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새해가 밝았다. 날짜 하루 바뀌었을 뿐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묵은해를 털고 새 희망을 다짐한다. 2022년에도 세계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이 있었고 일부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중 법과 권력이 인권을 억압한 몇몇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되짚어본다.
2022년 11월30일, 미얀마 군사법원은 비공개 재판에서 대학생 7명을 포함한 민주화운동 활동가 11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앞서 7월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전 의원을 포함해 민주 진영 인사 4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미얀마에서 정치범 사형은 1976년 이후 46년 만에 처음이었다. 국제앰네스티, 휴먼라이츠워치 등 국제 인권단체들은 우려와 비판을 쏟아냈다. 유엔 고등인권판무관실은 성명을 내어 “미얀마 군부는 비밀 법정에서 공정한 재판의 기본 원칙과 재판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사법의 핵심 원리에 위배되는 절차를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어떤 투명성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압승한 총선 결과에 불복해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했다. 군부는 국민의 퇴진 요구 시위와 불복종운동에 무자비한 폭력과 살상으로 대응했다. 야권과 민주화 진영이 그해 4~5월 민족통합정부(NUG)와 시민방위군을 구성하고 무장투쟁을 전개하면서 내전 사태가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쿠데타 이후 민간인과 시민방위군 사망자만 2700여 명에 구금자 1만6700여 명, 군사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민주 인사도 궐석재판을 포함해 139명에 이른다. 유엔은 “미얀마 군부가 야당을 분쇄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사형 선고를 활용한다”고 비난했다.
2022년 12월12일, 히잡 거부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확산한 이란에선 시위에 참여했던 23살 청년에 대한 사형 집행이 공개적으로 집행됐다. 이란 당국이 밝힌 혐의는 ‘보안군 살해’였다. 앞서 11월13일에는 또 다른 23살 청년이 ‘도로 점거 시위’와 ‘보안군 상해’ 혐의로 교수대에 올랐다. 이란 사법부는 “이들은 신에 대항한 전쟁을 벌인 죄로 법에 따라 처벌받았다”고 밝혔다. 12월23일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이란의 반정부 감시단체의 공식 문서와 증언 등을 취합해 반정부 시위 구금자 중 최소 43명의 사형 집행이 임박했다고 전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선 2021년 미군 철수 이후 재집권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탈레반의 공포와 억압 통치가 되살아나고 있다. 2022년 12월7일 탈레반 정부는 살인과 절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남성을 공개처형했다. 탈레반은 집권 직후 정부 직제에서 여성부를 폐지하고 덕행보급과타락방지부를 부활시킨 데 이어, 최근에는 여성 복식 규제 강화, 여성의 대학교육 금지, 여성의 외출과 취업 제한 등 시대착오적 퇴행으로 치닫고 있다. 11월14일 탈레반 대변인은 최고지도자가 공개처형, 투석형, 채찍형, 신체절단형을 포함한 이슬람법(샤리아)을 전면적으로 즉각 시행하라 명령했다고 발표했다.
2022년 9월, 필리핀 정부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조사 재개를 거부했다. “ICC가 필리핀에 대한 관할권이 없으며, 마약과의 전쟁은 국가의 공권력이 적절하게 사용된 것”이란 이유에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재임 1965~1986)의 아들로, 2022년 5월 대선에서 승리했다. 필리핀은 두테르테 정권 출범 직후 ICC 회원국으로 가입했다가 2018년 2월 ICC 검사실이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예비조사에 들어가자 탈퇴해버렸다.
두테르테는 2016년 6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재임 중 초법적인 마약범 소탕전을 벌이면서 공식 기록으로만 6117명의 마약 거래자와 복용자를 살해했다. 수사와 재판 절차는 무시됐다. 경찰은 사실상 무제한의 ‘사법 살인권’을 부여받았다. 인권단체들은 실제 사망자가 3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2022년 1월 두테르테 대통령(당시)은 마약과의 전쟁을 언급하며 “나를 죽이거나 감옥에 처넣어라. 그래도 나는 그 ××들의 죽음에 절대로, 절대로 사과하지 않겠다. 내 약속이 뭐였나? 법과 질서였다”고 강변했다.
2022년 10월30일, 브라질 대선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7·노동자당) 전 대통령이 정계 일선에서 물러난 지 12년 만에 다시 3선에 성공했다. 브라질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을 연임(2003~2010년)했던 룰라의 복귀는 극적이었다. 브라질 검찰은 룰라가 퇴임한 뒤 그를 재임 중 뇌물 수수 등 부패 혐의로 잇달아 기소했다. 룰라는 줄곧 ‘무죄’를 주장했지만, 2018년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형량보다 무거운 징역 12년, 피선거권 박탈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2021년 4월 브라질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의 ‘무효’를 확정하기 전까지 룰라는 대선 출마 자격은커녕 580일 수감 생활 끝에 잠시 풀려난 기결수 신분이었다.
