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반장님, 한 달 전에 온 제보가 스팸메일함에 들어 있었네요. 그런데 옛날에 투발루도 가셨나봐요. 해수면이 상승해서 가라앉는다는 그 나라?”
“우리 조사반의 첫 사건이었지. 투발루 가서 일은 않고 춤만 췄지만.”
홈스는 옛날을 회상했어요. 투발루의 클럽은 1980년대 대천해수욕장의 노천 디스코장 정도 됐죠. 공항 활주로 옆에 그물을 얽어 담장을 둘러치고 시멘트 바닥에서 춤을 췄어요. 불타는 투발루(불투)가 한 말이 생각나서 홈스는 웃었어요.
“원 나이트 스탠드도 하는 사람은 다 알아서 한다고. 한 다리 건너면 친척이고 친구여서, 소문날까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문제는 호텔이 하나밖에 없다는 거야. 그럴 땐 덤불에 가서 하지.”
하늘이 클럽의 천장이었고, 바람은 춤추는 사람들의 에어컨이었어요. 망망대해 태평양에서 외로이 울리던 가난한 섬나라 청년들의 춤. 홈스가 말했어요.
“왓슨, 우리 투발루로 휴가나 갈까? 아주 길고 아름다운 섬으로 말이야.”
“저기 뱀이, 아니 섬이 있어요!”
피지 수바에 있는 공항에서 출발한 소형 제트기가 파란 바다 위를 두 시간 날자, 뱀처럼 긴 섬이 나타났어요. 섬은 정말로 얇고 길었죠. 인구 1만1810명, 면적 26㎢, 네 번째로 작은 나라. 홈스가 말했어요.
“국토가 얇고 긴데, 해발고도는 낮은 섬. 투발루가 해수면 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유야.”
홈스와 왓슨은 시내를 구경했어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소년, 옥빛 바다에 들어가 낚시하는 노인…. 영락없이 평화로운 섬나라였어요. 왓슨이 약간 놀랐어요.
“저는 바닷물이 막 차오르고 국민들이 줄을 서 비행기를 타고 탈출하는 장면을 떠올렸거든요. 그런 긴장감과 위기감은 찾아볼 수 없네요?”
“제1세계 국민의 편견이야. 기후붕괴는 에스에프(SF) 영화의 스펙터클처럼 다가오지 않아. 대개는 사회경제적 삶을 느리게 투과하면서 고통을 배가하고 절망을 일상화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재난에 잠기게 하지. 그들이 걱정하는 유일한 자연재난이 있다면, 그건 사이클론이야. 1년 중 바닷물 수위가 가장 높아지는 백중사리 때 바닷물이 몰아치는 ‘킹 타이드’(King Tide)가 오기도 해. 사이클론이라도 불라치면, 주거지나 농경지가 궤멸적인 손상을 입는 거지. 실제로 투발루 앞의 무인도가 날아간 적이 있어.”
홈스는 3층짜리 정부종합청사 건물을 가리켰어요.
“저 건물 옥상이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이야.”
정부종합청사에는 펼침막이 펄럭이고 있었어요.
‘투발루-오스트레일리아 기후 이주 조약 체결: 내년부터 지속가능한 곳으로 이주, 건강보험도 적용!’
그날 밤, 홈스는 불투를 만나기 위해 노천 클럽에 찾아갔죠. 그런데 남태평양의 흥겨운 음악도 들리지 않았고, 조잡한 사이키 조명도 보이질 않았어요. 젊은 청년 하나만 시멘트 바닥 위에서 혼자 힙합 춤을 추고 있었죠.
“클럽이 문을 닫았나요?”
“주인이 떠났어요. 이제 우리나라엔 클럽이 없어요.”
이튿날 정부종합청사 강당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이주 설명회’가 열렸어요. 국민 수백 명을 앞에 두고 투발루 총리가 연설 중이었어요.
“이제 미래가 열렸습니다. 매년 280명씩 가면 2050년대에 전 국민 이민이 끝납니다. 여러분이 오스트레일리아에 가셨을 때 완전한 권리를 누리도록 했습니다. 건강보험도 적용되고 학업은 물론 일자리도 알선됩니다.”
강당 구석에서 손을 들고 발언 신청을 한 이가 있었습니다. 어젯밤 노천 클럽에서 힙합 춤을 추던 소년이었죠.
“총리님, 그럼 우리 나라는 사라지는 건가요?”
총리가 타이르듯 말했습니다.
“해수면 상승과 관계없이 향후 두 나라는 투발루의 자주적인 지위와 주권을 인정하기로 협정에 명시했습니다.”
소년은 얼굴을 찌푸렸어요.
“그걸 믿습니까? 총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사람들이 자꾸 조국을 떠나지 않습니까? 에메랄드빛 산호바다와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언어와 문화는 어떻게 되나요? 메타버스에라도 가상국가를 만드시겠습니까? 지금 우리 젊은이들은 춤을 출 곳도 없습니다.”
