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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서우먼’ 중국 최고의 가십거리…다쯔였을까

중국을 발칵 뒤집은 타이구리 커플… 코로나19 이후 중국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다쯔 문화’
등록 2023-06-16 17:57 수정 2023-06-21 16:35
배드민턴을 치는 ‘운동 다쯔(친구)'. 중국에선 취미활동 등을 같이 하는 다쯔 구하기가 유행이다. 바이두 갈무리

배드민턴을 치는 ‘운동 다쯔(친구)'. 중국에선 취미활동 등을 같이 하는 다쯔 구하기가 유행이다. 바이두 갈무리

중국이 발칵 뒤집혔다. 인터넷 플랫폼 틱톡에 올라온 짧은 길거리 동영상 하나가 ‘폭발’했다. 2023년 6월7일 중국 전역에서 가오카오(高考)라 부르는 대학입학시험을 치르는 날. 쓰촨성 청두의 ‘핫플레이스’ 타이구리에서 남녀 한 쌍이 손을 꼭 맞잡은 채 보행자 거리를 활보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주변에 있던 ‘길거리 찍사’도 속속 몰려들었다. 평소에도 잘 차려입은 선남선녀, 각종 숏폼 동영상과 인스타 사진을 찍는 ‘왕훙’(인터넷 스타),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으로 늘 붐비는 거리라 ‘웬만한’ 행색으로는 주목받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그들은 등장 초반부터 단박에 길거리 스타가 됐다. 둘은 상의가 같은 분홍색 계열의 커플룩을 입고 다정하게 두 손을 맞잡은 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첸서우먼’ 2023년 최고의 가십거리

사람들이 그들을 주목한 것은 비단 다정한 모습과 화려한 차림새뿐만이 아니었다. 둘의 나이 차가 심상치 않았다. 가슴 위 어깨가 시원하게 드러나는 꽃분홍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훤칠한 키와 잘 가꾼 외모, 값비싼 장신구를 착용한 젊은 여성은 어림잡아도 20대 중반 정도, 남성은 5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보란 듯이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카메라 세례에도 별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그들이 불륜 사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대반전극이 벌어졌다.

그들 모습을 우연히 찍었던 ‘길거리 찍사’ 한 명이 자신의 틱톡 계정에 동영상을 올렸다. 차림새와 외모가 워낙 시선을 끌었던지라 동영상은 삽시간에 인터넷 세상 곳곳으로 파다하게 퍼졌다. 최초 동영상이 올라온 지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둘의 신분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놀랍게도 그들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사장과 직원 관계였다. 그들이 일하는 곳은 중국에서도 ‘신의 직장’이라 부르는 공기업인 ‘중국석유그룹’ 산하 자회사. 남성은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였고, 젊은 여성은 입사한 지 2년도 채 안 된 새내기 사원이었다. 남성은 유부남인데 아내도 같은 직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누리꾼은 그들을 ‘첸서우먼’(牽手們·손잡고 데이트하는 커플)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최고급 브랜드의 보석과 1억원이 넘는 용돈을 휴대전화에 찍은 것 등 여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도 알려지면서, 이들의 데이트는 2023년 들어 중국 최고의 가십이 됐다. ‘초상권 침해’를 둘러싼 논쟁에도 불이 붙었다. 일부에서는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함부로 타인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 등에 올리는 ‘길거리 찍사’의 행위를 강력히 단속해야 하고 이를 어길 때는 ‘초상권침해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불륜 커플의 행각과 씀씀이 등이 분노를 자극했기 때문인지, 대부분이 ‘길거리 찍사’ 편이었다. 심지어 ‘길거리 찍사’들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반부패 척결’에 막대한 공을 세웠다고도 주장했다. 중국 내 보수 여론과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전 <환구시보> 편집장 후시진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했다. 후시진과 더불어 중국 내 극보수 여론을 주도하는 쓰마난은 이런 글을 남겼다.

“타이구리에서 손잡고 걷던 커플은 혹시 다쯔(搭子)가 아니었을까?”

‘길거리에서 위 사진처럼 서로 손잡고 함께 사진 찍을 다쯔를 구한다’는 글. 사진은 쓰촨성 청두 타이구리 불륜 커플의 모습.

‘길거리에서 위 사진처럼 서로 손잡고 함께 사진 찍을 다쯔를 구한다’는 글. 사진은 쓰촨성 청두 타이구리 불륜 커플의 모습.

