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홈런’이라는 표현은 주관적이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결정적 홈런을 따져볼 수도 있다. 1957~2005년 메이저리그 전체 경기를 대상으로 했을 때 원정팀이 2점 차로 뒤진 5회초 무사 1·2루 상황을 맞은 뒤 이긴 확률은 0.314였다. 여기에서 타자가 싹쓸이 2루타를 쳐 동점에 무사 2루를 만들었다면 승리 확률은 0.560으로 높아진다. 따라서 이 타자는 팀 승리 확률을 0.246만큼 올린 셈이 된다. 이 0.246을 WPA(Win Probability Added·추가한 승리 확률)라고 한다. WPA를 기준으로 올해 가장 극적인, 곧 팀의 승리 확률을 가장 높이 끌어올린 홈런을 꼽아본다.
10위: 두산 최준석<font color="#C21A8D"> (4월8일 잠실 기아전) WPA 0.360 </font>
3회말 기아 양현종은 기시감에 시달리는 듯했다. 이날은 양현종의 시즌 두 번째 등판. 첫 등판인 4월3일 광주 삼성전에서 양현종은 5회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볼넷 세 개를 연속으로 내준 뒤 강판됐다. 이날은 2회까지 무실점. 1-0 리드를 안은 3회에도 삼진 두 개로 간단하게 투아웃을 잡았다. 그러나 2번 정수빈부터 4번 김동주까지 내리 볼넷을 내줬다. 이어 등장한 5번 최준석은 양현종의 체인지업을 받아쳐 자신의 프로 통산 1호 만루 홈런을 만들어냈다. 최준석은 5월11일 현재 3홈런에 그치고 있지만, 모두 WPA가 24%를 웃도는 ‘결정적’ 한 방이었다.
9위: LG 이병규 <font color="#C21A8D">(5월4일 잠실 두산전) WPA 0.361 </font>
지난해 시즌을 앞두고 이병규는 계약금 1억원, 연봉 4억원에 2년 계약을 했다. 당시 요미우리 소속이던 이승엽은 “병규 형 몸값이 그것밖에 되지 않느냐”고 했지만 2010년 이병규의 성적은 그 이하였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시즌 첫 29경기 동안 타율 0.381에 6홈런을 치고 있다. 홈런의 순도도 높다. 5월4일 잠실 두산전 7회말 이병규는 호투하던 두산 선발 더스틴 니퍼트한테서 투런 홈런을 뽑아냈다. 0-1로 끌려가던 LG는 이병규의 홈런으로 한 점 차 역전에 성공했다.
8위: 한화 이대수 <font color="#C21A8D">(4월6일 대전 기아전) WPA 0.363 </font>
이대수는 지난 겨울 체중을 70kg에서 75kg으로 늘렸다. 3kg는 근육이었다. 파워를 기르려고 웨이트트레이닝에 매달렸다. 개인 최다 홈런이 7개던 이대수는 올해는 5월 초에 이미 4홈런을 쳤다. 가장 극적인 홈런은 시즌 네 번째 경기에서 나왔다. 9-9로 맞선 연장 10회말 이대수는 선두 타자로 나서 기아 마무리 유동훈의 공을 대전구장 왼쪽 외야 스탠드로 날려버렸다. 올 시즌 1호이자 이대수의 생애 첫 끝내기 홈런이었다.
7위: LG 박경수<font color="#C21A8D"> (5월10일 잠실 한화전) WPA 0.364 </font>
한화 최진행은 이 경기에서 홈런 세 방을 날렸다. 프로야구 통산 44번만 나온 대기록이다. 그러나 7회말 터져나온 박경수의 역전 만루 홈런은 최진행이 대기록의 여운을 음미할 시간을 앗아갔다. 다음날 최진행은 “팀이 져서 아쉽다”고 쓴 입맛만 다셨다. 그렇다고 3홈런의 가치가 퇴색되지 않는다. 최진행의 홈런 3개의 WPA 합은 0.406. 박경수의 한 방(0.364)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홈런의 가치를 결정하는 ‘상황’은 동료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6위: LG 박용택 <font color="#C21A8D">(4월13일 잠실 삼성전) WPA 0.420</font>
박용택과 2009년 ‘타격왕’ 타이틀을 다퉜던 롯데 홍성흔은 “내 홈런 운이 용택이에게 빙의된 것 같다”고 푸념한다. 5월11일까지 홍성흔의 홈런 수는 0개. 그러나 지난해 9홈런에 그쳤던 박용택은 벌써 7홈런을 치고 있다. 4월13일 연장 10회 말에 삼성 정현욱에게서 뽑아낸 끝내기 홈런은 달라진 박용택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이 홈런의 WPA 0.420은 올해 박용택의 개인 최고 기록이기도 하다.