총리는 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학생, 이 섬은 2050년에 사라집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때 한 중년 여성이 일어나 말했습니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투발루가 2050년에 사라진다’는 얘기는 정확합니까? 언론에서 떠드는 이 말의 출처를 찾아보니 한 논문이더군요. 그 논문을 찾아봤더니, 또 다른 논문을 인용했더군요. 이런 식으로 인용이 인용의 꼬리를 물더군요. ‘2050년 사라진다’ 설의 최종 도착지가 어딘지 아십니까? ‘언론과 시민단체는 투발루가 2050년까지 거주 불가능해 사라지는 나라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라는 문장이더군요. 과학자들이 정식 논문으로 2050년을 제시한 적은 없어요. 우리 나라는 외국 사람들에 의해 ‘기후붕괴 재앙의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을 뿐이라고요!”
구레나룻을 기른 기자가 손을 들고 물어봤어요.
“총리님, 조약 중 이상한 게 있어요. ‘투발루는 다른 나라와 국방과 관련한 합의나 조약을 체결할 경우 오스트레일리아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건 무슨 뜻입니까?”
사람들이 웅성거렸어요. 과학 교사가 소리쳤어요.
“외교 주권까지 팔아버리다니!”
투발루와 태평양 섬나라는 중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지정학적 관심 대상이에요. 중국은 태평양에 진출하길 원해요. 반면, 오스트레일리아는 중국의 해군력 확장을 막고 싶어 해요. 오스트레일리아 뒤에는 미국이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오스트레일리아는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대가로 투발루의 기후 이주를 받아들이기로 한 거예요. 이주 설명회가 끝나고 나오려는데, 과학 선생이 다가와 말했죠.
“불투를 찾으신다고요? 불투는 ‘투발루에서 함께 살기’ 운동의 지도자로, 이 나라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했죠. 노천 클럽을 미래세대의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고, 작년에는 직접 타로 밭을 사들여 농사도 시작했어요. 하지만 바닷물이 클럽과 타로 밭을 휩쓸면서, 불투는 무뚝뚝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됐죠.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갔다는 소문이 있어요.”
홈스와 왓슨은 오클랜드로 갔어요. 수소문 끝에 불투가 한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일한다는 얘길 들었어요. 둘은 푸드코트로 향했어요. 파란 앞치마를 두른 불투가 식탁을 행주로 닦고 있었죠. 홈스가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가갔죠.
“저놈 잡아!”
갑자기 뒤에서 남성 세 명이 달려들었어요. 불투는 그들에게 행주를 던지더니, 식탁을 타고 넘어 도망쳤어요. 이민국 단속반이었죠.
몇 달 뒤 불투에게 이메일이 왔어요.
“홈스, 오랜만인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미안하네. 나는 투발루로 돌아가기로 했어. 내가 없으면 하나뿐인 노천 클럽을 누가 운영하겠나? 먼저 투발루에 가서 기다리고 있게.”
홈스와 왓슨은 다시 투발루에 갔어요. 노천 클럽에서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봤죠. 꽃과 팔찌를 찬 아이들이 모여 투발루 전통춤인 ‘파텔레’(fatele)를 연습하고 있었어요. 과학 선생님이 타악기를 두드리면서 박자를 맞췄죠.
저 멀리서 바닷가를 걷는 사람이 있었어요. 총리였지요. 그는 둘을 알아차리고 반가운 듯 웃으며 다가왔어요.
“당신 친구 불투가 돌아온다지요?”
“네. 그렇습니다.”
“아마 당신네 국민은 이해 못할 겁니다. 과거에 10년에 한 번 찾아오던 홍수가 이제는 매년 찾아오고, 계절에 맞지 않는 기상이변이 아무 때나 발생해요. 그러잖아도 열악한 투발루의 경제·사회적 토대는 이런 재난에 더 취약하지요. 그런 점에서 가족 중 한 명이 최후의 선택으로 나라를 떠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워요. 과거에 우리 나라는 수집가들에게 우표를 팔았죠. ‘tv’라는 인터넷 도메인을 판 것도, 외항선원을 세계에 보내 송금을 받는 것도 투발루가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식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협상해 이민을 보내는 것도요.”
드디어 불투가 돌아오는 날이 됐어요. 비가 왔죠. 홈스는 공항에 나가 오랜 친구를 기다렸어요. 어제부터 시작한 사이클론이 만만치 않았어요. 먹구름을 뚫고 나타난 비행기는 강한 바람에 좌우로 흔들리며 위태위태해 보였어요. 결국 착륙을 포기하고 동체를 올려 구름 속으로 사라졌죠.
비바람은 멈추질 않았어요. 바다에 있던 물이 거침없이 육지로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킹 타이드였어요. 섬이 잠기기 시작했어요.
남종영 환경 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 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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