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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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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졌다

양식 명태 치어까지 방류했지만 기후위기에 서식지 이동…해양동물 이주 속도 육상동물 4배
등록 2024-10-26 17:44 수정 2024-11-01 05:47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진 지 20년입니다. 옛날에 강원도 고성 거진항구에서는 강아지도 명태를 물고 다녔다는데, 명태는 왜 갑자기 없어졌나요? 너무 많이 잡아서 없어졌을까요? 아니면 기후위기 때문일까요? 숙제예요. 빨리 답해주세요. —환경 초등생 M

양식에 성공한 어린 명태의 모습. 강원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제공

양식에 성공한 어린 명태의 모습. 강원도 한해성수산자원센터 제공


“우리 행성조사반이 초딩 숙제나 해주면 되냐, 이 말이야.”

“말도 마라. 우리 푸아로 탐정은 불륜 뒷조사 사업까지 개시했다고. 아무리 먹고살기 어려워도 그렇지, 그게 지구환경과 무슨 상관이냐고? 정말 엉망진창이야!”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의 왓슨 요원은 영국 지부의 헤이스팅스 요원과 페이스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홈스 반장이 사무실에 들어왔어요.

“또 노가리를 까고 있군. 명태를 잡아야지, 명태를! 지금 강원도 고성에 명태 500마리가 찾아왔다는 소식이야. 빨리 가보자고.”

명태는 국민 생선이었어요. 1990년대까지도 가정집 밥상에 흔하게 올랐던 명태는 2000년대 들어 통계적 의미가 없을 정도로 어획량이 줄었어요.

1708년 얼어붙은 베니스의 호수를 그린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1708년 얼어붙은 베니스의 호수를 그린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용왕님 가라사대 ‘명태 치어 방류 그만’

명태 어업은 조선시대 함경도에서 시작한 것으로 추정돼요.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북반구 대부분 지역에서 평균 기온이 내려가요. 지구상의 여러 곳에서 빙하가 확장했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시기를 ‘소빙기’라고 부르죠.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한반도에도 소빙기로 부를 만한 기후변동이 존재했다고 해요. 조선왕조실록 등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 전역에 한랭한 기후가 계속된 반면 바다에선 명태와 청어 등 냉수성 어종이 많이 잡혔다는 거예요. 특히 명태는 소빙기 동안 서식지가 점차 남하했고, 나중에는 어장이 강원도 삼척에 이르렀죠.

왓슨의 문헌 조사 결과를 들은 홈스가 말했어요.

“이제 소빙기가 끝나 명태 서식지의 남방한계선이 다시 북상했다는 이야기인가? 그래서 명태가 사라졌다는 건가?”

“긴 기후의 시간대에서 보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지요.”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이 강원도 고성의 아야진항구에 도착하니, 갓 잡힌 명태들이 수조에서 헤엄치고 있었어요. 몸길이 15~17㎝로 아직 다 크지 않은 아성어(어린 물고기)였죠. 명태의 귀환 소식에, 전국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었어요. 하얀 가운을 입은 박사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질문을 퍼부었어요. 10년 넘게 명태 양식과 방류를 연구한 ‘명태 박사’였어요.

“아시다시피 저희는 2014년부터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살아 있는 명태에 현상금까지 걸었죠.”

그가 ‘현상금 50만원’에 ‘집 나간 명태를 찾습니다’라고 써진 빛바랜 전단을 보여줬어요.

“명태 수정란을 확보하려고 살아 있는 명태를 찾았던 겁니다. 그렇게 명태에서 알을 확보해 수정, 부화시키고 성어로 길러내는 양식에 성공했습니다. 많은 치어를 방류했고요. 그들 중 일부가 이렇게 살아 돌아온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유전자를 분석하면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기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조용해진 항구에 홈스와 왓슨만 남았어요. 그런데 바다에서 잡아온 명태 중 핑크빛이 도는 명태 한 마리가 수조에서 폴짝 뛰기 시작했어요. ‘이리 와봐!’ 하고 부르는 거 같았죠. 가까이 가보니, 정말로 핑크명태가 뻐끔거리며 말했어요.

