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저게 말이 되는 점수입니까? 핸드볼 경기도 아니고….”
전국이 열대야로 신음하던 2024년 7월 말의 밤이었죠.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의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은 제보가 온 줄도 모르고 사무실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프로야구 중계를 보고 있었어요.
백두산 타이거즈는 지리산 베어스를 광주 구장으로 불러들여 참혹한 패배를 당하고 있었어요. 홈런, 홈런, 홈런…. 투수를 바꿔봐도 안타, 안타, 안타…. 더위에 지친 타이거즈 투수들은 도무지 아웃 하나를 잡지 못했어요. 이날 최종 스코어는 30 대 6.
왓슨 요원은 타이거즈 팬인 홈스 반장을 놀렸어요.
“타이거즈가 6 대 30으로 졌네요. 내일 경기가 6시30분에 열리는 걸 알려주는 고도의 마케팅인가봐요.”
그때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어요.
“여보세요?”
“말도 안 되는 스코어로 끝난 이번 경기 보셨지요? 기후위기가 부른 참사입니다. 요즈음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이 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타고투저 현상이 심해지더군요. 앞으로 우리는 야구를 새롭게 정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시죠?”
“저는 미국 뉴욕에 사는 베이브 루스 3세입니다. 한번 놀러 오시오. 내 이론을 설명해드리오리다.”
베이브 루스 3세의 사무실은 뉴욕의 역사적인 야구장인 양키 스타디움 앞 골목에 있었어요.
“내가 바로 이 시대 최고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손자일세. 단타 위주로 소꿉장난하던 데드볼 시대에서 장타 위주의 스케일 큰 라이브볼 야구 시대를 연 게 바로 우리 할아버지였지.”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1920년대 전까지만 해도 번트와 안타 그리고 다양한 작전으로 한 점씩 점수를 내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좀더 공격적인 야구로 바꾸기 위해 공의 내부 소재를 고무에서 코르크로 바꿔요. 공을 바꾸자마자 타자들이 빵빵 치면 공은 휭휭 날아갔어요. 기존의 공을 데드볼이라고, 새로운 공을 라이브볼이라고 불러요. 그렇게 홈런과 장타가 나오는 라이브볼 시대가 개막돼 지금까지 이어져온 거예요.
왓슨이 물었어요.
“그런데 30 대 6 경기가 왜 기후위기의 참사라는 거죠?”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친다고 합시다. 그때 그 공이 홈런이 될지 플라이 아웃이 될지는 물리학적으로 두 가지 영향을 받아요. 하나는 공의 탄성력, 다른 하나는 대기라는 매질이요. 그런데 대기 온도가 오르면 공기 밀도가 낮아집니다. 밀도가 낮아진 공기에서는? 공은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겠죠. 지구온난화 시대에는 홈런이 많아진다는 얘기입니다. 자, 이 그래프를 보시오.”
그가 책상에 두툼한 종이 뭉치를 던졌어요. 세 개의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죠.
“왼쪽 그래프가 미국 메이저리그 경기당 홈런 개수, 가운데 그래프는 야구장의 대기 온도, 오른쪽 그래프는 야구장의 공기 밀도를 보여주는 선이오.”
홈스가 놀랐다는 듯 답했어요.
“1980년대부터 대기 온도가 상승했는데, 덩달아 경기당 홈런 개수도 늘어나는군요.”
베이브 루스 3세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맞소. 1980년 이후 10만 경기, 24만 개의 타구를 분석해 만든 위대한 그래프라오. 인간이 초래한 기후위기로 인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58개의 홈런이 추가로 나왔소. 하루 최고기온이 1도 상승하면, 홈런 수가 1.95% 늘어난다오.”
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앞으로 극단적인 라이브볼 시대가 열리겠군요.”
뉴욕도 35도가 넘는 찜통이었어요. 그렇다고 뉴욕까지 왔는데 전통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야구 한 번 안 보고 가면 서운하죠.
숙적인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 드디어 9회 말 5 대 5 동점. 레드삭스는 양키스를 상대로 2사 만루에서 수비를 벌이고 있었어요.
“볼!” “볼!” “볼!”
