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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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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 묶인 ‘여덟 아이’ 엄마를 기억하라

베이징겨울올림픽 전후 중국을 떠들썩하게 한 인신매매 사건,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공범자들 사회
등록 2022-03-10 14:55 수정 2022-03-11 01:21
영화 <산골 마을로 시집간 여인> 포스터. 장춘 영화 제작소 제공

영화 <산골 마을로 시집간 여인> 포스터. 장춘 영화 제작소 제공

1994년 5월 초. 이제 막 18살이 된, 봄처녀 같았던 가오옌민은 중국 허베이성 스자좡 기차역에서 고향으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그는 1993년 고향인 허난성의 가난한 농촌마을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허베이성 공장에 취직해 일찌감치 돈벌이에 뛰어들었다. 고향 부모님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던 가오옌민의 인생은 그날 기차역에서 완전히 뒤집어졌다. 가오옌민은 기차역에서 ‘친절한’ 언니 두 명을 만났다. 그들은 멀지 않은 곳에 돈도 많이 주고 근무조건도 좋은 공장이 있다며 함께 보러 가자고 했다. 귀가 솔깃해진 가오옌민은 언니들을 따라 차를 타고 공장이 있다는 곳으로 갔다.

<맹산> 포스터. 아펙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맹산> 포스터. 아펙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사회 미담 기사가 된 ‘인신매매 여성’

도착한 곳에는 공장 대신 ‘나쁜 남자’ 3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신매매범이었다. 가오옌민은 허베이성의 시골 마을에 사는, 자신보다 6살 많은 남자에게 2700위안(당시 환율로 약 25만원)에 팔려갔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그 마을에서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는 절망해 서너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비극적인 운명에 체념한 가오옌민은 그 마을의 유일한 초등학교에서 임시교사가 됐다. 남편은 술을 마시고 오거나 기분이 내키지 않을 때 툭하면 그를 때렸다. 마을 남자들은 ‘돈을 주고 사온’ 아내는 자주 ‘패줘야만’ 정신을 차린다고 했다. ‘팔려온 뒤’ 약 10년 동안 그는 아이 둘을 낳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았다.

2005년 우연히 한 사진가가 마을에서 사진을 찍던 중 가오옌민을 발견해 그의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면서 가오옌민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언론은 그를 꽃다운 나이에 느닷없이 납치돼 팔려온 범죄 희생자가 아니라, 사회 미담 기사로 소개했다. 비록 ‘팔려왔지만’ 절망하지 않고 교사가 되어 산골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훌륭한’ 여성이라고. 2006년에는 허베이성 정부가 그를 ‘2006년 허베이성 10대 감동 인물’로 선정해 상을 줬다. 2009년에는 ‘감동적인’ 사연을 <산골 마을로 시집간 여인>(嫁给大山的女人)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영화는 인신매매라는 중국의 오래되고 고질적인 사회구조 문제를 은폐하고 ‘위대한 중국 여성’ 가오옌민을 만들어냈다.

22살 대학생 바이쉐메이도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준다는 ‘착해 보이는’ 부부를 따라 버스를 타고 갔다가 산골 오지마을에 사는 40살 먹은 남자에게 팔려가 강제로 결혼한다. 그 역시 처음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출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그때마다 ‘남편’에게 매 맞고 외딴 방에 감금된다. 그가 순순히 자신의 ‘팔자’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기 위해 ‘시어머니’는 마을의 또래 젊은 아낙들을 데리고 온다.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된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충고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소용없다. 여기서 나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우리처럼 너도 아이를 낳으면 좀더 쉽게 포기할 거다.”

여배우에게 “얼마 주면 당신을 살 수 있냐?”

아니나 다를까, 바이쉐메이가 탈출하려 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그를 잡아온다. 마을 촌민위원회 관리부터 우편배달부까지 마을 사람 모두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그는 부모님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인신매매 사실을 알리려 하지만 편지는 우편배달부에 의해 다시 남편 손에 들어가고, 빨래하는 척하다가 미리 알아둔 산길로 도망가지만 결국 다시 마을 사람들 손에 붙잡혀온다. 마을의 모든 조직과 주민이 다 인신매매 공범인 셈이다. 똘똘 뭉쳐서 상부상조하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경찰도 공권력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바이쉐메이는 어렵사리 도망가서 경찰을 향해 “나는 납치돼 팔려왔다. 제발 구해달라”고 소리치지만 곧바로 뒤쫓아온 남편이 “내 아내가 미쳤다”고 하자 경찰들은 ‘못 본 척’하고 만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맹산>(盲山)의 주요 줄거리다. 가오옌민을 다룬 영화가 개봉되기 2년 전인 2007년 상영된 영화로, 여러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상을 받았다. 중국 사회에 만연한 인신매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사회고발 영화다. 영화를 찍은 마을은 실제 여성을 돈을 주고 사오는 게 오래된 전통처럼 내려오는 마을이었고 영화 속 마을 주민들도 실제 마을 주민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리양 감독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한 마을 남자 중 한 명이 바이쉐메이 역을 맡은 여배우에게 “얼마 주면 당신을 살 수 있냐?”고 묻는 걸 보고는 등골이 서늘했다고 한다.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가 범죄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 장쑤성 쉬저우시 펑현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56살 남자 둥즈민 역시 꿈에도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는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왕훙’(인터넷 스타)이었다. 집 앞에는 중국판 ‘너튜버’들이 진을 치고 경쟁적으로 그와 아이들의 근황을 생중계했다. 둥즈민은 중국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여덟 아이 아버지’로 유명했다.

