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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어떻게 야구 성적을 끌어올리나

어느 성공한 야구단장의 구단 운영 공식…영화 <머니볼>을 통해 본 미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꼴찌 탈출기
등록 2011-12-23 11:13 수정 2020-05-03 04:26

지난 11월 개봉된 영화 은 메이저리그의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의 성공담을 다루고 있다.
빈은 컴퓨터에 미친 괴짜들의 소일거리쯤으로 여겨지던 ‘세이버매트릭스’를 본격적으로 야구단 운영에 도입한 인물이다. 지금은 다소 빛이 바랬지만 빌리 빈 식 야구단 운영, 즉 ‘머니볼’은 만년 하위의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를 2000~2003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원동력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머니볼>. 야구에 수학을 도입한 빌리 빈(가운데)식 구단 운영은 만년 하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2000~2003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원동력이었다.

영화 <머니볼>. 야구에 수학을 도입한 빌리 빈(가운데)식 구단 운영은 만년 하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2000~2003년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원동력이었다.

경험보다도 출루율과 장타율

이 영화에는 빌 제임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빈의 반대파 역을 맡은 배우가 내뱉은 “제임스는 야구를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라는 대사와 사진 한 컷과 함께. 오클랜드의 성공에서 빈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 바로 제임스다. 그는 야구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수학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믿음을 전파한 인물이다. 그의 영향을 받은 이는 메이저리그 구단의 단장부터 지금은 수십억달러짜리 사업이 된 판타지베이스볼(가상 야구단 운영 게임)의 이용자까지 다양하다.

제임스가 야구와 숫자를 연결하려는 시도를 한 최초의 인물은 아니다. 야구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기록의 스포츠’다. 스포츠 기자 헨리 채드윅이 박스스코어를 만든 해가 1858년. 그 뒤로 많은 야구팬들은 ‘타율 0.350’ ‘30홈런’ ‘20승’ 따위 수치를 ‘위대함’ ‘스타’ ‘존경’ 등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제임스의 역할은 이 숫자를 야구의 본질까지 끌고 갔다는 데 있다.

제임스는 1949년 미국 캔자스주 홀턴에서 태어났다. 캔자스대학 시절엔 경제학과 문학을 전공했고, 1971년 미군에 입대해 베트남과 한국에서 복무를 했다. 군 복무와 학업을 마치고 통조림회사 경비원으로 일하던 1977년, 제임스는 68쪽짜리 소책자를 자비로 출판했다. 제목은 (Baseball ABstract)였다. 그는 신문에 나온 박스스코어를 모아 정리한 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월별 기록, 투수와 포수의 도루 허용 기록 등을 나열했다. 단순한 기록의 나열 이상은 아니었다. 판매량도 70여 부에 그쳤다.

제임스는 실망하지 않고 이 책을 매년 내기로 결심했다. 2년 뒤인 1979년 판에서 제임스는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을 했다. 영화의 원작인 마이클 루이스의 은 이에 대해 “제임스의 가장 큰 업적은 야구 통계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봄으로써 전통적인 경기의 이해 방식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사실에 집중된다”고 표현한다.

영화에서 빈과 그의 뚱보 보좌관은 선수 선발 회의에서 ‘경험’을 강조하는 고참 스카우트들의 의견을 ‘출루율’과 ‘장타율’이라는 단어로 누르려 한다. 빈이 팔꿈치 부상 경력에 한 번도 1루수 미트를 낀 적이 없는 스콧 해티버그를 강타자 제이슨 지암비의 후임으로 고집한 이유도 그의 높은 출루율 때문이었다.

빈과 기존 야구계 사람들의 갈등은 제임스가 1979년판 에서 밝힌 견해에서 연원한다. 이 책에서 제임스는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통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그의 답은 ‘점수’(Run)였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야구규칙 1조 2항은 야구라는 경기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한다. “각 팀의 목적은 상대팀보다 더 많이 득점하여 승리하는 데 있다.” 따라서 타자에 대한 가장 좋은 평가 방법은 그가 몇 점만큼의 가치를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선수의 가치를 계산하는 정교한 공식

물론 야구 기록표에는 ‘Run’이라는 항목이 있다. 타자에게는 득점, 투수에게는 실점을 의미한다. 하지만 득점은 2루 주자가 타자의 안타로 홈을 밟을 때 주어진다. 즉, 다른 선수의 도움이 개입되는 수치다. 뒤에 강타자가 즐비한 1번 타자는 많은 득점을 올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5번 타자는 득점 랭킹에 들기 어렵다.

