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열성 독자층이 많은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의 작품 중에 소설 <64>가 있다. 주요 내용은 14년 전 발생한 미제 유괴살인 사건과 관련된 경찰 내부의 조직적 은폐와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내가 이 오래된 소설을 아직 기억하는 이유는, 소설 속에 나오는 한 장면이 각별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미카미는 D현 경찰청 홍보담당관이다. 어느 날 이곳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난다. 경찰청은 사건 브리핑에서 “32살의 한 임산부 가정주부가 운전 부주의로 취한 채 무단횡단을 하던 노인을 치어 전신타박상을 입혔고, 현재 의식불명”이라고 발표한다. 하지만 기자들은 피해자 노인의 이름이 메이카와라는 것만 알려지고 가해자인 가정주부가 익명으로 발표되는 것에 의혹과 불만을 제기한다. 기자들은 가해자가 틀림없이 뒷배경이 든든해서 경찰청이 실명을 밝히기 꺼리거나 뭔가 은폐하고 싶은 ‘진실’이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가해자의 익명성과 관련된 뭔가 냄새나는 ‘음모’에 쏠렸을 뿐, 78살 노인 메이카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노인에 대해 알려진 거라곤 사인이 내장파열에 따른 과다출혈이고, 사고 당일 근처 선술집에서 소주를 두 잔 마시고 귀가 중이었다는 것이 전부다. 홍보담당관 미카미가 볼 때, 정작 익명과 실명 논쟁 사이에서 은폐된 진실은 가해자의 이름이 아니라 ‘메이카와 료지라는 한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는 증거’였다. 나중에 미카미는 가해자의 실명과 신원을 밝히는 자리에서, 이미 병원에서 숨진 피해자 ‘메이카와 료지’라는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도 짤막한 브리핑을 한다.
“메이카와는 홋카이도 도마코마이 출신으로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직장을 찾아 10대에 이쪽으로 건너왔고, 식품가공 공장에서 40년간 근무하다 정년퇴직했다. 그 뒤로는 연금으로 근근이 생활했다. 8년 전 아내와 사별했고 슬하에 자식은 없다. 이 지역이나 가까운 곳에 친척도 없다. 취미는 채소를 키우는 것이었고 도박 같은 건 일절 손대지 않았다. 술집 주인장의 말로는 한 달에 한 번 선술집 ‘무사시’에서 소주 두 잔을 마시는 게 유일한 사치이자 낙이었다. 어머니는 자상했지만 메이카와가 여덟 살 때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소식이 끓긴 누나가 하나 있다. 고향에는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다. (색약이라 붉은색 계통을 잘 구분 못하고 푸른색 계통은 남들보다 민감하게 구분했기 때문에) 원래는 하늘이나 바다를 찍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일은 아내와 만난 일이라고 했다. 평생 큰돈을 벌어다 주지도 못하고, 두 번이나 큰 병을 앓아서 고생만 시켰지만 불평 한마디 없이 잘 따라와줬다. 온천 여행은 가봤지만 끝내 해외여행은 한 번도 데려가지 못했다. 그래서 장례는 최고급으로 치러줬다. 집 다음으로 큰돈을 쓴 일이었다. 아내가 죽고 나서는 종일 텔레비전을 보는 게 일과였고, 주로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딱히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좋았다고 했다.”
그 짤막한 보고문 속에 드러난 ‘메이카와 료지’의 인생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했다. 그리고 한때 하늘과 바다를 찍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가해자의 익명과 실명 논쟁에 가려 언론에 단 한 줄도 보도되지 못한 채 애도할 기회마저 빼앗기며 쓸쓸하게 사라져갔다.
2022년도 사라져간다. 올해 난 중국살이 20여 년 만에 거의 처음으로, 중국인들의 집단 분노와 저항이 분출된 것을 목격했다. 평소 국가정책에 군말 없이 따르며 ‘대단하다, 나의 조국’(厉害了我的国)을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던 2030 애국주의 세대도 백지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나는 마침내 중국의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지난 3년간 봉쇄와 격리로 일관하던 ‘제로 코로나’ 방역 시대의 종말이자, 3연임을 밀어붙이며 ‘독재의 유혹’ 속으로 빠져든 시진핑 시대의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11월24일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우루무치의 한 봉쇄된 아파트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은 그 종말을 앞당긴 불쏘시개였다. 중국 정부는 그날 불행했던 참사로 사망자 10명을 포함해 총 19명의 사상자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마치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 <64>에서, 경찰이 78살 노인 메이카와의 사인을 단순한 교통사고로 발표한 것처럼 무정하고 비정하다. 그 발표에는 수많은 사상자가 ‘이 세상에 살아 있었다는 증거’가 삭제됐다. 죽은 이들은 이름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내가 그중 몇몇의 실명을 알게 된 것은 한국 언론사의 칼럼을 통해서였다.