어느 날 근처에 살던 블로거가 우연히 둥즈민과 여덟 아이와 관련한 동영상을 올리면서 일약 왕훙이 된 둥즈민은 자신도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들어 직접 사진이나 동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구독자 수가 많아지면 바로 ‘돈’이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유명해진 둥즈민은 크고 작은 업체의 광고 모델이 됐고, 인터넷 구독자들로부터 ‘아이들에게 쓰라’며 적잖은 기부금도 받았다. 마을이 속한 현 정부는 둥즈민과 여덟 아이의 동영상을 마을 선전에 이용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연말과 설에는 온갖 기관과 단체가 찾아와 아이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나눠주고 금일봉을 전달하는 등 농촌 마을의 전형적인 빈곤가정을 구제하는 선전 자료로 활용했다.

중국 장쑤성 쉬저우시 펑현의 한 헛간에 쇠사슬로 묶여 갇힌 한 여성의 모습. 이 일은 ‘쉬저우 여덟 아이 엄마 사건’으로 불렸다. 펑황망 갈무리

중국 장쑤성 쉬저우시 펑현의 한 헛간에 쇠사슬로 묶여 갇힌 한 여성의 모습. 이 일은 ‘쉬저우 여덟 아이 엄마 사건’으로 불렸다. 펑황망 갈무리

‘여덟 아이의 어머니’는 어디에

2022년 1월27일, 한 블로거가 둥즈민의 집을 찾아와 동영상을 찍던 중 “아이들 엄마는 대체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동안 한 번도 아이들 엄마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올라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아이들 엄마가 있는 곳을 마지못해 보여준 둥즈민은 “아내가 미쳤다”고 했다. 아이들 엄마가 있는 곳은 가축이 산다고 해도 믿기지 않을 만큼 더럽고 누추했고, 엄마는 목과 발이 쇠사슬로 묶인 채 ‘인간짐승’의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날 소셜미디어 등에 아이들 엄마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오자 여론이 폭발했다.

베이징겨울올림픽을 전후해 중국에서 가장 큰 사회문제가 된 ‘쉬저우 여덟 아이 엄마’ 사건의 시작이었다. 둥즈민은 아내가 미쳐서 사람들을 공격하고 물건을 부수기 때문에 아내를 헛간에 쇠사슬로 묶어서 가두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는 곧바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아이들 엄마는 가오옌민과 바이쉐메이처럼 인신매매된 여성이었다. 더군다나 둥즈민이 사는 마을은 중국에서 인민매매촌으로 가장 유명한 마을이었다. 마을에 사는 절반 이상의 부녀자가 인신매매됐다.

이 사건이 공론화하자 쉬저우시 펑현에선 처음에 ‘인신매매가 아니라 합법적인 부부’라고 발표했다. 둥즈민의 아버지가 길거리에 떠도는 제정신이 아닌 여자를 ‘주워 와서’ 자기 아들과 결혼시켰고, 행정 문제는 있었지만 인신매매는 아니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발표 뒤 여론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으로 더 나빠졌고, 결국 장쑤성 정부 차원의 조사반이 꾸려져 최종적으로 ‘권위 있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2월23일 최종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여덟 아이의 엄마는 윈난성에서 인신매매된 ‘샤오화메이’라는 여성이고 이미 유전자감식으로 확인을 마쳤다고 했다. 둥즈민을 비롯해 인신매매에 관련된 당사자들이 다 구속되고, 조사와 감시 등을 제대로 하지 않은 관료들도 대거 처벌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지켜본 중국인들은 장쑤성 정부의 최종 조사 결과도 ‘대체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거짓말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처럼, 네 차례 번복된 조사 결과에서 쇠사슬에 묶인 그 여인이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의혹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았다. 가오옌민처럼 하마터면 ‘쉬저우시를 감동시킨 올해의 인물’이 될 뻔한 여덟 아이의 아버지 둥즈민은 사실 인신매매 범죄자였다. 만일 둥즈민과 여덟 아이가 왕훙이 되지 않았다면 가축우리 같은 헛간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던 그 여인은 어떻게 됐을까.

그 쇠사슬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2022년 2월6일 밤, 여자축구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중국 여자축구팀이 한국을 상대로 3 대 2의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자, 중국인들은 밤잠을 잊은 채 ‘위대한 중국 여성 만세’를 외쳤다. 2월8일, 중국으로 귀화한 미·중 혼혈인 구아이링이 베이징겨울올림픽 스키 프리스타일 여자 결승전에서 환상적인 동작으로 최고점을 받으며 금메달을 따자 중국 전역의 광고판과 버스 등에는 온통 ‘위대한 중국 여성 구아이링’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중국 여성들의 새로운 우상이 탄생했다고 열광했다.

그러나 수많은 예술가와 블로거, 1인 매체 언론인 등 ‘깨어 있는’ 중국 사람들은 쇠사슬에 묶인 쉬저우의 여덟 아이 엄마 모습을 두고두고 기억하라고 말한다. 아직도 수많은 ‘그들’이 어딘가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고, 그들의 목과 발에 걸린 쇠사슬을 끊지 못하면 결국 그 사슬은 모든 중국인의 목에 매이고,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맹산> 속 공범자들의 사회에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말이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박현숙의 북경만보: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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