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은 치르되 혼인신고를 거부하고 사는 커플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반항심과 자부심의 상호 침투 때문이다. “서류 한 장이 뭐가 중요해. 서류에 얽매이지 않고 정말로 너와 살고 싶어 산다는 확신”이거나 “왜 우리 사랑을 국가에 증명해야 하나”라는 취지다. 3년째 동거하다 부모가 이를 눈치채 부득이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13년째 미신고로 사는 신랑은 “다른 방식의 결혼이 가능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한다.
결혼 4년차인 신부는 미신고가 주는 효과 중에 “우리는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은 진행형 연애”라는 점을 들었다. 결혼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으니 동거가 불편하지 않으면서 둘 사이에 미지의 영역이 남은 듯 뿌듯함이 있다는 것이다. “결혼식 10주년 때 아직 헤어지지 않았다는 자축의 의미로 혼인신고를 해볼까, 또는 계획에 없지만 혹시나 아기를 낳게 되면 그 축하의 이벤트로 해볼까” 생각 중이다.
애정의 지속성을 과연 법으로 보장받을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이들에게 자리잡고 있는데, 그렇다고 위기가 없을까? 4년차 신부는 그사이 연하의 젊은이와 중년의 남자에게 맘이 흔들린 적이 있다. 스킨십 단계에서 결혼을 깨고 싶지 않아 스스로 중단하고 남편 몰래 가슴앓이를 했다. 13년차 신랑은 2년 전쯤 꽤 나이차가 나는 젊은 여성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호감을 느끼는 상대가 자신에게 감정이 있다는 걸 눈치채기란 아주 쉽다. 그 상태로 수개월을 그냥 보내자 그녀가 먼저 액션을 취하기 시작했다. 신랑은 타인에게 놀라울 정도로 친절하고 자애스러우나 자신에게는 무섭게 엄격한 스타일이다. 그는 젊은 여성과의 속앓이를 잘라냈다. 새 사랑보다 오래된 미래의 사랑을 선택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이들은 ‘현명하게’ 구 사랑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우니 현명한 셈인데 치명적인 파도를 내친 비결은 알 수 없으나 두 커플의 공통점은 대화를 많이 한다는 거다. 4년차는 둘 모두 수다 내공이 높다. 13년차는 매일 저녁 그날의 뉴스를 화제로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는 버릇을 지켜오고 있다. 대화는 비결이랄 게 없는 신공이지만 무섭긴 하다. 13년차는 어마어마한 쓰나미를 대화로 풀고 있는 중이다. 신랑이 안정된 직장을 접고 내년에 남미나 아프리카로 가서 지역봉사자로 여생을 보낼 결심을 했다. 돌아올 기약은커녕 현지에 눌러앉겠다는 뜻이다. 신부가 뒤따라가지 않는다면 기러기도 이런 기러기가 없다. 그런데도 애정에는 이상이 없단다. 혼인미신고 13년차 지속의 내공이란 이런 것인가보다.
이성욱 씨네21북스 기획위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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