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행성조사반의 홈스 반장과 왓슨 요원은 강원도 태백시 장성공업소에 사는 제보자 ‘탄광 속의 카나리아’한테 갔어요. 그런데 태백에 가보니 탄광 속의 카나리아는 탄광 밖에서 멀뚱멀뚱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홈스와 왓슨을 보자 카나리아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반가워했죠.
“이렇게 직접 와주시다니! 제가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의 애독자입니다!”
왓슨이 물었어요.
“그런데 왜 탄광 밖에 나와 계신가요?”
“지난달에 폐광했거든요. 업종 전환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저는 기후위기 감시 업무를 맡고 있어요. 대기 중 온실가스가 얼마나 높은지 보는 거죠.”
신나 하던 카나리아는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지었어요. 그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죠.
“1.5도가 넘으면 저는… 죽어요. ‘온실 속의 카나리아’라고나 할까.”
홈스 반장이 갑자기 카나리아에게 물었어요.
“지구 평균기온 상승치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과 비교해 1.5도를 넘었다는 뉴스도 자주 나오던데. 그럼 당신은 이미 죽어 있어야 할 텐데.”
“하하. 그거 잘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1.5도 넘었다고 해서 넘은 게 아니랍니다.”
홈스와 왓슨은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온실 속의 카나리아가 설명한 사정은 이렇답니다.
세계 각국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15년 파리협정을 맺어요. 1997년 맺은 교토의정서가 사실상 꽝 나서, 손을 놓고 있다가 겨우 합의에 이른 거랍니다.
파리협정 제2조 1항을 볼까요? 정확히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어요.
산업화 이전 수준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치를 섭씨 2도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 그리고 1.5도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한다.
이게 뭔 말이죠? 1.5도로 하라는 거야, 2도로 하라는 거야?
외교 용어 번역기를 돌리면, ‘지구 평균기온 상승치를 1.5도 이내로 제한하되, 그게 안 되면 2도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정도일 거 같네요.
그럼, 1.5도와 2도라는 ‘숫자’는 어떻게 나온 걸까요?
기후위기 과학자들은 섭씨 ‘1도 상승’ ‘2도 상승’ 등의 온난화가 언제 일어날지 그리고 이에 따라 육상과 바다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해요. 즉, ‘○도 상승’은 기후 모델링에서 미래 세계를 나타내는 값이에요.
처음엔 ‘2도’가 이야기됐어요. 2009년 ‘코펜하겐 합의’에 이런 조항이 들어 있었죠.
우리는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이하로 유지돼야 한다는 과학적 견해를 인정한다.
보시다시피 과학적 견해만 인정하지 각국이 무얼 하겠다는 얘기는 없었어요. 그게 명확해진 게 2015년 파리협정이었죠.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하고 5년마다 이행 점검을 받기로 한 거죠.
그런데 협상 막바지에 이르자 태평양 도서국이 반발하기 시작했어요. 갈수록 높아지는 해수면, 잦아지는 사이클론…. 이들은 2도로는 자신의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소리쳤어요. 긴 줄다리기 끝에 세계 각국은 태평양 도서국의 의견을 받아들여 파리협정에 애매모호한 조항을 넣은 거예요.
“그래서 왜 지금 1.5도가 넘은 게 아니냐고요? 어제 뉴스에도 1.5도가 넘었다고 하더구먼.”
카나리아의 장광설에 왓슨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어요.
“잠깐, 이제 나옵니다.”
온실 속 카나리아는 설명을 계속했어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학자와 보고서마다 ‘평균기온’을 산정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질문해볼게요. 현재의 지구 평균기온은 어느 기간으로 평균을 내야죠? 오늘, 지난 한 달, 1년, 10년?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30년의 측정값으로 평균을 내요. 그걸 보통 ‘평년값’이라 하죠. 이렇게 장기적인 기간을 대상으로 평균을 내는 이유는 ‘튀는 데이터’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랍니다. 이를테면, 큰 화산 폭발이 있으면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어 지구 온도가 일시적으로 내려가요. 반면, 엘니뇨 현상이 일어나는 해에는 지구 평균기온이 약간 상승하죠.
