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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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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집에선 ‘반한’ 한국 집에선 ‘반중’

3년 만에 ‘집으로’ 가는 길… 비행기로 1시간40분, 심리적 거리는 안드로메다
등록 2023-02-10 14:59 수정 2023-02-13 00:48
2023년 1월2일 오후 중국발 입국자들이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코로나19검사센터에서 유전자증폭검사(PCR)를 받고 있다. 방역당국은 모든 중국발 입국자를 대상으로 유전자증폭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3년 1월2일 오후 중국발 입국자들이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코로나19검사센터에서 유전자증폭검사(PCR)를 받고 있다. 방역당국은 모든 중국발 입국자를 대상으로 유전자증폭 검사를 받도록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에 갔다. 꼬박 3년 만이다. 중국 베이징에서 서울까지 가는 비행시간은 1시간40분여. 그 지척의 거리를 돌고 돌아서 무려 1박2일이 걸려 도착했다. 베이징에서 인천까지 가는 직항은 일주일에 두 번. 날짜를 맞추기도 힘들지만 표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표가 있다 해도 편도에 60만원이 넘는 고가의 직항표를 주저 없이 선뜻 사기는 힘들었다. 아이들을 포함해 세 명의 왕복 직항표 값만 400여만원. 3년 전만 해도 세 명 왕복 항공료가 100만원이 채 넘지 않았다. 비수기에는 시장판 떨이처럼 나오는 저가 항공을 이용해 주말에 잠깐 이웃 마을 마실 나가듯 수시로 오가던 하늘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3년 동안 한국 ‘집으로 가는 길’은 여러모로 고난의 대장정이 돼버렸다.

인천으로 가는 가장 싼 항공료를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돈이 없으면 몸도 고생하고 인터넷 검색하는 품도 더 많이 든다. 하지만 3년도 참고 기다렸는데 그깟 잠깐의 고생이 무슨 대수랴. 갈 수만 있다면 지구 한 바퀴를 뱅뱅 돌아서라도 가고 싶었다. 다행히 눈에 핏발이 서기 전에 가장 저렴한 왕복 항공권을 구매하는 데 성공했다.

갈 수만 있다면 지구 한 바퀴도 돌겠지만… 너무 비싸네

베이징에서 기차로 가장 가까운 지역 중 하나인 산둥성 지난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였다. 지난에서 인천까지 일주일에 한 번 운항하는 직항은 아침 8시5분 비행기다. 출발 전날 밤, 베이징에서 지난까지 1시간30분 정도 고속열차를 타고 갔다. 그리고 다시 40분여 택시를 타고 공항 근처 호텔에 가서 6시간 정도 머무르다 새벽 5시 무렵 공항으로 출발했다. 드디어 ‘집으로’ 가는 길이 조금씩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의 귀향길처럼 애달프고 사무쳤다.

2022년 12월7일 ‘신방역 10조’ 정책 발표를 기점으로 중국 정부는 지난 3년간 실시한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을 사실상 포기했다. 그해 11월 중순,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에 항거하는 소위 ‘백지혁명’이 일어난 뒤 중국 정부는 신줏단지 모시듯이 떠받들던 ‘제로 코로나’ 정책을 버리고 하루아침에 모든 인민에게 ‘자유’를 선포했다. 눈만 뜨면 해오던 피시아르(PCR) 검사와 양성자 격리 정책도 사라지고 건강 코드 없이 모든 국내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2023년 1월8일부터는 해외여행도 허용됐다. 꿈인가 생시인가 싶을 만큼 천지개벽 같은 변화였다.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 정책을 선언했을 때 중국인이 느꼈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벅찬 심정이 아마도 이러지 않았을까. 10년간 문화대혁명이라는 긴 암흑 시절을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맞은 해방과 자유에 버금가는 기쁨이었다. ‘제로 코로나’ 포기 선언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에 걸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교민과 다문화 가정에 복음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한국 ‘집으로 가는 길’이 다시 열린 것이다.

