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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틀렸다

아들 살해당한 뒤 10여 년간 미군 내 성소수자 인권운동 벌인 퍼트리샤 쿠틀레스
등록 2016-12-02 17:05 수정 2020-05-03 04:28
OutServe-SLDN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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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인 생도와 군인들이 그들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감출 것 없이, 그들이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봉사할 때,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지난 6월4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군 총사령관으로서 마지막 연설에서 이처럼 말했다. 미군 내 커밍아웃 금지 정책, 군인들의 성소수자성에 대해 ‘묻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이하 DADT)는 정책이 2011년 폐기된 지 5년이 흘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1994년 DADT 시행 뒤 1만3천여 명 강제 전역 </font></font>

DADT는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지만 않으면 군복무를 허가하고 군에서도 병사들의 성 정체성에 대해 묻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으로, 1994년 빌 클린턴 정부에서 처음 시행했다. 중국, 예멘 등 50여 개국이 현재 동성애자의 군복무를 금지하고 있다. DADT 시행 이후 미군 장병 1만3천여 명이 동성애자로 드러나 강제 전역당했다.

이에 반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누구나 자신의 성정체성을 자유롭게 밝히고 군복무할 수 있게 DADT 폐기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세상을 바꾼 이 약속이 순조롭게 이행되기까지, 아들의 죽음 이후 10년 넘게 싸워온 어머니의 노력이 있었다.

1999년 7월 어느 날 아침, 퍼트리샤 쿠틀레스(Patricia Kutteles)와 남편 월리 쿠틀레스는 평소처럼 커피를 끓이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육군 복무 중인 아들 배리 윈첼이 동료 병사에게 공격당해 민간병원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병원에 도착해서 본 윈첼의 얼굴은 “달걀 껍데기처럼” 부서져 알아볼 수 없었다. 회복 불가능한 뇌손상을 입었다. 다음날 부모는 아들의 숨을 연장시키던 기계를 껐다. 윈첼은 21살로 군복무 중에 표창 두 번, 공로 훈장 한 번을 받았다. 헬리콥터 조종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아들이 죽은 뒤에야 쿠틀레스는 윈첼이 몇 달 동안 ‘게이일지 모른다는 이유로’ 괴롭힘의 대상이 돼왔다는 걸 알았다. 윈첼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여성과 데이트한 뒤부터 소문이 퍼졌고 “모두가 (윈첼을 괴롭히며) 즐거워했다”. 만약 윈첼이 이에 대해 군 당국에 공식적으로 항의했다면 DADT 원칙 때문에 성정체성을 의심받아 강제 전역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윈첼은 홀로 고군분투했다. 그 와중에 윈첼과 주먹 다툼에서 진 룸메이트 캘빈 글로버가 술에 취해서, 자고 있던 윈첼을 때려 죽였다. 글로버는 종신형을, 그를 부추긴 다른 병사는 12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가해자에게 유죄 선고가 난 직후, 쿠틀레스 부부는 말했다. “DADT는 우리 아들을 보호하지 못했어요. 그건 누구의 아이도 보호하지 못할 겁니다. 그 정책은 사라져야 합니다.”

2010년 8월 쿠틀레스 부부는 미국 뉴스 채널 <cnn>에 보낸 기고에서 이같이 밝혔다. “DADT는 다른 군대 내 동성애자들이 2등 시민이라고, 동성애자는 군대에 복무함으로써 얻는 존경을 받을 가치도 없다고 말하는 정책입니다. (…) 그 법이 군대 내 동성애자를 보호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틀렸어요. 동성애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공포와 편견을 강화할 뿐입니다. 더 나쁜 건, 그 법이 자신의 분노에 따라 폭력적 행동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부추긴다는 겁니다.”
쿠틀레스는 미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기각됐지만 단념하지 않았다. 그는 왜 미군이 병사들 사이에 괴롭힘을 방치했는지, 왜 병사들이 과한 음주를 하도록 내버려두었는지 구조적 병폐를 지적하길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DADT의 폐기를 역설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미군이 돌봤어야 하는 모든 젊은이의 안전을 위해”</font></font>
쿠틀레스의 노력 끝에 2000년 미 국방부는 군대 내에 동성애자나 동성애자라고 여겨지는 병사, 여성, 그 외 소수자에 대한 괴롭힘이 얼마나 퍼져 있는지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윈첼이 속한 부대에 대해서는 동성애 혐오 분위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어떤 장교도 그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아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어머니는 지칠 수 없었다. 아들이 죽고 쿠틀레스는 많은 동성애자 병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우리 아들만이 그 고통을 견뎌야 했던 게 아니었”음을 깨달은 쿠틀레스는 매년 캔자스에서 워싱턴까지 긴 여행을 했다. 왜 DADT 정책이 사라져야 하는지, 윈첼의 죽음을 통해 미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쿠틀레스는 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윈첼이 정말 게이인지 아닌지는 상관없어요. 나는 아들의 죽음을 제대로 알기 위해 싸워 왔지만, 이제 내가 알게 된 모든 것들 때문에 미군이 돌봤어야 하는 모든 젊은이들의 안전을 걱정하게 됐습니다.”
그는 11년 동안 의회만이 아니라 미국 전역을 다니면서 DADT가 어떻게 동성애자의 인권을 좀먹는지 알리기 위해 살해당한 아들 이야기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2003년에는 죽은 윈첼의 이야기가 텔레비전 영화 (Soldier’s Girl)로 만들어졌다. 윈첼 역할을 맡은 배우 트로이 개리티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DADT가 폐기된 지 5년, 지난 6월 미 국방부는 성전환자의 군복무를 1년 뒤부터 공식 허용한다고 밝혔다. 현재 영국과 이스라엘, 카타르 등 18개국은 성전환자의 군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미군은 필요한 경우 성전환 수술과 호르몬 요법에 드는 의료비도 지원할 계획이다. DADT가 무효화됐을 때 동성애자 외에 성전환자의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고 성전환자 복무는 여태 금지돼 있다. 캘리포니아대학 LA캠퍼스 법대의 한 보고서는 1만5500여 명이 성전환 사실을 숨긴 채 미군에 복무 중인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차근차근 이뤄진 “미군 내 역사적인 성 정책의 전환”(<nbc>)의 단초였던 쿠틀레스가 지난 11월14일 67살로 사망했다. 사인은 암 이후 발생한 신장 부전과 간 부전.
<font size="4"><font color="#008ABD">“역사적인 성 정책 전환” 이끌고서</font></font>
쿠틀레스는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자라 정신과 간호사가 됐다. 군대에서 죽은 윈첼은 이혼으로 끝난 첫 번째 결혼에서 얻었고, 두 번째 남편 쿠틀레스가 34년간 함께하며 그를 지지해주었다.
자식의 죽음과 함께 살면서 오랜 싸움 중인 부모는 한국에도 많다. 다만 다른 점은 이들은 여전히 그 죽음의 진실에조차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이리라. 2013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1998~2012년 15년 동안 한국에서 죽은 군인은 총 2270명이다. 유족이 군 헌병대의 수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175건이지만 1차 수사 결과가 달라진 사례는 없다.
김여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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