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사건이 일단락됐다. 살펴보자. 창원지검 특수부는 프로축구 승부조작에 관련된 현직 선수 5명을 구속기소하고 기타 관련자 7명을 불구속기소하는 등 모두 12명을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소문만 무성하던 승부조작 사건을 최초로 규명한 점이 큰 성과”라고 밝혔는데,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이번 사건’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검찰 수사는 당분간 더 치밀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처리가 발본색원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프로축구는 물론이고 각급 대회나 여타 종목과 관련한 제보가 끊이지 않고 검찰 역시 프로축구 정규 리그의 몇몇 경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으니, 승부조작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승부조작은 다양한 이유와 형태로 발생한다. 한국 스포츠의 뿌리 깊은 ‘위계질서 문화’가 한 원인이다. 지난해 고교클럽 챌린지리그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는 광양제철고가 포철공고에 9분 사이에 내리 5골을 내주며 1-5로 패한 적이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두 팀 감독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고, 두 팀 또한 남은 대회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다. 두 팀은 모두 포스코그룹 산하 ‘포스코청암재단’ 소속 학교다.
이런 위계질서에 따른 승부조작은, 이를테면 한두 경기의 승패 여부로 지도자 자리를 잃을 수 있거나 특정 경기 결과에 따라 선수들의 상위 학교 진학이 결정적일 때, 은밀히 발생한다. 대표팀 선발과 관련해 특정 선수를 밀어주는 행위도 발생하는데, 가장 가까운 사례로 지난 4월 불구속기소된 쇼트트랙의 이준호 코치가 있다. 그는 지난해 3월 열린 전국 남녀 중·고등학교 쇼트트랙대회 직전에 다른 코치들과 짜고 종목별 입상 선수 명단을 정해 승부조작을 했다. 이준호 코치 이전에도 링크 바깥에서 특정 선수를 ‘밀어주는’ 승부조작은 쇼트트랙의 오랜 고질병으로 지목받아왔다.
아시아의 검은돈이 우리 스포츠의 허술한 시스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사례도 있다. 2008년 3부리그 격인 K3리그 서울 파발FC의 두 선수가 중국 도박단에 연루돼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가 사법 당국의 중형과 대한축구협회의 제명 조처를 받았다. 팀은 해체됐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회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한국 프로스포츠를 위협할 수 있다는 염려가 있었으나 특별한 방책이 세워지지 못했다.
중국 프로축구팀 광저우 헝다를 맡고 있는 이장수 감독은 “한 경기당 최대 80억~100억원이 오가며 혹시라도 있을 승부조작에 대비해, 감독들은 경기 직전까지 출전 선수 명단을 밝히지 못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인터폴의 집계에 따르면, 스포츠 베팅과 관련된 자금은 연 1400억달러(약 154조원)이며 2007년에는 중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타이·베트남에서 7억달러(약 7700억원) 이상의 축구 도박이 성행했다.
물론 그 뒤에 조직이 있다. 대만의 경우, 삼합회를 비롯해 폭력조직이 불법 베팅 사이트를 운영하며 승부조작에 더해 납치·협박·뇌물 등을 일삼는 바람에 ‘야구의 나라’의 연평균 관중 수가 160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추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마잉주 대만 총통이 “확실히 수사해 정화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2009년이다. 같은 시기에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도 축구장의 불법 베팅과 승부조작을 엄단하라고 지시했고, 무려 100여 명이 조사를 받았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정부 대책은 단기적 해결책에 불과</font></font>중요한 것은 ‘풍선 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그 조직과 자금이 근절되지 않고 다른 나라로 월경한다는 점이다. 국내 프로축구 정규리그에서 수상한 눈빛의 청년들이 핸즈프리로 실시간 중계를 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송수신은 중국과 연계된 것으로, 아시아의 도박 세력은 어느 곳이든 경기가 열리기만 하면 무차별적으로 판을 만든다. 예를 들어 일요일 밤 맨체스터와 리버풀의 빅매치에 거액을 쏟아부었다가 탕진하고 만 도박꾼이 있다면, 그는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열리는 그 어떤 성격의 경기라도 다시 쌈짓돈을 긁어모아 베팅한다. 설령 그것이 한국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경기라 해도 상관없다. 물론 이런 상황이 곧장 승부조작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과열된 베팅을 조종하는 세력은 곧장 ‘설계’에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사태에 직면해 정부와 관련 단체가 급히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소를 잃긴 했어도 외양간을 그대로 둘 수는 없기에 환영할 만하다. 우선 문화체육관광부는 경기 관계자와 주최단체에 대해 벌칙을 강화했다. 승부조작이 발생하면 연루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사법적 조처를 취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최 단체에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지원금이 일체 차단된다. 재정 기반이 취약한 국내 프로스포츠 단체들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대한축구협회의 조중연 회장도 베팅 패턴을 감시해 사전에 조작을 방지하는 ‘조기경보 시스템’을 서둘러 도입하기로 국제축구연맹과 얘기를 나눴으며,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의 축구단체가 공조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또한 이런 기조의 ‘감시와 처벌’ 강화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런 처방은 현상적 ‘진단’에 그친 결과다. ‘체질 개선’이라는 본질적 진단이 선행돼야 현실적인 처방전이 마련될 것인데, 검찰 수사에 발 맞춰 급히 단기적 해결책을 모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승부조작은 반드시 불법 베팅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스포츠의 고질적인 위계질서 문화에 의해서도 은밀히 진행된다. 군사적 서열관계를 타파하기 위한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돈이 아니라 자리 때문에, 불법 브로커 때문이 아니라 선후배 관계 때문에 승부조작이 발생한다. 하위 연봉 선수들의 열악한 처우도 진단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물론 도박의 속성상 승부조작이 반드시 형편이 어려운 하위 연봉자에 의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부상이나 슬럼프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한 무명 선수들이 이런 유혹에 견디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선수복지재단’은 어떨까 </font></font>이참에 협회와 연맹은 ‘선수 복리후생을 위한 기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협회와 연맹의 수익이나 예산 가운데 시설 확충이나 유지 부분을 선수의 복리후생으로 활용해보는 것, 고려해볼 만하다. 무명 선수들이 경제적으로 급한 사정이 생겼을 때 브로커의 명함을 찾기보다는 우선적으로 협회나 연맹의 복리후생 담당자와 상담할 수 있다면 검은 유혹은 조금씩 줄 것이다. 차범근, 홍명보, 박지성 같은 스타들까지 함께하면 더 아름다울 것이다. 이들은 이미 재단 형식의 자체 기구를 통해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여기에 ‘선수복지기금’ 조성을 위한 대회나 이벤트,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간다면 하위 연봉 선수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얻을 것이다. 이런 뜻이 한데 모여서 이를테면 ‘선수복지재단’이라는 법률적 틀까지 갖추는 것을 지금 함께 생각해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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