“예를 들어 희생자 중 하예르니샤한 압두레헤만(48)씨는 네 자녀와 함께 불길 속에서 사망했다. 14살 딸부터 5살 난 막내까지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20대 후반의 굴바하르씨 역시 그의 두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생략) 그렇다면 압두레헤만씨 가족의 남편이자 아버지는 어디 있을까? 엘리 메트니야즈와 그의 장남은 2017년 11월 신장 남부 모위현에서 체포됐고, 현재 악명 높은 재교육 수용소에 갇혀 있다.”(<한겨레> 12월10일치 ‘홍명교의 이상동몽’ 칼럼 중)
당시 우루무치는 ‘제로 코로나’를 달성하겠다며 100일이 넘도록 주민을 집이나 강제격리 시설에 ‘짐승처럼’ 격리하고 있었다. 압두레헤만씨와 굴바하르씨와 함께 불길 속에서 사라져간 그들의 아이들 이름이 무엇이었을까. 언론에 단 한 줄도 실명이 실리지 못했던 그들은 애도할 기회마저 빼앗기며 ‘화재 사망 주민’이라는 익명으로 사라졌다. 이들 외에 신장 지역에서 장기 봉쇄로 수천 마리의 양떼가 돌봐줄 사람이 없어 집단 동사를 하고, 가축을 잃은 유목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들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3년 동안 중국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우루무치 화재 사건 이전에도 과도한 방역으로 비슷한 참사와 비극이 되풀이됐다.
2020년 3월7일에는 중국 푸젠성 취안저우의 한 호텔이 붕괴했다. 이 사건으로 29명이 숨지고 수십 명이 중상을 입었다. 지역정부가 지정해 운용한 격리 전용 호텔이었다. 당시 중국의 각 지역에선 코로나19 감염 상황이 심각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일정 기간 격리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아직 ‘팡창’이라는 대규모 격리시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전이라 주로 중소 호텔이 격리시설로 징발돼 운용됐다. 붕괴된 호텔은 무리한 불법 증축공사를 했고, 붕괴 당시 100명 넘는 사람이 격리돼 있었다. 매몰자 구출 과정에서 세 아이의 주검이 발견됐다. 7살과 5살, 겨우 갓 2살을 넘긴 아이였다. 취안저우로 일하러 온 부모를 따라왔고, 우한과 같은 후베이 지역 출신이라 오자마자 2주간 격리돼야 했다.
이 아이들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른 매몰 사망자도 김모씨, 양모씨 등으로 불렸고 이름은 발표되지 않았다. 세 아이의 사연은 아이들과 함께 현장에서 숨진 엄마가 생전에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동영상과 사진으로 알려졌다. 격리된 동안 세 아이는 올망졸망 모여 창밖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사고 당일 올라온 사진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찍은 다섯 가족의 모습이 있었다. 사진 밑에는 “멋진 우리 아빠, 예쁜 우리 엄마랍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귀여운 우리들이 생겼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동영상 속 아이들은 유채꽃밭에서 서로 손잡고 싱글벙글 해맑게 웃었다. 이 아이들의 이름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다.
2022년 9월18일 새벽 2시40분께, 구이저우성 구이양에서 47명이 탄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뒤집혀 고가도로 밑으로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탑승객 중 27명이 숨지고 나머지는 크게 다쳤다. 사고 버스 탑승객은 모두 한밤중에 강제로 격리시설에 ‘끌려가던’ 사람들이다. 사고가 날 무렵 중국 전역에서 오미크론이 확산했고 구이저우성뿐만 아니라 대부분 지역에서 장단기 봉쇄와 격리가 반복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때 사망자들 역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고 경위조차 제대로 발표되지 않았다. 이름이 사라진 그들은 ‘살아 있었다는 증거’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중국 언론과 정부는 그들을 ‘불행한 조난자’로 부르며, 기자회견 석상에서 짧은 묵념으로 모든 애도를 대신했다. 그로부터 약 두 달 뒤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참사가 일어났다.
우루무치 참사를 계기로 중국인들은 각성했다. 그리고 ‘백지를 들고’ 거리로 나와서 ‘밥과 자유’를 외쳤다. 놀란 중국 정부는 11월29일부터 모든 방역 관련 발표와 기자회견, 관방 언론에서 ‘제로 코로나’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12월 이후 방역을 완화해 사실상 ‘위드 코로나’를 선언했다. 지금 중국인들은 완화된 방역 정책으로 코로나19 급증과 의약품 대란 등 일시적 혼란을 겪고 있지만 봉쇄 이전의 일상적인 자유를 차츰 찾아가고 있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지난 3년 동안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사람에게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되돌려줘야 한다. 그들의 이름을 되찾아주고 애도할 기회를 얻게 해야 한다. 그리고 ‘백지시위’에 참가했다가 소리 소문 없는 검거 폭풍 속에 ‘이름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진 수많은 저항자도 찾아줘야 한다. 모두가 일상을 회복할 때 그들은 ‘외부세력’으로 개명돼 어디선가 또 봉쇄되고 격리된 삶을 살아갈 테니.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북경만보는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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