취미·취향·목적 공유하는 ‘임시 친구’

코로나19가 사실상 종료된 2023년 초 이후, 중국의 20·30대 젊은층 사이에서 ‘다쯔’라는 새로운 사교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다쯔는 영어의 ‘메이트’(Mate)와 유사한 의미다. 비슷한 취미나 취향, 특정 목적 등을 함께 수행하기 위해 찾는 ‘임시 친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상하이 등을 중심으로 강남 지역의 ‘같이 노는 친구’ 혹은 ‘무슨 일을 같이 하는 친구’를 일컫는 방언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졌다. ‘샤오훙수’ 등 젊은 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다쯔 문화’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베이징의 한 대학원에 재학 중인 쑤저린은 공원에 가는 걸 좋아한다. 원래 매주 한 번씩 기숙사 룸메이트와 함께 가기로 약속했지만 나중에 그 친구가 개인적 사정이 생겨 갈 수 없자, 할 수 없이 ‘다쯔’를 찾아야 했다. 그는 공원에 갈 때 다른 사람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걸 좋아해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찍어줄 수 있는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나 대학원생 혹은 대학생을 찾는다. 시간 날 때 함께 베이징 공원에 산책 가서 서로 사진을 찍어줄 수 있는 다쯔를 원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 결과 그는 두 명의 적합한 다쯔를 찾았고, 시간이 나면 일주일에 한 번씩 그들과 같이 공원에 가서 즐겁게 논다.”(<중국청년보> 2023년 6월1일치)

다쯔는 생판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고, 같은 직장이나 동네에서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음식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밥을 같이 먹는 다쯔(飯搭子·밥친구)를 구할 수 있고, 여행 취향이 비슷한 다쯔를 구해 함께 여행할 수도 있다. 심지어 도서관에 같이 가서 공부하는 다쯔를 구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 함께 갈 다쯔를 구하기도 한다.

<중국청년보>가 설문조사 회사와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조사 참여자 중 72.6%가 ‘자신의 생활 속에 여러 다쯔가 있다’고 답했다. 이 중 68.9%는 “생활 속에서 각종 다쯔를 찾는 것은 기존의 익숙하고 편안한 사교 관계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사교를 찾는 용감한 방식”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주로 저녁 식사(52.9%), 운동(43.4%), 여행(37.7%), 공부(34.2%), 게임(31.1%) 등의 순으로 선호하는 다쯔의 유형을 밝혔다. 이 외에 함께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다쯔(19.9%)를 구한다는 사람도 많았다.

하얼빈에서 회사 다니는 사람이 평일 퇴근 뒤, 주말에 함께 놀아줄 다쯔를 구한다는 내용.

하얼빈에서 회사 다니는 사람이 평일 퇴근 뒤, 주말에 함께 놀아줄 다쯔를 구한다는 내용.

부담 없으면서 심리적 위로가 되는

중국 내 주요 매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다쯔 현상에 주목한다. 이 새로운 유형의 사회관계 맺기가 어떤 방향으로 확대되고 변화할지, 중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찰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가 대유행할 때 중국의 젊은 세대는 다른 나라보다 더 혹독한 방역정책을 경험했고 그에 따른 불안감도 더 많이 겪었다. 코로나19 기간에 잦은 감원과 해고로 직장 내 인간관계도 불안정해지자 이에 대한 사회적·심리적 돌파구로 ‘다쯔 문화’가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주요 매체와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 소셜미디어이기에 그것을 통해 ‘가볍고 부담 없으면서도, 책임질 필요는 없지만’ 심리적 위로가 되는 새로운 사회관계를 각종 다쯔에서 찾는다고 분석했다.

현재 유행하는 다쯔는 흔히 ‘친구 사이’라고 하기에는 가볍고 구속력이 없는,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관계다. 배낭여행 등을 혼자 갔을 때 게스트하우스나 여행지에서 하루 또는 며칠 동안 함께 여행을 다니거나 밥을 같이 먹을 임시 친구를 구하는 것 등이 다쯔 찾기 유형과 비슷하다. 물론 다쯔 관계가 장기화해 연인이 되거나 더 깊은 친구 사이로 발전할 수도 있다.

몇 년 전, 중국에서는 설날 등 명절에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가족이나 친척이 ‘왜 결혼 상대자를 데려오지 않냐’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 인터넷 등에서 ‘설에 함께 고향에 가줄 가짜 짝을 구합니다’라는 ‘구인광고’가 유행했다. 그때는 서로 적당한 ‘알바비’에 합의한 뒤 가짜 친구나 임시 연인이 됐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다쯔 문화는 금전거래가 아닌 상호호혜를 목적으로 하는 자발적인 사교 형태다.

주말에 함께 베이징의 길거리를 산책할 다쯔를 구한다는 내용.

주말에 함께 베이징의 길거리를 산책할 다쯔를 구한다는 내용.

‘초상권 침해’ 고소할 예정이지만

샤오훙수 같은 소셜미디어에는 하루에도 수천 개의 각종 ‘다쯔를 찾는다’는 글이 올라온다. 지금 당장 슬프거나 우울해서 ‘같이 울어줄 다쯔를 구한다’는 메모를 소셜미디어에 남겨보라. 사방에서 함께 울어줄 다쯔들이 도착할 것이다.

분홍색 커플룩을 입고 다정하게 손잡은 채 청두 타이구리 거리를 걷던 ‘첸서우먼’ 불륜 커플도 과연 다쯔였을까? 그 공기업 사장님은 ‘나와 함께 분홍색 커플룩을 입은 채 연인처럼 다정하게 손잡고 함께 거리를 활보할 미모의 젊은 여성 다쯔를 구한다’는 ‘쪽지’를 소셜미디어에 남겼을까? 소문으로는 당사자 커플은 그 길거리 사진사를 중대한 ‘초상권 침해’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어쨌든 ‘첸서우먼’은 다음날 바로 직장에서 해고됐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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