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 중)
해마다 한 번씩 조세희가 쓴 <난쏘공>을 읽는다. 1978년에 출판된 이 소설은 팬데믹 세상이 된 2021년에 읽어도 전혀 구닥다리 같은 느낌이 안 든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난하고 억울하고 비통한 사람들의 ‘눈물냄새’는 여전히 세상 곳곳에 스며 있고 그들의 생활도 여전히 ‘날마다 지기만 하는’ 전쟁 같기 때문이다.
‘신장은 백십칠 센티미터, 체중은 삼십이 킬로그램’인 난장이네 가족이 살았던 동네는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46번지’다. 그들은 ‘낙원구 행복동’에 살지만 그곳은 ‘서울특별시’ 최고의 지옥 동네다. 어느 날 그 동네 주민들에게 구청의 ‘철거계고장’이 날아든다. 도시재개발 사업 결정으로 행복동 일대 거주민들은 자진 철거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난장이네 가족은 그 가난한 지옥 동네 ‘행복동’을 떠나면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새로 개발되는 아파트 입주권을 사려면 130만원은 있어야 하는데 당장 그 많은 돈이 없어 거간꾼에게 헐값 22만원에 팔아야 할 처지고 거기서 전세 줬던 돈 15만원을 빼고 나면 7만원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동사무소 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승용차도 몇 대 서 있었다. 그곳에는 두 부류의 사람밖에 없었다. 입주권을 팔려는 사람과 사려는 사람이었다. 팔려는 사람들은 초조한 얼굴로 거간꾼들의 눈치만 보았다. 한결같이 영양이 나쁜 얼굴들이었다. 거기서는 눈물냄새가 났다.”
중국 베이징에도 ‘눈물냄새’ 나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 이름은 ‘행복로’다. 난장이네가 1970년대에 살았던 ‘낙원구 행복동’을 닮은 이름이지만, 그곳은 소설 속 무대가 아니라 베이징에 실재하는 거리다. 2002년 무렵 소문으로만 듣던 그곳을 처음 찾아갔을 때, 나는 그곳에서 평생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불행한 사람들을 한나절 동안 다 만날 수 있었다. 그곳 사람들도 한결같이 영양이 나쁜 얼굴이었고 누구 하나 웃는 얼굴이 없었다. 마치 한 편의 블랙코미디 영화처럼, 행복로는 이름과는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비통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거리였다. 2014년 <베이징 청년보> 등을 비롯해 각종 언론매체에 이들의 온갖 불행한 사연들이 소개됐다.
란충비-광둥성 둥관 사람. 2008년 5살짜리 딸이 동네 50대 남자에게 성폭행당함. 남자는 7년형을 받고 감옥에 갔지만, 란충비는 죄질에 비해 형량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해 어린 딸을 데리고 베이징에 와서 상팡(上訪·각종 억울한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 상급 기관에 가서 진정서를 내거나 항의함)을 시작함.
황위샹-허난성 상차이현 사람. 2008년 동생이 억울하게 맞아 죽었지만 살인자는 법망을 피해나가 처벌받지 않음. 동생의 주검은 경찰이 강제로 뺏어간 뒤 지금까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음. 이후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베이징에 와서 상팡 인생을 시작함.
린진쥐-장시성 광펑현 사람. 71살. 현지 정부가 재개발을 이유로 철거를 통고하며 린진쥐 부부에게 강제 이주를 명령했지만 합리적인 보상이나 새로운 정착지를 마련해주지 않음. 살던 집은 강제 철거당하고 그사이 남편이 죽자, 베이징에 와서 상팡을 시작함.
행복로에 있는 몇 개 안 되는 식당들은 전쟁통 피란민들의 임시 막사처럼 비닐로 대충 지어졌고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낡은 의자와 식탁 몇 개가 놓인 천막 식당에선 고깃국물로 만든 국수와 그냥 수돗물로 끓여낸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멀건 국수 두 종류를 팔았다. 그나마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은 채소가 조금 들어간 고깃국물 국수를 먹었지만, 대부분은 밍밍한 국수를 짠지와 함께 먹었다. 아직도 나는 바람 쌩쌩 부는 추운 겨울날, 비닐천막 식당의 희뿌연 알전구 아래에서 후루룩후루룩 멀건 국수를 먹던 행복로 난장이들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추워서 오들거리며 국수를 먹는 사람들의 입김과 국수에서 나오는 뜨거운 김이 한데 섞여서 찬 바람 부는 행복로의 겨울 하늘에 뿌연 성에처럼 차오르고 있었다.
행복로는 베이징시 남역(기차역) 부근에 있다. 중국 전역에서 온갖 억울한 사연을 갖고 몰려온 사람들이 장단기 거주하는 거리인데,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열악한 주거환경의 쪽방이 골목 가득 즐비했다. 그 거리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살았다. 분통 터지는 사연을 들고 베이징의 ‘상급 기관’에 호소하러 온 사람과, 그런 이들에게 쪽방 대여 알선이나 서류 작성 대행 등 각종 ‘서비스’를 제공해 돈을 버는 사람이다.