브라질 대법원은 룰라의 유무죄를 판단하지 않았지만 “수사와 판결이 편파적으로 이뤄졌”으며 “재판 관할권도 부적절”하다고 판결했다. 2022년 4월에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UNHRC)가 룰라의 진정에 대한 조사 보고서에서 “(룰라에 대한) 브라질 사법당국의 수사와 기소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사생활의 권리, 정치적 권리, 무죄 추정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유엔 인권규약 중 ‘B 규약’으로 불리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을 다룬다.
앞서 룰라는 대통령 재임 8년 동안 국가사법위원회를 신설하고 사법개혁을 추진하면서 사법부 엘리트 집단과 갈등을 빚었다. 룰라를 감옥에 보냈던 세르지우 모루 판사는 군인 출신의 극우 정치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정부의 첫 법무장관을 지냈다. 앞서 2019년 브라질의 한 언론매체는 모루 판사와 연방 검사들이 룰라에 대한 유죄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비밀리에 의견을 조율했다고 폭로했다. 2022년 9월 브라질 연방선거법원은 모루 전 판사의 가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등 ‘재판 거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앞에 나온 다른 나라들의 사법 철권에 견주면, 튀르키예의 사례는 잔주먹 같다. 2022년 12월14일 튀르키예 법원은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에게 ‘공무원 모욕죄’로 2년7개월 징역형을 선고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했다. 야당 공화인민당 소속인 이마모을루는 “판결이 정치적이고 불법적”이라며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마모을루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최대 걸림돌이다. 튀르키예 안팎에선 에르도안이 2023년 6월 대선을 앞두고 이마모을루의 손발을 묶어두려는 속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반대로 이스라엘에선 정치적 우군을 위해 법을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2022년 12월27일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는 기존 정부조직법에서 징역형 전과자의 정부 입각을 금지하는 조항을 형 집행이 유예된 경우에는 예외로 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 처리는 재집권을 앞둔 베냐민 네타냐후 전 총리가 주도하는 우파 정당들이 앞장섰다. 이로써 네타냐후는 탈세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초정통파 유대교 정당(샤스)의 대표를 연정 파트너로 참여시킬 수 있게 됐다.
기득권 권력집단이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정치적 반대자를 숙청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의를 파묻은 사례는 끝도 없을 테다. 오히려 그런 악습이 갈수록 더 그럴듯한 명분과 정교하고 집요한 사법 절차의 형식을 갖추는 게 문제다. 결론지어놓은 과잉 수사, 법을 상대를 굴복시키는 압박 수단으로 삼는 행태, 실체적 진실 발견에 실패하는 판결은 사법 전문가 스스로 법의 권위를 우습게 만들고 사법 신뢰를 떨어뜨린다.
꼭 남의 나라 일만도 아니다. 한국에서도 박정희·전두환 등 권위주의 정부 시절 사법부와 검찰은 정치권력의 시녀였다. 고문 수사와 사법 살인을 비롯한 의문사가 끊이지 않았다. 절차적 민주화 이후라고 달라졌을까?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이 첫 유죄 판결을 받은 게 불과 2년 전, 2021년 3월이다.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실과 국무위원회, 정부 주요 기관의 고위직 상당수를 검사 출신으로 채우고 전 정권과 야권 지도자들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강행하며 비판적 언론에는 재갈을 물리려 한다.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어크로스 펴냄)에서 “많은 독재정권의 민주주의 전복 시도는 의회나 법원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에서 ‘합법적’이다. (…) 시민들은 정부를 비판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세무조사를 받거나 소송당한다. 대다수 사람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고 짚었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막스 베버는 <소명(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권력본능은 정치가에게 정상적 자질의 하나다. 그러나 이런 권력 추구가 ‘대의’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그의 직업이 갖는 신성한 정신에 대한 죄악이 시작된다”고 했다. 정치가 끊임없는 긴장과 성찰, 고도의 윤리의식을 요구하는 이유도 “정치가는 모든 폭력/강권력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되”기 때문이다. 정치 지도자가 국가 공권력을 공공선과 민의를 거슬러 비민주적으로 행사하는 순간, 그는 한낱 깡패나 독재자일 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정의의 여신 디케는 눈을 가렸다. 한 손에 칼,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었다. 어떤 편견과 사심도 없이 엄정한 심판을 한다는 상징이다. 오늘날 디케가 세계 곳곳의 문명사회에서 저질러지는 사법 전횡과 농단을 본다면 그 한심함이 낯뜨거워 눈을 가리지 않을까.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호모 미그란스: 조일준 선임기자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안들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 지식, 그에 얽힌 사람들 이야기를 4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호모 미그란스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이주하는 인간’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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