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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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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받은 통신병, ‘닭둘기’가 되다

비둘기와 인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등록 2024-06-29 05:49 수정 2024-07-03 23:28
건물 지붕에 모여있는 비둘기. 한겨레 자료사진

건물 지붕에 모여있는 비둘기. 한겨레 자료사진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여기는 광주시의 한 근린공원입니다. 비둘기가 떼죽음을 당했어요.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비둘기 독극물 살해 사건’을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사이보그 비둘기를 만들어 팔 거라고 합니다.” - 제보자 PJ

“왜 이렇게 비둘기를 싫어하는 거죠?”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의 유일한 요원 왓슨의 물음에 홈스 반장이 대답했습니다.

“이제 인간에게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20g 기계 배낭을 멘 비둘기

한때 비둘기는 인간에게 중요한 존재였어요. 비둘기의 귀소 본능을 이용해 기원전 2900년 전부터 통신 수단으로 이용했거든요. 집에서 비둘기를 기른다고 가정해보죠. 집주인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타지에서 안부 편지를 비둘기 다리에 묶어 보내면, 비둘기는 편지를 갖고 집으로 돌아와요. 이것을 응용해 비둘기 통신소를 여럿 설치하면 비둘기를 장거리 통신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기술을 군대가 가만히 놔뒀을 리 없죠. 20세기 초 양차 세계대전에서 비둘기는 통신병으로 활약했어요. 비둘기 배낭을 메고 다니며 급할 때는 비둘기를 날려 보냈어요. 말하자면 이런 메시지를 들고요. ‘적군의 병력이 많아 불리한 형국이다. 공습을 요청한다!’ 당연히 비둘기 전사는 저격병의 일차 표적이 됐어요. 적진의 하늘에 비둘기가 날아오르면 어김없이 총을 쏘아댔어요.

“그런데 비둘기를 어떻게 사이보그로 만든다는 거지?”

홈스의 물음에 왓슨은 그동안 조사한 것을 설명했습니다.

“비둘기가 사이보그가 된 적은 없지만,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비슷한 실험을 한다고 합니다. 비둘기에 대기오염 측정장치를 단다는 거예요.”

어바인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의 젊은 교수 베아트리즈 다 코스타가 이 실험을 이끌고 있었어요. 조사반이 그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비둘기에 매달 대기오염 측정장치를 점검하고 있었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그가 펄쩍 뛰었습니다.

“사이보그 비둘기라니요? 우리는 인간과 비둘기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는 거예요.”

비둘기가 멜 배낭에는 인공위성위치추적장치(GPS), 인공위성이동통신시스템(GSM)과 대기오염 측정장치가 장착돼 있었어요. 무게는 약 20g. 배낭이 비둘기 몸무게의 10분의 1 이하여서 비둘기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는 않을 거라고 했어요. 그가 말을 이었습니다.

“인간과 비둘기가 함께하는 종간(interspecies) 시민과학 프로젝트예요. 비둘기를 기르는 사람들, 예술가, 과학자 그리고 시민이 비둘기와 함께 공부하고 연습해 대기 환경을 감시하는 거죠. 비둘기가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오염 정보를 시민들이 인터넷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어요.”

“왜 비둘기죠? 대기오염 측정장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비둘기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죠. 우리가 마시는 공기와 가장 가까운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거예요.”

프로젝트 이름은 ‘피전블로그’(Pigeonblog)였습니다. 비둘기가 직접 환경에 관한 블로그를 쓴다는 거예요.

비둘기가 프랑크푸르트를 찍은 사진(날개가 함께 찍혔다)과 사진기를 단 비둘기(오른쪽). 위키미디어코먼스

비둘기가 프랑크푸르트를 찍은 사진(날개가 함께 찍혔다)과 사진기를 단 비둘기(오른쪽). 위키미디어코먼스


한때 평화의 상징… 이젠 ‘닭둘기’ 놀림받아

코스타 교수 연구실에서 나오는데, ‘비둘기 학대 중단하라’는 손팻말을 든 사람들이 있었어요. 미국의 동물권 단체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이었죠. 확성기를 든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미 도시 곳곳의 첨단 장치가 대기오염을 측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동물을 위험에 빠뜨립니까?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말도 안 되는 동물 학대입니다!”

어쨌든 피전블로그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대기오염 측정장치를 착용한 비둘기들이 세 차례에 걸쳐 로스앤젤레스 시내를 날아다니며 실시간으로 오염 정보를 전달했지요. 수많은 미디어와 시민의 주목을 받았죠.

하지만 피전블로그는 일회적인 예술과학 퍼포먼스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비둘기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참여한 비둘기들도 길거리를 날아다니는 개체가 아닌 소수의 비둘기 애호가들이 소유한 경주용 비둘기였죠.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암을 앓던 코스타 교수는 몇 년 뒤에 저세상으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피전블로그 프로젝트는 잊혔죠.