분명히 한가운데로 공이 들어갔는데, 심판은 계속 볼만 선언했어요. 결국 뉴욕 양키스는 밀어내기 볼넷으로 추가점을 뽑아 승리했지요. 3루 쪽 관중석에서 빨간 티셔츠를 입은 30여 명이 플라스틱병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심판 물러나라!”
홈스와 왓슨은 경기장으로 내려가 심판을 만났어요.
“폭염 날씨에 땀이 계속 눈으로 흘러서 제대로 공을 보질 못했어요. 날이 더우면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불가능해요!”
심판은 3루 쪽 관중석에서 플라스틱병을 던지던 빨간 응원부대를 바라보며 말했어요.
“저 사람들은 야구장의 극렬분자입니다. 선수와 심판이 더위 때문에 조금만 못해도 야유를 퍼붓고 오물을 던집니다.”
투수와 마찬가지로 심판도 폭염 경기를 두려워해요.
미국 몬머스대학 연구팀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만8907개의 메이저리그 경기의 판정 정확도를 분석한 적이 있어요. 일반적으로 주심의 스트라이크, 볼 판정의 오심률이 13.3%인데요. 섭씨 21~27도의 쾌적한 온도에서 섭씨 35도 이상의 폭염 상황으로 바뀌면 오심률이 5.5% 늘어난다는 거예요.
폭염의 시대에 영향받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었어요.
세계 과학자들이 모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이 가장 최근에 낸 6차 종합보고서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와요.
“온실가스를 극적으로 낮추지 못해 현행 추세대로 이어지면(매우 높은 배출량 SSP5-8.5 시나리오), 산업화 이전(1850~1900년)과 비교해 지구 평균기온이 이번 세기 중반(2041~2060년)에는 1.9~3.0도, 이번 세기 후반(2081~2100년)에는 3.3~5.7도 높아진다.”
불과 1.1도 높아진 현재 폭염도 참을 수 없는데, 20년 뒤 ‘2도의 시대’는 어떨까요?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은 빨간 응원부대를 만나려고 3루 쪽 관중석에 갔지만, 그들은 이미 경기장을 떠나고 없었어요.
“반장님, 이것 보세요! 그들이 놓고 간 겁니다.”
왓슨이 든 안내장처럼 보이는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어요.
8월15일 오후 2시, 미국 애리조나 사막 666번지
보안 엄수(아무에게도 알려주지 말 것)
“사막에서 야구 훈련을 한다고? 저번에 왔던 제보와 비슷한데….”
심판이 말을 받았어요.
“소문이 사실이군요. 극한 기후에 통할 완벽한 야구를 하는 선수를 전세계적으로 양성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2050년 세계 야구계를 제패한다나 뭐라나….”
한여름 애리조나 사막은 섭씨 40도가 훌쩍 넘었어요. 사막 한가운데서 열 살 남짓한 어린이들이 공을 던지고 있었죠. 감독으로 보이는 사람이 뒤를 돌아보더니 다가왔어요.
“당신들, 누구요?”
“아, 저희는 베이브 루스 3세의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미래의 프로야구가 새롭게 정의되겠더군요.”
왓슨이 기지를 발휘해 답했지요. 왠지 그와 관련이 있을 거 같았거든요.
“아! 우리가 바로 그분의 이론을 듣고 ‘파이어볼러의 아이들’을 창단했습니다. 2050년에 지구가 몇 도 상승하는지 아십니까? 홈런은 얼마나 또 많아지고요? 이 어린이들은 20년 뒤 2도의 시대, 열대의 야구장에서 주인공이 될 겁니다. 다른 선수들이 더위에 허덕일 때 이 아이들은 그레그 매덕스, 로저 클레먼스 같은 최고 투수가 되어 리그를 지배할 테죠.”
“그래도 연습은 힘들겠어요.”
홈스가 말했습니다.
“한국의 구식 훈련법을 도입했습니다. 1970~1980년대 고등학교 야구부에서는 더운 날에도 훈련 중 물 먹는 걸 금지했습니다. 그들이 강하게 자라 한국 야구의 전성기를 꽃피우지 않았습니까? 훌륭한 선수는 사막과 진흙밭에서 만들어집니다.”
태양은 이글거리며 타고 있었고, 감독은 혼자만의 장광설에 빠져 있었습니다. 흙 묻은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이 그늘막으로 들어와 주전자의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남종영 환경 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 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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