2022년 12월 이후 방역정책이 풀리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14억 중국인의 거의 절반 이상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됐다. 베이징은 12월 말쯤엔 감염 대폭풍이 불었다. 나를 비롯해 우리 가족도 그 폭풍의 한가운데를 지나오며 ‘감염 뒤 완치자’가 됐다. 수많은 교민이 서둘러 한국행 표를 예매하고 속속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중국 내 대규모 감염이 시작되자 일본을 시작으로 한국과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 중국인에 대한 여행 제한 정책을 실시했다. 그중 한국 정부가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재정책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경고와 항의에도 중국발 변이 발생 우려와 중국 정부의 투명하지 않은 코로나19 상황 공개 등을 이유로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강력한 제재정책을 강행했다. 내국인과 외국인 장기체류자는 공항에서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24시간 이내에 가까운 보건소에서 피시아르 검사를 받아도 되지만, (1월5일 전에 비자를 발급받은) 중국인 단기 비자 소유자는 공항에서 바로 따로 마련된 피시아르 검사장으로 이동해 한 명당 6만8천원을 내고 피시아르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검사 결과 양성인 경우에는 (한국 내 지인이 없으면) 시설 격리도 받아야 한다. 중국 국적인 아들은 단기 비자를 받아 입국하는데, 꼼짝없이 공항에서 따로 ‘분류돼’ 피시아르 검사장으로 이동해야만 한다.

사드 배치 논란 이후 가장 격렬한 반한 감정

한국 정부의 이와 같은 정책은 지난 3년간 중국이 모든 외국인 입국자에게 해왔던 일방적이고 과도한 입국 정책에 비하면 솔직히 양반 같은 정책이다. ‘그깟’ 피시아르 검사는 중국에 살면서 3년 동안 이미 몸에 밴 습관이다. 하지만 전세계 거의 모든 방역정책이 해제된 시점에서 유독 한국 정부만 중국에 비자 제한 조치 등을 취하는 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이미 국내 방역이 대부분 해제됐고 변이가 가장 많이 나오는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도 비자 제한 없이 출입국이 자유로운 마당에 굳이 중국인 비자 제한 조처를 한다고 해서 상황이 더 악화하거나 완화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 내 여론은 더 들끓었다. 1월5일 이후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제재 조치와 공항 도착 직후 중국인 ‘특별 대우’ 등의 보도가 쏟아지자 중국 인터넷에서는 유례없는 ‘반한 감정’이 끓어올랐다. 특히 2030 젊은 세대가 많이 이용하는 ‘샤오훙수’ 등과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플랫폼에서 폭발적인 반한 여론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2014년 한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 이후 가장 격렬한 반한 감정이다. 특히 이른바 ‘케이(K)문화’에 열광하며 한국에 비교적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 중국 엠제트(MZ)세대의 ‘배신감’이 컸던 모양이다. 한국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날, 중국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고딩 딸’이 “지금 중국 인터넷 여기저기서 한국 욕이 넘쳐난다”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초등학교 시절 중국 동창생의 소셜네트워크에도 “지금 한국 가는 사람들은 다 얼빠진 매국노!”라는 포스팅이 올라왔다며 울상이었다.

1월9일 아침 8시5분. 산둥성 지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한국시각 오전 10시40분께 인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도착하자마자 입국장으로 나오는 통로에는 ‘중국발 입국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도착한 승객들과는 달리 ‘중국발 입국자’들은 별도의 출입 통로로 안내됐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중국인 단기 비자 소지자와 내국인과 외국인 장기체류 비자 소지자로 분류됐다. 단기 비자 소지자에게는 노란 표찰을 걸어주며 ‘절대로 벗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노란 표찰을 걸고 별도로 마련된 피시아르 검사장으로 이동했다. 나는 미성년자 아들의 보호자 자격으로 우리를 인솔한 군인들을 따라 함께 이동했다. 짐을 찾고 군인들의 안내를 따라 입국장 문을 나오자 우리는 다시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됐다.

우리를 기다리던 사람은 군인과 방역요원뿐만이 아니었다. 입국장 입구에서부터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포알 같은 망원렌즈를 단 카메라를 연신 눌러댔다. 중국 인터넷에서 ‘한국에 입국하는 순간 동물원 원숭이 취급 당한다’며 분노하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어렴풋이 이해됐다. 기자들은 피시아르 검사장 입구까지 따라와서 끈질기게 찍어댔고 검사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에도 ‘찰칵찰칵’ 셔터 소리가 요란하게 따라왔다.

