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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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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만의 꿈은 이루어질까

1960년 아시안컵 우승 뒤 ‘무관의 제왕’ 한국 축구…

조광래호는 세대교체 불안을 넘어서 우승컵 안을까
등록 2011-01-06 09:19 수정 2020-05-03 04:26

대한민국이 아시아 축구의 맹주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월드컵 본선 7회 연속 진출과 4강 신화 달성(2002년)의 기록은 한국 축구가 아시아 최강팀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만 월드컵을 제외하면 한국이 아시아 축구 최강이라 단정짓기는 쉽지 않다.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팀을 가리는 대회는 4년에 한 번씩 각국 A대표팀이 맞대결을 벌이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이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지난 51년 동안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29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바니야스클럽 경기장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연합

지난해 12월29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바니야스클럽 경기장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연합

달랑 4개국이 참가했던 1회 대회(1956년 홍콩 개최)와 2회 대회(1960년 한국 개최)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한 뒤 다시는 우승자의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1970∼80년대에 준우승만 세 번 차지한 게 전부다. 한국이 챔피언 자리를 되찾지 못한 사이 아시안컵은 중동과 일본의 차지였다. 지난 50년간 아시안컵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한국의 숙적인 일본이 각각 세 번씩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고, 2007년 대회 때는 이라크가 극적인 우승을 일궈냈다. 특히 일본은 최근 5개 대회에서 네 번이나 4강에 진출했고 이 중 세 번을 우승하며 한국 축구의 코를 납작하게 눌렀다. 한국은 지난 대회 3·4위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일본을 꺾었지만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안정된 수비, 불안한 공격

하지만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2011년 아시안컵 대표팀은 무관의 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해외파와 국내파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한국 대표팀은 아시아와 유럽에서 각각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는 선수들로 진용을 구축했다. 2년 연속 AFC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한 K리그의 위용을 앞세운 대표팀은 일본과 중동, 유럽 등에서 전성기를 구가 중인 선수들의 합류로 전력이 한층 더 강화됐다. 특히 대회가 벌어지는 카타르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조용형·이정수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뛰는 이영표가 합작할 수비 라인은 중동 원정의 모래바람을 두려워하던 한국 대표팀에는 천군만마 같은 지원군이나 다름없다. 풍부한 경험에 중동 적응까지 마친 베테랑 수비수들의 존재는 조광래 감독의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믿을 구석’이다.

(위) 2011 AFC 아시안컵 한국 대표팀 일정(한국시간) / (아래)한국 대표팀 명단

(위) 2011 AFC 아시안컵 한국 대표팀 일정(한국시간) / (아래)한국 대표팀 명단

그러나 공격은 다르다. 알려진 대로 한국은 최고의 골잡이를 잃은 채 출정했다. ‘원톱’ 박주영이 프랑스 리그 경기 도중 무릎을 다쳐 막판에 명단에서 제외된 것이다. 박주영의 부재는 최종 명단을 공격적 인재들로 구성한 조광래 감독의 구상에 타격을 주는 악재였다. 이미 부상으로 제외됐던 중앙 미드필더 김정우(상무)의 공백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게다가 미리 뽑아둔 공격수들은 국제 경험이 부족한 젊은 신예들. 각각 소속팀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선수들로 구성했지만 A매치 경력이 전무한 선수도 많아 감독의 고민을 깊어지게 한다. 이번 명단에서 공격수로 분류할 수 있는 김신욱·지동원·유병수·손흥민, 이렇게 4명의 A매치 출전 기록을 다 합쳐도 한 경기(0골)밖에 되지 않는다. 교체 투입돼 한 경기를 뛴 유병수를 제외하면 나머지 셋은 아직 성인 무대 데뷔전도 치르지 못한 선수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 있는 어린 공격수들의 부담을 덜어낼 미드필드진의 운용이다. 조광래 감독은 대회 시작 전 평가전에서 보여줬던 대로 박지성을 중앙에 투입할 생각이다. 후배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박지성은 최전방 공격수 바로 아래쪽에서 활발히 움직이며 상대 수비를 괴롭힐 것이다. 양옆에서 공격에 나설 이청용이나 염기훈, 그리고 뒤에서 지켜설 기성용·구자철·윤빛가람 등의 존재는 최전방의 골잡이 후배들이 기량을 뽐낼 수 있게 적극 지원에 나설 전망이다.

박주영 공백 메우기가 관건

그럼에도 논란이 없지는 않다. 첫째는 아시안컵 본선에 나가는 대표팀의 인적 구성이 ‘최대의 전력’보다는 ‘세대 교체’에 더 큰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박주영이 빠진 자리에 베테랑 공격수를 투입하는 대신 젊은 수비수 홍정호를 추가 발탁한 것을 두고 말이 많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성인 무대에서 국제 경험이 태부족인 선수들로 구성된 만큼 2010년 시즌 K리그 MVP에 오른 김은중이나 지난 시즌 MVP 이동국, 최근 프랑스 오셰르 이적에 성공한 정조국(전 FC서울) 등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에 대한 이의 제기다. 둘째는 안정화되지 않은 전술이다. 부임 이래 다양한 전술을 시험한 조광래 감독은 이른바 ‘포어 리베로’라 불리는 중앙 수비수 전진 배치 스리백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오래지 않아 이를 폐기했다. 또 이번 대회를 앞두고 박주영과 그의 파트너로 구성된 투톱 시스템을 구상했지만, 박주영이 빠지자 후임 최전방 공격수를 정하지 못한 채 여러 선수를 교대로 시험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불과 석 달 전까지만 해도 대표팀 명단 어디에도 이름이 없던 열아홉 소년 손흥민을 갑작스럽게 중용하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수개월의 준비 기간이 무색할 정도로 과감한 변화를 계속 시도하는 것은 대회 개막이 임박한 상황에서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한 태도다.

물론 대표팀의 우승 가능성은 여전히 매우 높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멤버가 건재하고 청소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젊은 피가 적절하게 섞여 있는 우수한 선수진은, 한국 대표팀을 우승 후보 1순위로 꼽게 하는 가장 큰 자산이다. 또한 현역 한국 감독 가운데 전술 구사에 가장 능란한 지도자로 꼽히는 조광래 감독의 존재 역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요소다. 조광래 감독이 신구의 조화를 효율적으로 이끌어 한국에 51년 만의 아시아 정상 트로피를 안겨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서형욱 문화방송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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