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국내 프로야구단은 시즌 중 방출한 한 외국인 선수와 소송 일보 전까지 갔다.
프로야구 선수 계약은 10개월 단위로 이뤄진다. 중도에 구단이 계약을 해지할 경우(방출)에도 연봉 전액 지급이 원칙이다. 반대로 선수가 계약 해지를 요구(임의탈퇴)한다면 잔여 연봉 지급 의무가 없다. 그런데 이 선수의 경우엔 연봉 외 붙은 옵션 금액 지급을 둘러싸고 이견이 생겼다. “소송을 걸겠다”는 선수 쪽의 태도에 구단은 꼼짝없이 요구액을 다 지불해야 했다. 소송에 들어가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A급 계약 연봉 10억원 추산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정한 외국인 선수 고용규정을 보면, 첫해 외국인 선수의 연봉은 30만달러를 넘을 수 없다. 30만달러 상한선에는 연봉 외 옵션도 포함된다. 각 구단은 KBO에 규정에 따른 금액이 기재된 계약서를 제출한다. 하지만 대다수 구단이 ‘가짜 계약서’를 내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물론 문제의 구단도 규정 이상의 금액을 해당 선수에게 주기로 했다. 법정에 서자니 실제 금액이 노출될 판이었다. 이러니 소송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009년 기아는 외국인 투수 듀오 아킬리노 로페스와 릭 구톰슨의 활약에 힘입어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를 석권했다. 당시 타 구단은 “규정을 훨씬 넘어선 금액을 지급했을 것”이라고들 했다. 이에 대해 기아 구단은 “소문만큼은 아니다”라는 태도였다. 올해 LG는 시속 160km를 던지는 강속구 투수 레다메스 리즈를 영입했다. 원소속 구단에 지급한 이적료를 포함한 몸값 추정액은 170만달러·200만달러·230만달러·270만달러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LG 구단은 “규정을 지켰다”는 태도다. 진실은 알 수 없다.
외국인 선수 몸값의 규모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외국인 종사자는 소득액의 20%를 소득세로 낸다. <일간스포츠>는 8월9일자로 국세청 소득신고 자료를 바탕으로 한 2008~2010년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몸값 규모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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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르면 외국인 선수 연봉 총액은 2008년 89억500만원, 2009년 98억9800만원, 2010년 87억2800만원이었다. 같은 기간 최저 연봉(2400만원) 적용을 받는 신인을 제외한 국내 선수 연봉 총액은 각각 331억원, 332억원, 344억원이었다. 3년 평균 외국인 선수는 국내 선수 총연봉의 27.3%를 차지했다. 평균 연봉으로는 3년 평균 외국인 선수가 3억8200만원, 국내 선수가 8400만원이었다. 그리고 연도별 외국인 선수 최고 연봉은 2008년 11억5700만원, 2009년 12억1600만원, 2010년 9억9200만원이었다. 연봉 한도 이하를 받고 뛰는 외국인 선수도 많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뛰는 A급 외국인 선수는 10억원가량을 받고 뛴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현재 국내 선수 최고 연봉이 7억원이다. 올해 외국인 선수 연봉은 지난해보다 더 올랐다는 게 야구 현장의 대체적인 평가다.
국내 선수 몸값은 제자리 걸음프로 구단에서 성적은 생명이다. 성적을 내기 위해 내국인에게든 외국인에게든 투자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 몸값에 거품이 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구단 단장은 “구단들이 실정을 벗어나는 금액을 지출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외국 구단 스카우트는 “일본 프로야구의 1년차 외국인 선수 연봉은 대개 4천만엔 선”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과 수준이 비슷한 대만프로야구(CPBL)의 외국인 선수는 월봉 1만~1만5천달러를 받는다. 스타급 선수가 받는 돈이 월 1만5천달러다. 대만 프로야구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이들은 멕시칸리그보다 30~40% 많은 급여에 대만 구단과 계약을 한다. 최고 스타가 옵션을 다 채워 15만~20만달러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만에서 뛴 한 외국인 선수는 국내 구단의 영입 제의에 70만달러를 불렀다. 이 관계자는 “한국에선 주택과 통역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한마디로 국내 구단은 ‘봉’”이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2008~2010년 연봉 수치에서 보듯 최근 수년간 국내 선수 연봉 총액은 ‘동결’되는 분위기다. 반면 프로야구단의 경영 상태는 최근 야구 붐을 타고 크게 호전됐다. 2006년 프로야구장 객단가(총입장수입/총관중)는 3500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엔 6952원이었고, 올해는 전반기에 8183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5년 사이에 3.8배가 오른 셈이다. 상품과 광고 판매 수입도 크게 늘었다. 서울과 부산을 연고로 하는 LG·두산·롯데는 구단 자체 매출만 200억원대다. 강준호 서울대 스포츠산업연구센터 소장은 “이제 한국 프로스포츠단은 흑자를 낼 수 없다는 전제는 폐기돼야 한다”고 말한다. 성장의 과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국내 선수 처지에선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점은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의 실제 몸값을 공개하지 않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 몸값에 대해선 협회와 그 구성원, 그리고 팬들에게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프로스포츠는 계약이 생명이다. 약물이나 승부조작 등 문제에 대해서는 야구계가 위기감을 느끼고 대처한다. 그런데 계약에 대한 거짓말은 왜 용인하고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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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순환 끊어져 침체기 다시 올 수도
프로야구는 현재 호황이다. 그러나 언제 위기가 다시 닥칠지 알 수 없다. 이미 프로야구는 1990년대 중반 반짝 호황기 뒤 10년 넘는 침체기를 겪은 경험이 있다. 지금의 호황은 프로야구단 경영 개선과 그로 인한 과실이 선수와 팬에게 돌아가는 선순환으로 이어져야 한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과소비’가 우려되는 이유다.
언젠가는 국내 구단도 메이저리그 10승 투수를 영입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몸값에 과도한 제한을 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한편 ‘균형 잡힌 경쟁’을 위해 어느 정도 제한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그 수준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 지금은 그런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논의를 하려면 정확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구단이 거짓 외국인 선수 연봉 데이터를 KBO에 제출하고 있다.
최민규 <일간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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