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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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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홍콩을 불친절하게 만들었나? 불꺼진 센트럴이 답하다

3년 만에 코로나 걷히자 몰려든 중국인들로 홍콩은 몸살
중앙정부에 자유 잃고 화난 홍콩인들은 어디로 가나
등록 2023-04-07 14:00 수정 2023-04-13 06:20
중국 중앙정부에 짓눌린 홍콩 사회의 반대륙 정서가 홍콩인들의 불친절과 무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3년 2월11일 홍콩 중심에 있는 관람차가 안개에 싸여 있다. REUTERS 연합

중국 중앙정부에 짓눌린 홍콩 사회의 반대륙 정서가 홍콩인들의 불친절과 무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3년 2월11일 홍콩 중심에 있는 관람차가 안개에 싸여 있다. REUTERS 연합

“당신 서비스 태도가 왜 이리 불친절하죠?! 내가 뭘 잘못했길래 그렇게 죽상을 하고서는 무시하냐고!” 홍콩 침사추이 빅토리아 해변 산책로 한가운데 ‘스타의 거리’ 옆에 있는 ‘스타벅스’ 매장 안. 중국 표준말인 보통화를 쓰는 한 젊은 여성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매장 직원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2023년 3월 중순, 코로나19 발생 이후 다시 찾은 홍콩 거리에는 한눈에 봐도 ‘티가 나는’ 중국 관광객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지만 매장 안에는 손님으로 그득했다. 다들 힐끔거리며 그 상황을 ‘구경’하고 있었지만, 매장 직원들은 의외로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마스크를 써서 정확한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만 무표정한 눈동자에는 ‘대꾸하고 싶은 마음 전혀 없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중국에서 온 그 젊은 여성이 대체 무슨 ‘짜증 나는’ 상황을 겪었기에 그렇게 화내는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대꾸하고 싶지 않은 홍콩인의 눈빛

‘스타의 거리’에 오기 전, 침사추이 지하철역 부근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호텔 직원의 추천을 받아 간 곳이다. 그 부근에서는 나름 ‘핫플’ 맛집이라고 했다.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대기 줄이 어마어마했다. 주변에 마땅히 갈 만한 다른 식당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번호표를 받고 무작정 기다렸다. 대기 줄을 선 손님 대부분이 중국에서 온 여행객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 대다수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중국어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주문했다. 식당 내부는 거의 한 치의 공간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바로 옆에 앉은 사람의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식당 안은 온통 바글거리는 ‘중국어’로 가득했다. 옆 테이블에서 날아오는 침방울이 내 접시에 떨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풍경이었다.

혼이 쏙 빠져서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커플이 ‘아는 체’를 했다. “혹시 한국에서 왔나요?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 같아서….” 그 커플은 ‘뜻밖에도’ 홍콩 현지인이었다.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누다가 그들 중 남자가 인상을 조금 구기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부터 홍콩 거리에 중국인들이 다시 득실거리기 시작했어요. 2월부터 다시 중국과 국경을 개방하고 여행자를 받아들였거든요. 이 식당만 해도 불과 몇 달 전까지 대기 없이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30분 이상 줄을 서야 해요. 식당 주인은 돈을 많이 벌어 좋을지 몰라도 우리 홍콩인들은 정말 짜증 난다고요. 중국 사람들이 온 홍콩 거리를 다 점령해버려서 안 그래도 좁아터진 땅이 터져나갈 거 같아요. 예의는 또 얼마나 없는지….” 그 홍콩 남자는 중국에서 밀려드는 관광객들과 그들의 ‘예의 없는’ 행동이 “정말 짜증 난다”고 말했다.

다음날, 피크 트램을 타고 내려오는 길에 센트럴 부근을 한참 배회하다가 택시를 탔다. 홍콩의 가장 번화한 상업지구인 센트럴의 좀 ‘있어 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을까 했는데 결국엔 못 찾고 다시 숙소가 있는 침사추이로 돌아가기로 했다. 저녁 8시가 채 되지 않은 비교적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센트럴의 으리 번쩍한 빌딩숲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아직 침체한 경제 탓인지 불 꺼진 빌딩과 사무실이 제법 많았다. 택시를 탄 뒤 기사 아저씨에게 “센트럴이 예전보다 많이 캄캄해진 것 같다”며 말을 걸었다. 우리 일행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반가워한 기사 아저씨가 제법 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센트럴 경기가 많이 죽었어요. 코로나19 영향도 있겠지만 이게 다 망할 중국 정부 탓이라고요. 우리가 알던 홍콩은 이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보면 돼요. 혹시 1997년 이전에 홍콩에 와본 적이 있나요? 1997년 중국 반환 전과 후의 홍콩은 완전히 다른 세계랍니다. 자유가 사라졌어요. 영국 식민지 시절에도 물론 완전한 자유는 없었죠. 하지만 그때는 돈이라도 마음대로 벌 수 있었어요. 중국에 반환된 뒤로는 그나마 있던 경제적 자유마저도 위협받는 처지랍니다. 중국 정부에 조금이라도 반기를 드는 기업인들은 온갖 꼬투리를 잡아서 골탕을 먹이거나 재산을 몰수하기도 해요. 2019년 송환법 개정 반대 시위가 있기 전부터 이미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다 홍콩을 떠났어요. 홍콩인이 떠난 거리에는 중국 사람이 물밀 듯이 몰려오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자기들 덕에 홍콩 경제가 살아나고 우리가 그나마 먹고살 수 있다고 허풍을 치고 있죠.

