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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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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미아가 된 북극곰의 최후

바다얼음 녹아 그린란드에서 아이슬란드까지 수백㎞ 떠내려온 뒤 사냥꾼들에게 사살
등록 2024-05-31 18:45 수정 2024-06-03 22:08

 

캐나다 처칠에서 한 북극곰이 자리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다. 한겨레 자료

캐나다 처칠에서 한 북극곰이 자리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다. 한겨레 자료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아이슬란드에서 북극곰 사냥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멸종에 치닫고 있는 북극곰을, 멧돼지 잡듯 주민이 신고하면 사냥꾼이 나서서 사살한다고 해요. 세상이 정말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어요! - 제보자 IPB
북극곰은 어떻게 수백㎞ 바다를 건너왔을까

“이건 거짓 제보예요.”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의 유일한 요원 왓슨이 확신에 차 말했습니다.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홈스의 물음에 왓슨이 신나게 대답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서식하는 야생 포유류는 북극여우가 유일하거든요. 이 섬나라는 위도가 높지만, 해류의 영향으로 바다가 얼지 않아요. 바다얼음을 여행하면서 물범을 잡아먹고 사는 북극곰이 살 턱이 없죠.”

북극해의 바다얼음은 여름에는 줄고 겨울에는 늘어나죠. 북극곰은 이렇게 변화하는 얼음의 리듬에 맞춰 끊임없이 이동해요. 하지만 아이슬란드와 바다얼음이 있는 그린란드 사이를 사시사철 얼지 않는 바다가 가로막고 있죠. 천하의 수영선수라는 북극곰도 아이슬란드에 갈 수 없어요.

수도 레이캬비크의 케플라비크공항을 향해 하강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아이슬란드는 마치 파란 바다에 떠 있는 달의 사막처럼 황량했어요. 둘은 레이캬비크에 도착해 맨 먼저 자연사박물관에 갔어요. 오로라 파노라마 영상과 화산 쇼를 보고 나오는데, 한 전시물 앞에서 왓슨이 소리쳤어요.

“어, 이게 뭐지?”

북극곰 박제였어요. 전시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죠.

2008년 6월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북극곰이다. 당시 아이슬란드 해안경비대는 특수 제작된 이동용 우리에 넣어 그린란드의 자연 서식지에 돌려보내려고 했으나, 이 북극곰은 탈출하면서 총에 맞고 폐사했다.

박제는 그린란드에서 빙산을 타고 떠내려온 북극곰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북극곰이 몇 년에 한 번씩 나타나는 모양이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바이킹들이 섬에 정착한 직후인 890년이었죠. 그 뒤 지금까지 600여 마리가 아이슬란드에 표류해 도착했다고 해요.

아이슬란드와 독일 연구팀이 2008~2011년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북극곰 네 마리를 조사한 논문이 있어요. 북극곰은 어떻게 먼 곳에 올 수 있었을까요? 동그린란드에서 아이슬란드의 베스트피르디르 지역까지 최단 거리는 280㎞입니다. 동그린란드 앞바다에 얼음이 얼면 거리는 더 짧아지겠죠. 과학자들은 이렇게 썼어요.

“북극곰 네 마리가 도착할 당시 동그린란드 바다얼음의 끝에서 아이슬란드 해안가까지 110~17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북극곰은 수영을 잘하기 때문에 이 정도 거리는 며칠 만에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북극곰을 해부한 결과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출발할 때부터 굶주렸던 것으로 보인다.”

 

2008년 6월 아이슬란드에서 한 북극곰이 총을 맞은 모습. 유튜브 갈무리

2008년 6월 아이슬란드에서 한 북극곰이 총을 맞은 모습. 유튜브 갈무리


아기공룡 둘리와 북극곰의 차이점

왓슨이 말했습니다.

“빙산을 타고 온 아기공룡 둘리와 비슷하군요.”

“둘리는 서울 쌍문동 고길동네 집에서 신나는 삶을 살았지만, 아이슬란드에 상륙한 북극곰은 죽음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겠지. 북극곰이 살 만한 곳이 못 되니까.”

“제보자의 말은… 이렇게 표류해 도착한 북극곰을 사냥꾼들이 죽이고 있다는 얘기일까요?”

과거 아이슬란드 신문을 뒤져보니, 표류 북극곰에 대한 뉴스가 꽤 있었습니다. 그린란드로 돌아간 북극곰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사살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죠.

2008년에는 한 달 동안 북극곰이 두 마리나 목격되면서, 야생동물 사살을 두고 논란이 커졌습니다. 당시 환경부 장관은 전문가위원회를 결성해 대응 방안을 마련했죠. 그때 바로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는 지침이 결정됩니다.

‘상륙한 북극곰은 사살하라!’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은 2009∼2013년 당시 환경부 장관을 했던 스반디스 스바바르스도티르를 레이캬비크의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좌파녹색운동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그가 말했어요.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러시아, 미국이 1973년 맺은 북극곰보호협약에서도 원주민 사냥은 허용했습니다. 그린란드 당국도 매년 동그린란드에서 약 50마리의 북극곰 사냥을 원주민에게 허용하죠. 길 잃은 곰을 산 채로 그린란드에 돌려보냈다고 칩시다. 그런데, 거기서 총에 맞아 죽는다면요?”

