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강재훈기자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는 아쉬웠다. 2-2 무승부로 조 1위는 고수했지만 매끄럽지 못했다. 그 바람에 최강희 감독의 선수 기용과 관련해 숱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동국 중심으로 진용을 짜다 보니 공격 루트가 단조롭다는 의견, 박주영과 다른 선수들이 잘 섞이지 않는다는 의견, 이근호가 열심히 뛰었지만 열심히 뛰었을 뿐이라는 의견 등 분분하다. 모두가 정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답도 아니다.
물론 승점이 여유가 있고 남은 경기 일정도 순조로우니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스페인도 조지아에 후달렸으니 원정 무승부라면 괜찮은 편이라고 위로하기에도 석연치 않다. 상황이 이러할 때, 조금은 우회해 사태를 지켜보면 의외로 답을 찾을 수도 있다. 그 방법을 써보자.
중앙에서 ‘밀당’하는 능력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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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만약 당신이 대표팀 감독이라고 하자. 그리고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 다른 나라 선수 한 명을 자유롭게 기용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를 데려오고 싶은가. 메시? 그럴 줄 알았다. 나머지 10명의 선수가 무조건 메시에게 패스하면 그가 적어도 2골 이상은 터트릴 것이니 좋은 카드이긴 한데, 그가 떠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카시야스나 노이어 골키퍼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러나 정성룡이 자기 실책으로 점수를 내준 경우가 드물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 한 장의 카드로 골키퍼를 교체하기에는 아깝다. 정성룡은, 김병지나 이운재 같은 스타성은 부족하지만, 골키퍼가 해야 할 역할을 좀처럼 망각해본 일이 없다.
급한 곳은 수비라인이다. 맨시티로 이적한 마이콘이나 첼시의 애슐리 콜 중 한 명을 데려온다면 수비라인의 어수선함을 단단하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의 이정수와 곽태희가 여전히 건재하고 좌우에도 가용 자원이 부족한 게 아니다. 고요한이 불안하게 스타트를 끊기는 했지만 발전 가능성이 풍부하고, 오범석·박종우·윤석영·박주호·김영권 등의 마크 실력은 출중하다. 중요한 것은 공간에 대한 파악 능력. 우즈베크와의 경기에서 실점한 것은 공간의 함수관계를 놓치는 경우에서 발생했다. 곽태휘의 전체적인 체킹 능력을 극대화해 밸런스를 상향 조절해가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
꿩 잡는 게 매라는 말도 있으니, 특급 공격수 한 명을 데려온다면 스페인으로 직행할 수도 있겠다. 이를테면 토레스 같은 선수 말이다. 후반 30분까지 푹 쉬게 해뒀다가 막판 15분에 투입해 한두 점 얻어내는 것은 토레스급 선수에게는 바지를 입은 다음에 신발을 신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 그런 선수로 이브라히모비치, 호날두, 루니 등 즐비하다. 그러나 한국 축구의 집합적인 발전을 위해, 나는 일주일에 평균 3억원 이상을 버는 이들을 선택하지는 않겠다. 이동국이나 박주영으로 골을 얻을 수 있다.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들과 흡사한 선수도 있다. 지동원도 있고 김신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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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표팀에서 공백이 된 부분을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누구? 나라면 당장 맨체스터로 가서 폴 스콜스를 데려오고 싶다. “불필요하게 A매치 출장 기록을 늘리고 싶지 않다”는 한마디로 대표팀 은퇴 의사를 밝힌, 눈물과 회한이 어린 기자회견 따위로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 스콜스를 데려오고 싶다.
왜 그런가. 퍼거슨 감독은 말한다. “경기 템포를 조절하는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은 세계 최고다.” 지금 우리 대표팀에는 바로 이런 능력을 가진 선수가 부재 중이다. 이청용이 있지만, 그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한다면 틀림없이 놀라운 경기를 보여주겠지만, 그는 스콜스와 달리 우측면 담당이다.
증언을 더 들어보자. 파브레가스는 말한다. “맡은 선수를 끈질기게 괴롭혀 팀 동료들의 수비 부담을 덜어준다.” 어떤가. 지금 우리 대표팀은 이동국이냐 박주영이냐 하는 꼭짓점이나 좌우 측면의 수비라인보다 더 다급한 것이 중앙에서 경기 전체를 풀어가는 선수가 없다는 것이다. 김보경은 좌측으로 돌고 이청용은 우측으로 돈다. 기성용은 포백라인 바로 위를 맡고 있다. 중앙에서 경기 전체를 ‘밀당’하는 능력자가 없다. 앙리는 말한다. “언제나 원터치나 투터치로 공을 처리하고 판단력도 뛰어나다. 결국 팀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건 스콜스다.” 그러니 나는 스콜스를 데려오고 싶다.
이동국이냐 박주영이냐 무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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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젠 정색을 하고 말해야겠다. FIFA가 그런 결정을 할 리도 없고, 설령 그렇다 해도 스콜스는, 퍼거슨에 따르면 “조용히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선수다. 그는 실제로 A매치가 열릴 때면 ‘잉글랜드 파이팅’ 같은 거 안 하고 아들과 함께 맨체스터에서 북동쪽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올덤으로 가서 그 지역의 3부 리그 팀 올덤 애슬레틱을 응원한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 우리 선수들 중에서 찾아내고 연마해야만 한다. 각 자리마다, 세계 톱클래스는 아닐지라도, 국내 최고의 선수들이 위치해 있다. 중요한 것은 공격의 중점을 장악할 자리가 부재하다는 것. 이 자리를 제대로 채우지 않고서는 이동국이냐 박주영이냐 하는 논란은 무의미하다. 이 공격형 미드필더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가 지금 우리 대표팀의 절대적인 과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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