아마도 우연히, 제임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 팀의 출루율과 루타수(타격으로 얻은 베이스의 합. 단타는 1, 2루타는 2, 3루타는 3, 홈런은 4)를 곱하면 실제 득점과 비슷한 값이 나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1년 한국 프로야구 LG 트윈스의 팀 출루율(0.338)을 루타수(1519)로 곱하면 577이 된다. LG의 올해 팀 득점은 579점이었다.

야구 경기에서 점수가 나는 과정은 이렇다. 타자가 아웃당하지 않고 1루를 밟아야 한다. 그리고 2·3루를 거쳐 홈플레이트를 밟으면 공격 쪽에 1점이 주어진다. 즉 득점에 가장 영향을 끼치는 변수는 얼마나 많이 출루를 했느냐, 그리고 홈플레이트까지 얼마나 가깝게 진루했느냐다. 타석당 출루를 의미하는 출루율과 주자 진루 능력을 보여주는 장타율(루타수/타수)은 그래서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야구계 사람들은 타율과 홈런, 타점을 타자의 능력을 알려주는 지표로 여겼다. 하지만 그는 전통적인 지표들이 설명력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득점의 본질, 즉 출루와 장타로 새로운 공식을 만들었다. 1979년 에서 처음 발표한 ‘RC’(Runs Created)다. RC는 ‘(A×B)/C’ 모양으로 된 공식이다. 최초에는 A는 ‘안타+사사구-도루실패’, B는 ‘루타수+0.7×도루’, C는 ‘안타+사사구’였다. 제임스와 그의 후예들은 뒷날 A·B·C를 좀더 정교하게 수정했다. 하지만 이 공식의 기본은 출루율과 비슷한 A/C에 루타수에 가까운 B를 곱한 것이다.

이 공식으로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올해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 뛴 이대호는 시즌 종료 뒤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었다. FA 계약 협상을 해야 했던 롯데 구단은 이대호가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닌 선수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이대호를 놓칠 경우 팀 전력 손실이 얼마인지를 파악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대호는 프로야구 사상 유일하게 타격 3관왕, 즉 홈런·타율·타점 타이틀 석권을 두 번이나 이뤄낸 선수다. 하지만 타율과 홈런, 타점 기록만으론 이대호의 팀 내 비중을 파악할 수 없다. 제임스의 RC는 이에 대한 답을 준다. 2011년 이대호는 121점만큼의 가치를 가진 선수였다. 이대호 대신 들어올 1루수가 50점 정도의 가치를 가졌다면 롯데는 내년에 6.7승 정도를 손해 보게 된다. 그렇다면 구단은 내년에 더 높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6.7승 이상의 가치가 있는 선수를 영입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주목받지 못한 우수 선수를 찾아서

사실 이대호와 같은 선수를 평가할 때 RC 같은 생소한 수치는 필요하지 않다. 최고의 선수는 누가 봐도, 어떤 수치로도 최고다. 하지만 의 오클랜드는 최고의 선수를 잡을 돈이 없는 팀이었다. 그래서 경쟁자들이 주목하지 않는, 값싸고 능력 있는 선수를 찾아야 했다. 빌리 빈이 선수 선발 회의에서 출루율과 장타율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이유가 그것이다.

야구의 본질은 점수를 더 내고, 덜 주는 싸움이다. 야구는, 완벽하진 않지만 다른 어떤 종목보다도 이 본질이 숫자로 잘 표현되는 경기다. 그래서 영화에서 표현되듯 고졸 실업자가 될 뻔했던 빌리 빈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연봉을 받는 단장이 될 뻔했고, 명배우 브래드 피트가 자신의 인생을 연기하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다.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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