“당신이 명태 박사인가요?”

“아니요. 저희는 서울에서 온 엉망진창행성조사반입니다. 명태 박사는 전단 붙이러 가셨어요.”

“아, 그렇군요. 명태 박사에게 꼭 전할 말이 있는데.”

핑크명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어요.

“용왕 폐하께서 메시지를 보내셨습니다. 명태 치어를 그만 방류하라고요.”

명태가 자라기엔 너무 따뜻하다고요

홈스와 왓슨은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핑크명태는 ‘그러면 용궁에 가서 직접 물어보라’고 했죠. 동해의 무인도에서 용궁을 오가는 바다거북 셔틀이 있다고 했습니다. 승차권은 토끼 간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핑크명태가 웃었어요.

“그런데 요즈음은 우루사(간 기능 보조제) 한 통이면 됩니다.”

홈스와 왓슨은 약국에 들러 우루사와 함께 용왕님께 드릴 선물로 밀크시슬(엉겅퀴·간 기능 개선 효과가 있음)도 한 상자 샀어요. 무인도에서는 바다거북이 기다리고 있었죠.

“용왕님은 무슨 일로 만나려고 하시오?”

자신의 이름을 ‘별주부’라고 소개한 바다거북은 홈스와 왓슨을 등에 태운 뒤 물었어요. 왓슨이 답했죠.

“우리는 동해 명태 실종 사건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명태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다 심지어 명태를 키워 내보내도 감감무소식입니다.”

바다거북 셔틀은 홈스와 왓슨을 태우고 출발했어요.

“우리는 지금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갑니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에 용궁이 있어요.”

한참을 가니, 북상하는 살오징어 떼가 보였어요. 왓슨이 외쳤지요.

“어이! 오징어 양반들 어디로 가십니까?”

“가을과 겨울을 나러 동해로 올라갑니다. 동해 수온이 상승해서 예전에 머물던 곳보다 더 북쪽으로 가야 해요. 바빠서 이만.”

국립수산과학원 자료를 보면, 지난 56년 동안 세계 바다의 표층 수온이 0.7도 오를 때, 한국 바다의 온도는 1.44도 올랐어요. 두 배 차이죠. 특히 명태가 사는 동해는 수온이 1.9도나 올랐고요.

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느끼는 온도에 대한 감각은 우리보다 훨씬 민감해요. 이를테면, 우리는 오늘 기온이 1~2도 높아진 것에 큰 차이를 못 느끼지만, 그 정도의 수온 상승은 물고기에게 마치 열대 사막으로 순간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거예요. 일종의 ‘온도 증폭기’가 달린 거죠. 그러다보니 해양 동물은 서식지를 (인간이 보기에) 재빨리 옮기고, 이것이 급진적인 어획량 변동을 일으켜요.

명태뿐만이 아니에요. 오징어가 ‘금징어’가 된 지 오래입니다. 난류성 어종인 오징어는 과거 기후위기의 수혜종으로 여겨졌죠. 하지만 오징어 어획량은 2000년대 중반부터 하향곡선을 그리더니 2015년 이후부터는 급감해요. 아까 먹물 뿜은 오징어가 그랬죠? 동해 수온이 예전보다 높아져 오징어들이 더 북쪽으로 이사 갔다고. 지금 바다에서는 어민과 물고기의 숨바꼭질이 시시때때로 벌어지고 있어요.

드디어 용궁 근처에 도착했어요. 깊은 바다였어요. 표지판이 서 있었어요.

‘용궁 909m’

‘현재 수심 1만m’

용왕의 처소에 이르자 백발에 삐죽삐죽한 흰 눈썹, 용처럼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할아버지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어요. 술 냄새가 진동했죠. 어제도 과음한 게 틀림없었어요. 잠시 잠에서 깬 용왕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어요.