중국 MZ는 ‘배신감’, 한국 MZ는 ‘안물안궁’

3시간여 아들의 피시아르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본 대형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중국발 입국자들’과 중국 내 코로나19 감염 소식이 쉴 새 없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정작 중국에 있을 때보다 한국 텔레비전 뉴스에서 중국 내 상황이 몇 배는 더 심각하게 다가왔다. 3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아들의 피시아르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젊은 중국인 커플의 결과도 함께 나왔다. 그들 중 여자친구가 양성 통보를 받았다. 거의 울 듯한 표정이 된 그 커플이 함께 격리시설로 갔는지 아니면 여자친구만 따로 갔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드디어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멀고도 긴, 고단한 여정이었다.

1월21일. 설 전야. 3년 만에 한국의 온 가족이 다 모였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원년에 대학생이 된 조카는 어느덧 대학교 3학년이 됐다. 지난 3년 동안 거의 온라인 수업만 받느라 대학에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고 졸업 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우울해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의 공통 화제는 ‘중국’이었다. 놀랍게도 모든 가족이 ‘반중 정서’를 내비쳤다. 한국의 대표적인 MZ세대인 대학생 조카의 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저희 세대는 중국에 별 관심 없어요.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이에요. 굳이 중국에 여행을 가고 싶지도 않아요. 세상에 갈 곳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중국에 가고 싶겠어요? 중국은 갈수록 왜 그렇게 나쁜 나라가 돼가나요? 저는 혐중까지는 아니지만 친구 중에는 혐중 정서를 가진 사람도 많아요. 그렇다고 우리가 비이성적으로 반중이나 혐중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게 다 중국이 그동안 한국 같은 힘없는 이웃 국가에 무례하게 굴고 독재정치를 강화한 자업자득 아닌가요?”

2월6일.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다. 돌아가는 길도 올 때와 똑같은 경로로 갔다. 인천에서 산둥성 지난으로 간 다음, 다시 고속열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갔다. 한국 정부의 중국발 입국자 방역정책과 비자 제한 조치가 2월 말까지 연장되자 중국 정부도 한국발 입국자에 대한 피시아르 정책과 비자 제한 조치를 했다. 이래저래 동네북이 된 건 우리처럼 양국을 일상적으로 오가야 하는 ‘새우들’이다. 다행히 중국 공항에서 실시하는 ‘한국발 입국자’(중국인은 제외)에 대한 피시아르 검사는 ‘눈 가리고 아웅’ 수준의 형식적인 검사였다. 입안에 슬쩍 면봉만 넣고 종료한 뒤 검사 결과를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입국장으로 나왔다. 한국 언론에서는 ‘보복조치’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귀여운’ 수준의 보복이었다. 지난 3년간 무시무시한 ‘제로 코로나’ 정책도 견뎌왔는데 격리 없이 바로 집으로 보내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했다.

한-중 고래 싸움에 피해 보는 ‘새우들’

입국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3년 만에 고향 산둥성으로 돌아간다는 중국인 노무자를 만났다. 한국 건설현장에서 일한다는 그는 3년 만에 귀향하는 사람치고는 의외로 표정이 무덤덤했다. 그는 말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지금도 아리송해요. 한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요? 글쎄요. 당분간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중국인을 대놓고 깔보고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도 돈 벌려면 다시 나가야겠지만 당분간은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어요!”

모두 3년 만에 각자의 험난한 여정을 거쳐 한국과 중국의 ‘집으로’ 돌아갔다. 나에게는 물리적 거리보다 한국과 중국 사이 쌓인 마음의 거리가 훨씬 더 멀게 느껴졌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집으로 돌아간 수많은 ‘우리’와 ‘그들’ 그리고 한국 입국장에서 양성 통보를 받은 중국인 커플은 지금쯤 모두 집에서 푹 쉬고 있을까?

베이징=박현숙 자유기고가

*북경만보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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