당시 북극곰을 사살하기로 한 이유는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 사람과 가축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둘째, 동그린란드 개체군은 개체 손실에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셋째, 북극곰 한 마리를 구조하는 데 7만5천유로가 든다. 관련 인력과 장비를 유지하는 비용은 연간 75만~110만유로에 이른다. 넷째, 북극곰을 송환하려고 해도 그린란드 당국의 동의를 얻기가 힘들다….

인터뷰를 마치자 스바바르스도티르는 자리를 떴습니다. 그가 카페 문밖으로 사라지는 걸 확인하자마자, 홈스와 왓슨은 동시에 소리쳤습니다.

“돈 때문이군!”

“맞아, 돈 때문이에요.”

갑자기 젊은 여성이 말을 걸었어요. 노르딕 체크무늬의 빨간 스웨터를 입은 30대 여성이었습니다.

북극곰을 동물원에 데려오겠다던 공약

“녹색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이라면서 북극곰을 사살하자고 하다니! 저분이 정치권의 주류인 건 맞지만, 아이슬란드의 모든 생각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건 오해예요. 욘 그나르라고 아세요? 과거에 레이캬비크 시장을 했던….”

홈스 반장이 기억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010년 ‘내가 최고다’라며 ‘최고당’(Best Party)을 만들고 선거에 나갔다가 덜컥 레이캬비크 시장에 당선됐던 그 코미디언 말씀이군요?”

“맞아요. 우리는 그때 네 가지 공약을 제시했어요. 모든 수영장에 무료 수건 비치, 케플라비크공항에 디즈니랜드 건설, 동물원에 북극곰 데려오기 그리고 어떤 약속도 지키지 않기. 결국 공약을 다 지켰어요. 어떤 약속도 지키지 않았으니까.”

‘빨간 스웨터’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어요.

“사실 욘 그나르는 북극곰 공약만은 정말 지키려고 했어요. 이름도 아이슬란드 출신 세계 최고 여성 보컬의 이름을 따 ‘비요크’라고 미리 지었고요.”

“동그린란드에서 떠내려온 북극곰을 죽이지 말고 동물원에서 살게 하자는 거였군요.”

“네! 우린 몰래 그 대안을 모색했죠. 저를 중심으로 ‘레이캬비크 북극곰 프로젝트’라는 시민단체도 결성했습니다. 하지만 ‘북극곰을 동물원 같은 감옥에 가두는 건 과연 옳으냐’는 비판에 직면했어요. 반대로 ‘그럼 사살하는 게 옳으냐’는 반박도 있었고요. 우린 혼란에 빠졌죠.”

홈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치 판단을 하기 힘든 문제군요. 앞으로 기후위기가 심해지면 그린란드의 바다얼음은 더 빨리 녹고, 아이슬란드에 도착하는 북극곰이 늘어나면서 문제는 더 복잡해지겠죠. 북극곰을 동물원에서 보호한다고 해도 이내 포화 상태가 되어버릴 테고, 반대로 사살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고…. 그린란드로 다시 보내자니 비싼 돈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만 계속하는 꼴이 되어버릴 테고….”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래 북극 바다얼음은 계속 줄어들고 있어요. 1979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제주도 42개 면적에 해당하는 7만8천㎢의 바다얼음이 사라졌습니다. 2024년 3월 알렉산드라 얀 미국 볼더 콜로라도대학 연구팀은 기존의 예측을 더욱 앞당기는 결과를 내놨어요. 탄소 배출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2020년대와 2030년대 9월 중에 한 차례 이상 바다얼음이 없어질 거래요.

굶주린 북극곰이 빙산 위를 걷고 있다. 위키미디어 제공

굶주린 북극곰이 빙산 위를 걷고 있다. 위키미디어 제공


탕! 소리에 쓰러진 북극곰

갑자기 빨간 스웨터의 휴대전화가 울렸어요.

“뭐라고요? 빨리 가볼게요!”

아이슬란드 북부의 스카가피외르뒤르 부근에서 북극곰을 봤다는 신고가 잇달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세 시간 넘는 길을 달려, 수십 대의 차가 주차된 언덕 밑에 도착했죠. 꾀죄죄한 북극곰이 나무 하나 없는 능선을 따라 걷고 있었어요.

탕!

사위를 찢는 총성에 북극곰이 주저앉았어요. 빨간 피가 하얀 털을 적시기 시작했죠.

그날 밤 텔레비전 뉴스에 사살된 북극곰이 나왔어요. 삐쩍 마른 북극곰이.

“북극곰은 320㎞ 넘는 바다를 빙산을 타거나 헤엄쳐 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찰은 안개가 짙어지고 있어서 빨리 사살해야 했다고 밝혔습니다. 몸무게 250㎏ 수컷으로 확인된 이 북극곰은….”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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