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심장’ 박지성이 속한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는 축구클럽이다. 한국에서도 맨유의 인기는 높다. K리그에 몇 개 클럽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맨유’가 무슨 뜻인지 알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맨유는 ‘인기만 있는’ 클럽이 아니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우승 트로피를 수집할 정도로 뛰어난 성적에, 미국의 경제 전문지 가 지난 4년간 발표한 ‘부자 클럽 순위’(Soccer Team Valuations)에서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든든한 재력까지 갖췄다. 는 최근호에서 맨유의 자산 가치를 약 18억달러(약 2조원)로 평가했다. 맨유는 지난 20년간 유럽의 최강자를 가리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두 번 우승했다. 자국 리그에서는 11차례나 정상에 올랐다. 이 기간에 맨유는 단 한 번도 3위권 밖에서 시즌을 마친 적이 없다. 그러나 올 시즌은 다르다.
거물급 선수 영입할 여력 없어맨유에 위기의 계절이 찾아왔다. 경기력 저하와 순위 하락이 겹쳤다. 8라운드 현재 맨유는 4승2무2패로 첼시, 맨체스터 시티, 아스널에 이어 4위로 처져 있다. 질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이겨 고비를 벗어나는 맨유의 장기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올 시즌 맨유는 막판에 골을 허용하며 승점을 잃거나, 손쉬운 팀을 상대로 여러 골을 앞서다 끝내 동점골을 헌납하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수비 불안이다.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호성적을 이어오던 맨유는 올 시즌 리그 8경기에서 벌써 11골을 내줬다. 리그 1·2위를 달리는 첼시(2실점)와 맨시티(5실점)를 합한 것보다 실점이 많다. 8개 클럽이 맨유보다 실점이 적은 상황이다. 맨유 수비의 불안감은 잦은 실수로 인한 자충수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지난 10월17일 웨스트브로미치전은 맨유 수비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집중력이 결여된 맨유 수비는 에브라의 자책골과 골키퍼 판데르 사르의 어처구니없는 실책이 겹쳐 두 골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채, 2-2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맨유 수비 불안의 원인은 포백 수비의 기복이다. 중앙 수비수 네마냐 비디치와 왼쪽 수비수 파트리스 에브라가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나머지 두 자리의 불안이 포백의 안정화를 방해하고 있다. 한때 세계 최고 중앙 수비수로 꼽히던 리오 퍼디낸드는 부상으로 남아공 월드컵에 결장하더니, 시즌 개막 이후에도 줄곧 재활에 몰두하다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그를 대체할 선수로 꼽히던 조니 에반스나 크리스 스몰링은 아직 덜 여문 상태. 10년 넘게 오른쪽 수비 자리를 지킨 게리 네빌의 경우 서른여섯의 나이를 이기지 못하고 최근 몇 년간 지속적인 하락세에 있지만 그를 대체할 후계자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이에 따라 매 경기 다른 선수들이 투입되는데 브라질에서 데려온 다시우바 형제는 지나친 공격 성향으로, 웨스 브라운이나 존 오셔는 전문 풀백 자원이 아니라는 점에서 각각 퍼거슨 감독의 낙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마흔 살이 넘은 판데르 사르 골키퍼가 올 시즌 뒤 은퇴를 앞두고 급격하게 기량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아직 후임을 정하지 못한 것도 불안한 대목이다.
수비진의 세대교체가 성과를 내지 못한 이면에는 연이은 스카우팅 실패와 재정난이 결부돼 있다. 지난 몇 년간 맨유가 의욕적으로 영입한 안데르손, 나니, 베르바토프, 발렌시아 같은 주전급 선수들은 고액의 이적료에 걸맞지 않게 긴 적응기를 보냈다. 마케다, 오베르탕, 웰벡, 깁슨 같은 유망주들의 성장세가 더딘 것도 걱정거리다. 오히려 오랜 시간 벤치 신세만 지게 하다 바르셀로나로 되판 헤라르드 피케가 스페인 대표팀과 바르셀로나의 주축 수비수로 성장하고, 붙잡지 않은 테베스가 맨시티로 이적해 리그 득점 선두에 나선 것은 맨유 정책에 아쉬움을 갖게 한다.
맨유는 지난 시즌 첼시에 리그 우승을 내줬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에 발목을 잡혀 8강을 넘지 못했다. 전력 강화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됐지만 올여름 치차리토(멕시코), 스몰링(잉글랜드), 베베(포르투갈) 같은 유망주들을 영입하는 선에서 이적 시장을 마감해 즉시전력감 보강에 또 한 번 실패했다.
영입 정책 부진은 맨유의 재정 상태와 연관돼 있다. 맨유는 미국의 갑부 맬컴 글레이저가 클럽 자산을 담보로 클럽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빚더미를 떠안았다. 이 과정에서 맨유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레알 마드리드로 보내고 받은 8천만파운드라는 거액을 이적 시장에서 활용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거물급 선수를 사들일 여력을 잃은 것이다.
맨유가 기댈 곳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리더십밖에 없었다. 1986년 맨유에 부임한 퍼거슨 감독은 1993년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맨유의 ‘26년 무관’을 깬 뛰어난 지도자다. 올해로 25년째 맨유를 이끌면서 수차례의 세대교체와 체질 개선에 성공하며 맨유를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최근 ‘에이스’ 웨인 루니가 퍼거슨 감독의 리더십에 반기를 들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퍼거슨 감독과 루니 불화까지루니는 시즌 초 성매매 여성과의 외도 사실이 공개된 뒤 현지 언론의 취재 공세에 시달리며 급격한 컨디션 난조에 빠진 터였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부상을 핑계로 주요 경기에서 루니를 배제했다. 루니는 경기 출전 횟수가 줄어들자 이를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루니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내 몸에는 문제가 없다. 경기에 내보내달라”고 외쳐 파문을 일으켰다. 때마침 루니가 재계약을 거부하고 다른 팀으로 이적을 추진한다는 보도까지 터져 퍼거슨 감독의 리더십은 큰 상처를 받았다.
현지 언론은 2012년 맨유와 계약이 만료되는 루니가 재계약을 거부한다면 맨유가 올겨울이나 내년 여름에 그를 이적시킬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맨유 전술의 핵심 선수인 루니의 이적이 맨유 시대의 종언을 앞당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날은 알 수 없다. 맨유가 시즌을 부진하게 시작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앞에서 나열한 상황은 맨유의 부진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퍼거슨이 25년간 이뤄온 ‘맨유 제국’은 과연 이대로 끝날 것인가. 전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맨체스터에 쏠리는 이유다.
서형욱 문화방송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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