기후위기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자료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도 낼 때마다 기준이 달라요. 이를테면, 2018년 나온 ‘1.5도 특별보고서’에는 지구 평균기온을 현재 연도를 중심으로 과거 15년의 평균기온, 미래 15년의 예상 평균기온으로 삼았어요. 왜 미래의 예상 기온을 현재 평균기온을 산정하는 데이터로 넣었냐고요? 이 보고서 저자들은 기후위기 보고서의 경우 미래를 ‘경고’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 거예요. 과거값만 봤다가는 이미 손쓰기에 늦으니까요.
반면, 2021년 나온 제6차 보고서에선 최근 10년 동안 데이터로 지구 평균기온을 냈어요. 그러니까 이 보고서는 ‘산업화 이전 대비 현재 지구 평균기온이 1.1도 상승했다’고 했는데, 그것은 사실 2021년이 아니라 2010~2019년 평균기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홈스 반장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 이제 이해되는군. 뉴스에서는 이달 혹은 올해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었다고 얘기한 거군! 하지만 과거 10년 동안의 데이터가 아니니 국제법적으로는 1.5도를 넘었다고 볼 수 없는 거고.”
왓슨이 깜박했다는 듯 물었어요.
“그런데 빙하기가 도래할 거라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온실 속의 카나리아는 조잡하게 인쇄된 전단을 하나 건네주었어요. ‘하루빨리 빙하기가 도래하길 바라는 과학자협회’ 명의의 전단이었어요.
“이걸 보고 제가 연락드린 거예요. 북극에 거주한다는 과학자들인데, 찾아가보세요.”
이들의 연구실은 북극의 스발바르제도 롱위에아르뷔엔에 있었습니다. 지구 최북단에 있는 인간의 정주지죠.
연구실 문을 여니, 북극여우 박사가 기후 모델링을 하고 있었어요. 지구 평균기온으로 보이는 꺾은선 그래프가 아래로 처박히고 있었죠. 왓슨이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곧 빙하기도 도래할 거라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이군요?”
북극여우 박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어요.
“이건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을 때를 가정해 만든 그래프입니다. 우리가 빙하기가 도래하길 원하는 건 맞습니다. 추운 지방에 사는 동물들이 만든 학회니까요.”
홈스 반장이 물었습니다.
“그럼 1.5도가 거짓말이라는 그 전단을 만드신 적이 없다는 겁니까?”
“몇 달 전 연구실에 도둑이 들었어요. 우리를 사칭하고 다니는 화석연료 업계의 로비스트들이 사주한 짓이었죠. 그들은 얼마 전 빙하 댐을 짓는다고 해서 북극권 동물들에게 분란을 일으켰어요.”
그때 바다얼음 샘플링 작업을 마친 북극고래 박사가 연구소에 들어왔어요. 바다의 장수종답게 그는 기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줬습니다.
“약 258만 년 전 시작한 신생대 제4기는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로 구성돼 있습니다. 플라이스토세가 쭉 이어지다가 1만1700년 전에 바로 우리가 사는 홀로세가 시작된 거라오.”
왓슨 요원이 맞장구쳤습니다.
“북미 대륙과 유럽까지 뻗어 있던 빙하가 북쪽으로 물러난 시대죠.”
“그렇소. 온난한 기후 덕분에 당신네 인간 문명이 발달했지. 하지만 제4기는 기본적으로 ‘빙하기’라오. 빙하기(Ice Age)는 추운 빙기(Glacial Periods)와 따뜻한 간빙기(Interglacial Periods)로 구성되는데, 빙기 사이에 20차례의 간빙기가 있었소. 플라이스토세 후반기 들어선 간빙기는 11만~12만 년에 한 번 나타나서 1만 년 정도 지속하는 패턴을 보이지.”
왓슨 요원이 아는 척했습니다.
“간빙기인 홀로세가 1만1700년 됐으니, 빙기가 올 시간이 된 거네요?”
“실제로 1970~1980년대엔 곧 빙기가 올 거라고 떠드는 과학자가 많았소. 하지만 오지 않았지. 인간이 일으킨 지구온난화 때문이라오. 인간이 빙기를 늦춘 거지.”
홈스와 왓슨이 연구실에서 나와 공항을 향해 걷고 있는데, 북극고래 박사가 저 멀리 바다에서 불렀습니다.
“어이, 친구들! 온실가스 나오니 비행기 타지 말고 가게. 내가 육지까지 태워다 주지.”
태양에 지구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여름의 북극은 북극고래도 땀을 뻘뻘 흘릴 정도였습니다.
남종영 환경 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 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