행복로는 고향 마을에서 제대로 처리해주지 못하는 각종 억울하고 불공정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베이징에 있는 국가신방국(國家信訪局·국무원 산하 민원담당 중앙부서)과 최고인민법원 등에 진정서를 내거나 면담을 신청하기 위해 오는 사람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행복로에서 약 1.5㎞ 떨어진 곳에 이들이 주로 찾아가는 국가신방국이 있기에, 각지에서 온 사람들은 가장 먼저 행복로에 있는 ‘상팡촌’에 짐을 풀고 먼저 온 ‘상팡 선배’들로부터 여러 정보를 얻거나 경험담을 들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상팡자’들의 집단 거주촌이 생겨났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여러 증언을 종합해보면 대략 개혁·개방 뒤인 1980년대부터 형성돼 2000년 초반 상주 세입 인구만 3천여 명이었을 정도로 상팡촌의 전성시대를 맞았다. 1980년대 이후 중국 사회는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되고 도시 개발 붐이 일면서 사회경제적 갈등과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당시 중국에는 그런 갈등과 분쟁을 공정하게 해결할 법과 제도가 미비했고, 특히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법은 인민에게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난쏘공>에 나오는 난장이 가족이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처럼, ‘인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곳’이라 믿는 국가신방국이 있는 베이징으로 갔다.
국가신방국은 우리나라 청와대 국민청원처럼, 법으로 해결할 수 없거나 공정한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찾아가는 마지막 호소처다. 1951년 중국 정부는 ‘신방제도’를 만들고 1986년 사전에 ‘신방’이라는 단어가 공식적으로 담겼다. 사전에 따르면 ‘신방이란 인민군중이 관련 부서에 서한이나 방문 형식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반영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이다. 1995년 제정되고 2005년 수정된 ‘신방조례’에선 ‘신방은 공민과 법인 혹은 기타 조직이 서한이나 전자우편, 팩스, 전화, 방문 등 형식을 통해 각급 인민정부와 현급 이상 인민정부 부문에 (문제를) 반영하고 의견을 제안하거나 혹은 해결을 구하는 투서를 통해 관련 행정기관이 법에 따라 처리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전국 모든 지방정부 산하에 별도의 신방국이 있고 인민은 언제든 자신이 사는 지역의 신방국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중앙 지도자와 기관들이 있는 베이징의 국가신방국만이 가장 공정하게 처리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영화 <나는 판진롄이 아니다>(我不是潘金蓮, 2016년)에 나오는 주인공 리쉐롄도 베이징으로 멀고도 험난한 상팡의 길을 떠났다. 판빙빙이 연기한 리쉐롄은 가족계획 정책상 허용되지 않는 둘째를 임신하자 남편과 상의해서 가짜 이혼을 하게 된다. 가짜로 이혼하면 남편 직장에서 분배해주는 아파트도 얻고 아이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분배받은 아파트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리쉐롄은 고향 마을 법원판사와 법원장을 찾아가고 현장과 시장을 찾아가서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지만 누구도 그의 고통을 알아주고 해결해주지 않는다.
이에 절망한 리쉐롄은 최후의 방법으로 베이징으로 상팡의 길을 떠나지만, 오히려 거기에서 구금되는 등 더 깊은 좌절만을 겪을 뿐이다. 높은 관료들은 고향 마을의 ‘멍청하고 덜떨어진 관료들’보다 더 교묘하고 세련되게 악랄할 뿐이다. 매년 3월에 열리는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가까워 오면 고향 마을 정부는 리쉐롄이 베이징에 가지 못하도록 감시 인력을 배치하고 현장과 법원장, 공안국장 등이 총동원돼 그의 상팡을 저지한다. 리쉐롄은 1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베이징으로 상팡을 떠나지만 결국 깨닫는 것은 법과 상팡 제도의 공정성이 아니라 ‘관모를 잃을까 두려워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의 상팡을 가로막는 관료들의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태도다. 리쉐롄은 결국 모든 것에 철저하게 절망해서 길거리에 주저앉아 통곡한다.
2014년, 지방정부에서 상팡을 해결하시오투기꾼들에게 헐값에 팔린 집문서를 어렵사리 되찾아와서 아파트 입주권을 손에 넣지만, 난장이 아버지는 굴뚝에서 떨어져 죽고 가족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난쏘공>의 난장이 딸 영희도 결국엔 주저앉아 통곡한다. 그리고 ‘꿈속에서 만난’ 큰오빠에게 이렇게 외친다.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버려.”
2014년 5월1일 이후 중국 정부는 새로운 신방 정책을 발표했다. 상팡자는 원칙적으로 모든 문제를 자기가 속한 지방정부의 관련 부서에 상팡을 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로 앞으로는 지방에서 올라와 베이징에 상소문을 내봐야 소용없고 받아주지도 않는다고 발표했다. 베이징 행복로에 살던 수많은 난장이는 지금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들은 아직도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하고 있을까.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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