알라스카 명태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알라스카 명태 그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기후붕괴는 전쟁 같고, 이사도 피난이죠

“너희가 한국에서 명태 수십만 마리를 길러 바다에 내보낸다는 물고기 방류국의 직원들이냐?”

홈스가 머리를 조아렸어요.

“아닙니다, 용왕 폐하. 저희는 엉망진창행성조사반으로서 방류한 명태가 보이지 않아 걱정돼 왔습니다.”

용왕이 버럭 화를 냈어요.

“지금 너희 인간들이 방류한 명태 때문에 용궁의 119구조팀이 정신없지 않으냐? 이미 더워질 대로 더워져서 명태가 살 수 없는 바다에 무작정 어린아이들을 내보내면 어떡한단 말이냐? 용궁대학병원 응급실과 응급구조 시스템이 마비 직전이다. 의사들까지 파업하고 나섰다. 토끼 박사, 이리 와서 현재 상황을 설명해보도록 하라.”

용왕 앞으로 늙은 토끼가 나왔습니다. 토끼는 토끼의 간을 빼앗으려는 별주부에게 속아 용궁에 왔다가 기지를 발휘해 육지로 돌아갔지만, 평화로운 용궁을 못 잊어 다시 찾아왔다고 했어요. 별주부가 왓슨의 귀에 대고 속삭였어요.

“이제 용왕님은 토끼 간이 필요 없습니다. 우루사가 있으니까요.”

이 얘기를 들은 왓슨은 미리 준비한 밀크시슬을 용왕에게 바쳤어요.

“용왕 폐하, 유기농 엉겅퀴로 만든 밀크시슬입니다.”

용왕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술 한 잔을 따라 마셨어요. 토끼가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남쪽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이 동해로 삶터를 옮기고 있습니다. 반면 명태는 북쪽으로 가고 없습니다. 과거에 없던 대이동입니다. 왜 동해의 수온이 유독 더 높아졌을까요? 첫째는 동해에 열을 수송하는 대마난류의 세기가 1980년대 이후 계속해서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동해 중부와 남부 사이에 북쪽의 냉수와 남쪽의 난류가 만나는 열적 경계(극전선)가 형성되는데, 그 경계가 점차 북상하기 때문입니다.”

토끼는 잠시 숨을 골랐어요.

“모든 동물은 기후위기에 ‘이주’라는 방식으로 적응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죠. 해수면이 상승하는 태평양 섬나라 국민도 하나둘 나라를 떠나지 않습니까? 제가 조사했습니다. 예상대로 북반구의 육상동물과 해양동물은 모두 북쪽으로 서식지를 옮기고 있더군요. 육상종은 10년마다 평균 17㎞를 북상하는 반면 해양동물은 평균 72㎞를 북상하죠. 해양동물의 이주 속도가 육상동물보다 네 배 빠릅니다.”

용왕이 졸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런 생물종의 이동을 단순히 ‘북상’이나 ‘이주’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습니다. 동물 입장에서는 ‘대혼란’이나 ‘전쟁’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죠. 여러분이 살던 곳이 갑자기 뜨거운 사막으로 변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북쪽으로 갔더니 오히려 더 춥다면요? 물고기는 아주 작은 수온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물고기 입장에선 기후가 변화하는 게 아니라 기후가 붕괴한 겁니다.”

홈스가 말했어요.

“모두가 삶터를 찾아 헤매는 물고기의 대방랑 시대가 열린 거군요.”

토끼가 말했죠.

“지금 바다는 전쟁터입니다.”

용왕은 깊은 잠에 빠졌어요. 그의 간은 딱딱하게 굳은 지 오래됐어요. 어쩌면 우루사와 밀크시슬이 있기 때문에 계속 술을 마시는지도 몰랐어요.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 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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