“자식이 있다면 홍콩을 탈출하고 싶다”

나는 4살 때 부모님을 따라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이주해왔답니다. 중국 문화대혁명 기간에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힌 부모님과 함께 어렵사리 중국을 탈출해서 홍콩으로 넘어온 거죠. 그때는 중국에서 탈출해 홍콩으로 넘어오는 정치난민이 많았어요.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분명히 나보고 또 다른 나라로 탈출하라고 했을 거예요. 이 꼴을 보기 전에 돌아가신 게 천만다행이죠. 나는 결혼했지만 자식은 없답니다. 아내는 6년 전에 죽었어요. 아마도 자식이 있었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홍콩을 탈출했을 겁니다. 쉬는 날 혼자 좁은 집에 있자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지금 홍콩인의 처지가 딱 내가 사는 이 몽콕의 낡고 좁은 아파트 같은 신세가 아닐까 하는.

몇 년 전부터는 아예 텔레비전 뉴스도 보지 않고 신문이나 잡지, 책 같은 것도 일절 읽지 않아요. 다 가짜 뉴스들뿐이거든요. 중국 정부가 시키는 대로 쓰고 떠들어대는 내용이라 보기도 싫어요. 진짜 뉴스를 듣고 싶으면 대만으로 가야 해요. 대만이 유일하게 남은 자유세계니까요. 몇 년 더 지나면 몽콕 거리에도 홍콩 현지인보다는 중국인 거주자가 더 많아질 거예요. 홍콩은 이제 빛을 잃은 도시랍니다. 센트럴이 어두워지는 것처럼요.”

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침사추이 골목가에 있는 한 노천식당으로 데려다줬다. 그곳은 현지인이 자주 가는 노천식당가이기 때문에 ‘무질서한 중국 사람들’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을 거라는 말도 덤으로 해줬다. 그 노천식당가에서 절대로 한 블록 더 가지 말라는 당부도 했다. 그곳은 중국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당부했다. 홍콩에서는 보통화를 너무 잘하는 ‘척’하지 말라고. 중국에서 온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2023년 2월6일 이후, 홍콩과 중국 간 국경이 3년 만에 다시 활짝 열렸다. 4월1일부터는 베이징에서 홍콩의 구룡역까지 가는 고속열차도 운행을 재개했다. 중국과 홍콩을 오가는 모든 육로와 하늘길이 3년 만에 다시 열리자 홍콩과 마카오는 중국에서 밀려오는 관광객들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2월 이후 대부분의 코로나19 관련 방역이 해제되고 중국인에게 국경을 개방한 홍콩 정부는 ‘헬로 홍콩’을 모토로 내걸고 중국과 국외 관광객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인터넷 등에서 수십만 장의 무료 항공권과 상품권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관광객 유치 전략 덕분에 주요 관광지와 쇼핑몰 등의 영업 상황이 대부분 3년 전 코로나 시대 이전 수준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육로로 홍콩에 관광을 오는 중국의 단체와 개인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빅토리아공원 주변과 침사추이, 코즈웨이베이 쇼핑가 등 주요 관광지 인근은 걸어다니기도 힘들 정도로 북적대는 여행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선전과 홍콩을 통관하는 해관들이 위치한 지하철 부근 상점가와 약국 등에는 중국 보따리상도 다시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중국인들의 홍콩 여행 자유가 허용되자 수많은 중국인이 홍콩으로 건너와서 분유와 기저귀 등 중국에서 가짜가 많아서 탈이 많았던 상품을 대량으로 쓸어 담아갔다. 또 자녀에게 홍콩 신분증을 만들어 주기 위해 홍콩으로 원정출산을 오는 중국 임산부가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홍콩인은 이들을 일컬어 ‘메뚜기떼’라 부르며 홍콩의 온갖 자원을 축내고 싹쓸이해간다고 비난했다. 2015년께는 상점가 인근 홍콩 주민들이 시위까지 벌였다.

2023년 2월 홍콩인과 홍콩 언론은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고 불평한다. 더군다나 2019년 홍콩과 중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송환법 반대 시위 여파로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진 터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규모 중국 관광객을 바라보는 홍콩인의 시선은 예전보다 더 싸늘해졌다. 홍콩 인터넷과 언론에서는 관광객을 노리고 홍콩으로 넘어와 원정 구걸을 하는 ‘중국 거지들’도 나타나기 시작했고, 공중화장실 앞에서 삼삼오오 앉거나 서서 도시락을 까먹는 등 중국의 저가 단체관광객의 무질서한 공중도덕 행태가 홍콩의 미관을 해친다고 보도하며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반면, 중국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등에서는 홍콩 주요 관광지에서 보통화를 사용하는 중국 여행객을 대상으로 노골적인 차별대우를 하고 있고, 이를 직접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경험담’도 쏟아지면서 홍콩과 중국 간 민심 악화에 기름을 붓고 있다.

홍콩인의 얼굴에서 사라진 웃음

20여 년 전, 처음 홍콩을 방문했을 때 첫인상은 홍콩인이 ‘참 친절하다’는 것이었다. 그 뒤 2019년 전까지 1~2년에 한 번꼴로 방문했을 때마다 그 ‘친절함’의 정도가 조금씩 달라짐을 미세하게 느꼈다. 특히 2014년 소위 ‘우산혁명’을 기점으로 중국 정부가 노골적인 ‘흡수통합’을 추구하면서 중국인을 향한 홍콩인의 ‘친절도’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023년 3월 중순, 아주 오랜만에 다시 찾은 홍콩 거리는 다시 바글대는 여행객으로 활기차 보였지만 홍콩인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져 있었다. ‘친절했던 홍콩인’은 이제 ‘(서비스) 태도가 짜증 난다’는 악다구니마저 듣고 있다. 누가 그 친절했던 홍콩인을 불친절하게 만들었을까.

홍콩=박현숙 자유기고가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습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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