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대국 일본에서는 교육 당국이 나서서 학생들에게 만화를 추천한다. 그중 자주 목록에 포함되는 만화가 이다. 이 작품이 최근 일본에서 큰 화젯거리가 됐다.
나카자와 게이지의 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겪은 전시·전후 격동의 시대가 배경이다.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전쟁의 비참함을 호소하는 만화다. 이 만화는 일본의 도서관이나 공립학교라면 거의 다 갖추고 있다.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애니메이션·드라마·뮤지컬이 제작됐고, 영어·프랑스어 등 20개국 언어로 세계 각국에서 출판됐다.
그런데 시마네현 마쓰에시 교육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시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열람을 규제하도록 요청했고, 시내 39개 학교가 이에 응했다는 사실이 지난 8월 뒤늦게 알려졌다. 이유는 “잔인한 묘사가 많아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책은 비공개 장소에 보관해 열람 혹은 대출을 희망할 경우 교장의 허락이 필요(폐가조치·閉架措置)하도록 했다.
열람이 제한된 계기는 지난해 8월 고지현에 사는 우익 단체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 회원이 여러 차례 항의한 일이었다. 그는 “‘일본군이 중국인의 목을 재미로 잘랐다’ ‘임산부의 배를 갈라 아기를 꺼냈다’ 등의 기술에는 증거가 없어 아이들이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의회에서는 진정을 기각했는데 교육위원회가 독자적으로 조치를 취했다. 최근 우파에 쏠리는 일본 여론의 분위기를 볼 때, 이를 계기로 전국의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조치를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많은 언론이 마쓰에시 교육위원회의 결정에 의문을 표했다. 여론도 ‘풍화돼가는 전쟁 경험’을 들며 반발했다. 지난 8월26일 마쓰에시 교육위원회는 임시회의를 열어 열람 제한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은 매년 2천 부씩 증쇄를 거듭해온 희귀한 작품이다. 올해는 마쓰에시의 결정 때문에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1만 부 더 증쇄했다고 한다. 특별판매 코너를 만든 서점도 있고, 제때 책을 공급하지 못해 ‘품절’을 내건 서점도 있다.
1973년에 발표돼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 국민에게 사랑받아온 은 지난해 12월 사망한 작가 나카자와 게이시의 자전적 작품이다. 나카자와는 6살 때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해 아버지와 동생을 잃었다. 히로시마 주민들이 원폭 투하로 인해 겪은 지옥 같은 고통을 그리며 일본 침략전쟁의 어리석음을 고발해 매년 8월이면 적잖은 일본 국민이 이 만화를 상기한다.
일본의 현 집권당인 자민당의 중심인물들은 현재 헌법 개정을 위해 분주하다. 그 목적은 알다시피 ‘군비를 갖춘 보통 나라’가 되기 위해서다. 강경 우파로 알려진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은 지난 7월 공개 석상에서 대놓고 “병역을 거부하면 사형도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내용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에 대한 비판이 많았지만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게 현재 상황이다. 전쟁은 가해국 국민도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는 일이다. 그것을 불과 60년 전 일본은 생생하게 경험했다. 히로시마 원폭으로 인해 일본 국민 9만∼16만 명이 폭격 뒤 4개월 이내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1945년 3월10일 도쿄의 미군기 대규모 공습으로 1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사망한 사실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나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일본 국민의 희생과 고통마저도 잊어버렸다. 그것이 일본이 잘못된 길을 가는 이유는 아닐까. 히로시마 시민들의 희생을 그렸다고 만화를 보지 말라는, 일본의 ‘애국자’를 참칭하는 보수 세력들의 언행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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