들어갔어요. 서울에서 비둘기가 많이 모인다는 남산공원, 여의도공원을 찾아 헤맸지요. ‘구구구’ 하던 비둘기들은 ‘스페인 비둘기’ 이야기를 듣자 ‘그게 뭥미?’ 하는 표정을 지었어요.
조사반은 한때 서울시청 옥상에 살며 서울올림픽 개막식에도 나갔다는 비둘기계의 대부 ‘호둘기’의 후손인 ‘뼈둘기’를 찾아갔어요. 미국 백악관의 비둘기파와도 사돈 관계인 뼈대 깊은 가문에서 자랐죠.
“암, 그렇고말고. 우리 조상은 맹금류인 매와도 맞짱을 뜨는 훌륭한 비둘기들이었지. 그나저나 비둘기가 스페인에서 날아온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우리가 운영하는 피전피디아에 따르면, 1931년 프랑스 아라스에서 베트남 사이공까지 왔다 갔다 한 비둘기가 있어. 자그마치 24일 동안 1만1600㎞를 비행한 거지.”
왓슨 요원이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믿기지 않는데요.”
“인간과 함께하는 ‘경주용 비둘기’가 수백~수천㎞를 비행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은 아니라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만 해도 목포 유달산에서 서울까지, 서울에서 일본 오사카까지 비둘기 경주가 열렸어. 어쨌든 스페인에서 한국까지 왔다 하더라도, 인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건 사실일세.”
조사반은 탐문을 계속했어요. 모이 주워 먹느라 바쁜 비둘기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죠.
“나야말로 스페인에 가고 싶군.”
“난 산비둘기야. 집비둘기한테 물어봐.”
“난 한국 비둘기야. 다른 나라 비둘기한테 물어봐. 아! 맞다. 강남 자라 매장 앞에서 스페인 비둘기를 봤어!”
조사반은 곧장 강남으로 달려갔습니다. 과연 자라 쇼윈도 앞에서 비둘기들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혹시 스페인에서 오셨어요?”
자라 매장 앞에서 자고 있던 비둘기들이 깜짝 놀라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불법 이민 단속반이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홈스와 왓슨이 비둘기들을 안심시키자, 한 비둘기가 나서서 사정을 이야기했어요.
“네. 우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왔어요. 향수병 때문에 스페인 패션 브랜드 자라 매장 앞에 와 있어요. 바르셀로나에는 먹이 주는 사람도 참 많았는데. 한국은 참 매정하네요.”
스페인 비둘기는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스페인에서 여기까지 날아왔다고요? 경주용 비둘기가 아니면 그렇게 귀소본능을 정확히 발휘해 먼 거리를 찾아갈 수 없어요. 우리는 거리의 보잘것없는 청소부일 뿐인걸요. 사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왔어요. 비싼 카나리아인 양 온몸에 물감을 칠하고 비행기 화물칸을 탔죠.”
“왜 한국에 온 거죠?”
“어느 날 ‘진짜동물해방전선’(Real ALF) 소속이라는 긴 머리의 젊은 남성이 바르셀로나에 나타났어요. 그는 인간이 몰래 불임약을 먹여 전세계 비둘기 종을 전멸시킬 것이니, 일단 안전한 한국으로 피하라고 했죠. 서울과 부산의 공원에는 비둘기 모이 주는 착한 사람이 많다고….”
조사반은 바르셀로나에 갔습니다. 지중해를 비추는 따뜻한 햇볕에 비둘기들도 편안해 보였지요.
도심 광장이었습니다. 오후 3시가 되자 성당의 종이 울리고, 쓰레기통처럼 보이는 원형 통에서 총알이 나오듯 옥수수알이 쏟아져 나왔어요. 비둘기가 몰려들었습니다.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자동급여기였죠. 그리고 거기엔 불임 약물이 섞여 있었고요.
“이렇게 먹이를 주다니. 드디어 인간들도 평화가 무언지 깨달았군.”
왓슨이 가서 비둘기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불임약이 섞인 건 아세요? 이거 먹으면 당신은 알을 낳을 수 없어요.”
“정말요?”
반면에 이 사실을 잘 아는 비둘기도 많았습니다.