그런데 비둘기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모여 서울에서 회의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일부 길거리 비둘기들이 대기오염 측정장치가 든 배낭을 메고 블로그를 쓰겠다고 나선 거예요.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은 비둘기 회의가 열린다는 옛 남산식물원 터로 곧장 달려갔어요. 비둘기 수천 마리가 모였어요. 마침 피전블로그 찬성파로 보이는 하얀 비둘기가 연설 중이었습니다.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는 이승만 대통령이 주는 모이를 먹었습니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는 서울시청 옥상의 최고급 맨션에서 살았고요. 우리는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어요.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같은 중요한 행사를 기원할 때마다 우리는 하늘을 날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전국의 비둘기집은 철거됐고 우리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음식을 구걸하는 신세입니다. 꾀죄죄하고 더러운 모습만 봐온 요즈음 아이들은 우리를 ‘닭둘기’라고 놀리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우리를 잡아 시내 포장마차에 ‘닭꼬치’로 속여 파는 사냥꾼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비둘기 한 쌍이 지하철 2호선 강변역 환기구 안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은 모습(왼쪽)과 그 비둘기들을 쫓기 위해 이내 마대 자루로 막아버린 조처(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비둘기 한 쌍이 지하철 2호선 강변역 환기구 안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은 모습(왼쪽)과 그 비둘기들을 쫓기 위해 이내 마대 자루로 막아버린 조처(오른쪽). 한겨레 자료사진


‘자유 우선’ 반대파 vs ‘관계 회복’ 찬성파

하얀 비둘기는 날개를 퍼덕거린 뒤 청중을 천천히 둘러봤습니다. 마치 ‘당신도 닭꼬치로 잡혀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무언의 경고 같았죠. 그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인간이 비둘기를 존중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인간과 관계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피전블로그가 기회입니다. 우리가 서울 시내를 날아다니며 대기오염 정보를 전송한다면, 인간은 비둘기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반대편에 있는 검은색 비둘기가 말했습니다.

“잠잠하던 독극물 살포자들이 최근 들어 활동을 재개했는데, 그들이야말로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 거겠지. 거추장스러운 비둘기들은 다 죽이고, 소수 정예 요원만 남겨 인간을 위한 사이보그로 만들려는….”

그가 날개를 두어 차례 힘껏 저어 연단에 올라왔습니다.

“피전블로그는 인간의 계략이에요. 우리 비둘기 종은 ‘잃을 것은 무거운 배낭밖에 없는’ 노동자로 전락하고 말 거요. 여기 우리를 후원하는 동물단체에서 왔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봅시다.”

수수한 옷차림의 젊은 여성 주변으로 비둘기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신사 숙녀 비둘기 여러분. 불철주야 인간의 핍박 속에서 살아가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단체는 모든 종류의 동물 사용에 반대합니다. 돼지를 길러 고기로 먹는 것, 신약 개발을 위해 마우스에게 암세포를 집어넣는 것,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멧돼지를 사냥하는 것 등 모두입니다.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물은 감정이 있고, 공포를 느끼며, 취향을 가졌으며, 미래를 계획하는 ‘삶의 주체’입니다. 동물의 내재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도덕적입니다.”

비둘기들이 일제히 ‘구구구’ 하고 환호했습니다. 이번에는 찬성파의 젊은 남성이 나섰습니다.

“저도 인간-동물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아까 말씀하신 분의 동물권에 동감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런 사회가 가능할까요? 저는 오히려 피전블로그야말로 인간과 비둘기가 맺는 관계를 재구성하는 뜻깊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 최고의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 박사도 격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가 뭐라고 했는데요?”

검은 비둘기가 물었습니다.

“먼저 알아두셔야 할 게 있습니다. 해러웨이 박사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전면적으로 회복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그래서 그는 ‘부분적인 회복 그리고 함께 잘 지내기를 위한 평범한 가능성에 온 마음을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 마나 한 소리인 거 같은데요?”

“해러웨이 박사는 말합니다. 코스타 교수는 대기오염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협력을 촉발하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종차별주의자들이나 종차별주의자들은 도시의 흑인 아이들과 길거리 비둘기들 모두 통제하기 어렵고 더러운 야생의 존재로 비하했습니다. 하지만 두 존재 모두 도시를 살아가는 주체이자 객체 그리고 시민이죠. 해러웨이 박사는 대기오염 측정 임무를 띠고 도시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둘기를 보면서, 아이들이 바뀔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비둘기에게 야유를 보내거나 학대하고 어떻게 대하고 존중해야 할지 몰랐던 아이들이 비둘기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옹호하는 아이들로 변하리라는 거죠.”

비둘기 무리가 한 건물 옥상 배수로에 고인 물을 먹으며 목을 축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비둘기 무리가 한 건물 옥상 배수로에 고인 물을 먹으며 목을 축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종의 운명이 걸린 결정

해가 저물었는데도 비둘기들은 둥지로 돌아가지 않고 밤늦게까지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길거리 비둘기와 인간과 함께 사는 경주용 비둘기의 의견이 달랐습니다. 도시의 숲을 힘차게 헤치며 사냥하는 비둘기와 사람이 주는 모이로 끼니를 때우는 공원 비둘기의 입장도 달랐지요. 비둘기에게 종의 운명을 건 결정이었습니다.

 

남종영 환경 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 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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