5위: 한화 강동우 <font color="#C21A8D">(4월6일 대전 기아전) WPA 0.439 </font>
7-9로 뒤진 9회말 무사 2루에서 강동우는 기아 유동훈을 상대해 동점 투런 홈런을 날렸다. 8위에 랭크된 이대수의 끝내기 홈런과 같은 날 나온 홈런. 경기 뒤 스포트라이트는 이대수에게 돌아갔지만 WPA는 강동우의 홈런이 더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한다. 강동우의 홈런 WPA는 0.439, 이대수는 0.363이었다. 끝내기 홈런이라는 ‘결과’ 못지않게 동점 홈런이라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하다.
4위: 삼성 채태인 <font color="#C21A8D">(4월2일 광주 기아전) WPA 0.444 </font>
삼성과 기아의 시즌 개막전이었다. 0-2로 끌려가던 삼성은 8회초 이영욱의 적시타로 한 점을 따라갔다. 1사 만루에 타석에는 채태인. 앞 세 타석에선 모두 삼진으로 물러났다. 데뷔 첫 승이 걸린 순간에서 류중일 삼성 감독은 대타 기용을 생각했다. 그러나 채태인을 믿기로 마음을 굳혔다. 믿음은 보답을 받았고, 채태인은 시즌 1호 역전 만루 홈런을 날렸다.
3위: 롯데 이대호<font color="#C21A8D"> (5월7일 잠실 두산전) WPA 0.561 </font>
이대호는 지난해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연장 10회초에 결승 3점 홈런을 날렸다. 앞 타순의 조성환이 고의4구로 걸어나간 뒤 나온 홈런이었다. 경기 후반 이대호에게 정면 승부를 거는 건 위험하다는 방증이었다. 이날 9회초 7-6으로 앞선 무사 1루에서 두산 임태훈이 2구째 던진 공은 몸쪽 높은 직구였다. 위험했다. 그리고 이대호는 이 공을 잠실구장 왼쪽 스탠드로 넘겨버렸다. 이 공을 마지막으로 임태훈은 2군행 통보를 받았다.
2위: 한화 장성호<font color="#C21A8D"> (5월11일 LG전 투런) WPA 0.596</font>
박종훈 LG 감독은 8회까지 투구 수 100개를 채운 선발 투수 레다메스 리즈를 9회초에도 마운드에 올렸다. 스코어 1-0. 리즈의 한국 데뷔 첫 완봉승이 눈앞에 있었다. 개인 기록보다도 경기 후반에 늘 고전하는 리즈에게 완투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었다. 1사 2루에서 타석에 선 장성호는 1998년부터 2006년까지 9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던 강타자다. 하지만 2007년 이후 부진의 늪에 빠졌고, 지난해 한화로 트레이드돼서도 타율 0.245에 그쳤다. 그러나 올 시즌 장성호는 다르다. 전날 잠실구장 LG전에서 장성호는 0-1로 뒤진 9회초 결승 역전 투런 홈런을 날렸다. 잠실구장 오른쪽 스탠드로 날아간 투런 홈런은 한화에 귀중한 1승을 안겨줬다. 다음날 스포츠신문의 1면은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환호하는 장성호의 사진으로 도배됐다. 리즈도 패전 투수가 되긴 했지만 첫 완투 기록은 쌓았다.
1위: LG 이병규 <font color="#C21A8D">(5월4일 두산전 투런) WPA 0.730</font>
9위 항목에서 이어진다. 이병규의 7회 투런 홈런으로 LG는 2-1 우세를 잡았다. 그러나 끈끈한 두산은 7회말 3안타로 2점을 내며 재역전에 성공했다. 9회초. 2사 1루에서 타석에 선 이병규는 임태훈을 두들겨 경기 두 번째 역전 투런 홈런을 날렸다. 이 홈런의 WPA는 올해 8개 구단 전체 9426타석 가운데 가장 높은 0.730이었다. 그러나 이 경기는 결국 9회말 2점을 낸 두산의 5-4 승리로 끝났다. 가장 극적인 홈런이 팀을 패배에서 구하지 못했다. 야구는 인생을 닮은 경기라고 한다. 한순간의 희열에 미혹되지 말 것.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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