“난 여자친구 사귈 때는 근처에 얼씬도 안 해요. 애벌레 같은 자연 음식만 먹죠. 그러면 알을 낳을 수 있어요. 잘 조절하면 돼요.”
불임 모이는 효과가 있을까요?
시 당국이 시내 34곳에 자동급여기를 설치하고 비둘기 중성화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17년이었습니다. 이 사업을 모니터링한 대학교수 ‘비둘기맨’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나이카바진(Nicarbazin) 성분이 든 오비스톱이라는 약입니다. 원래는 닭이나 칠면조의 구충제로 쓰였는데, 가금류의 산란과 부화를 억제하는 기능이 알려진 거예요. 하루에 10g씩 닷새 이상 먹으면 피임이 시작됩니다. 며칠간 안 먹으면 약 효과가 없어지고요.”
홈스 반장이 물었어요.
“그래서 바르셀로나 비둘기 과밀 문제가 좀 해결됐나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평가해보니, 최대 55%의 개체수 감소 효과가 나타났어요. 어린 비둘기의 비중도 현저히 낮아졌고요.”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갑자기 성난 목소리가 들려서 뒤돌아보니, 장발의 젊은 남성이 서 있었어요. 그는 자동급여기로 걸어가더니 전원을 껐죠.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장발남은 큰 소리로 외쳤어요.
“비둘기에게도 권리가 있습니다. 불임 모이는 그 권리를 빼앗는 겁니다.”
비둘기맨이 반박했어요.
“이데올로기에 빠진 짧은 생각입니다. 불임 모이야말로 비둘기의 권리를 생각합니다. 도시에 너무 많은 비둘기가 살다보니 먹이 경쟁이 치열해져 삶의 질이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기후위기는 비둘기 과밀화를 악화합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겨울이 온화해지면서 비둘기 개체 수가 급증했습니다. 부화율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비둘기에 대한 인식이 나빠져 모이 주던 사람들도 몰래 주는 형편이에요.”
비둘기맨의 말에 장발남이 피식 웃었습니다.
“비둘기가 줄어든 진짜 원인이 뭔지도 모르고, 뭐든 다 기후위기로 둘러대는군요. 동물의 권리란 단순히 고통을 받지 않을 권리뿐만 아니라 동물이 즐거움과 평화, 경이로움 같은 감정을 느끼고 미래를 계획하는 것까지 포함되는 겁니다. 새끼를 낳고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권리가 비둘기에게도 있단 말입니다!”
장발남은 더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습니다. 왓슨은 장발남이 바르셀로나의 비둘기를 한국에 이민 보낸 ‘진짜동물해방전선’ 활동가일 거로 생각했습니다.
장발남이 없어지자 비둘기맨도 흥분이 가라앉는 듯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도시에는 비둘기, 쥐 같은 청소부 동물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비둘기의 번식을 막아야 그들이 권리를 제대로 누릴 수 있어요. 여러 도시에서 불임 모이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죠. 한국에서도 논의 중이라던데….”
한국에서 비둘기 불임 모이 사업을 추진하는 이들은 동물단체였습니다. 이들을 이끄는 이는 인천의 ‘비둘기 할아버지’였어요. 한국에 돌아온 조사반은 그를 만났습니다.
“내가 길고양이를 몇 년 동안 돌보며 밥을 줬소. 그런데 비둘기가 날아와서 빼앗아 먹는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비둘기 처지에서 한번 생각해본 거요. 도시에서 얼마나 살기 힘들까, 비둘기도 길고양이처럼 중성화하면 어떨까….”
왓슨은 장발남의 말이 생각나서 물었습니다.
“불임 모이가 비둘기의 권리를 침해하는 건 아닐까요? 비둘기도 새끼를 낳고 기르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텐데, 그것을 앗아가는 거잖아요.”
“순진한 생각입니다. 비둘기들은 혐오 동물이 됐어요. 하지만 비둘기 같은 청소동물은 인간을 떠나선 살 수 없죠. 인간과 함께 잘 살려면, 비둘기 개체 수를 줄여야 해요.”
한국에 이민 온 스페인 비둘기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비둘기에게도 각자의 생각과 판단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인간이 그들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남종영 환경 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 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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