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10월13일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의 재계약 포기를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은 3시즌, 204승 185패 3무 기록을 남기고 퇴장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시즌 중 “3년 더 한국에 남고 싶다”며 재계약 희망을 밝혔다. 그러나 구단은 준플레이오프(PO) 5차전이 끝난 뒤 8일 만에 로이스터 감독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준PO에서 로이스터 감독의 롯데는 두산에 2연승한 뒤 3연패로 ‘리버스 스윕’을 당하며 무너졌다.
8·8·8·8·5·7·7 꼴찌 탈출 주도해
구단 고위 관계자는 “새 감독은 선수의 능력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로이스터 감독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이 관계자는 “후반기 롯데의 승률이 전체 1위였다. 이때는 이대호가 1루수, 황재균이 3루수, 문규현이 유격수로 뛰며 수비가 안정됐다”고 말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준PO에서 수비력이 떨어지는 이대호를 3루에 세우고, 유격수 자리에는 최근 2년 동안 3루수로 주로 뛴 황재균을 기용하는 공격 위주의 라인업을 짰다. 준PO 패배가 감독의 잘못된 선수 기용에 있었다는 고위층의 판단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로이스터 감독은 재임 기간(2008~2010)에 구단 사상 최초로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업적을 이뤄냈다. 그 전 7년 동안 롯데는 최하위 4회, 7위 2회를 기록한 만년 꼴찌였다. 통산 승률 5할2푼4리(204승 185패 3무)는 역대 롯데 감독의 성적 가운데 2위다. 선수들에게 믿고 맡기는 선 굵은 야구는 팬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2008년 롯데는 사직구장에 관중 137만9735명을 동원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에는 138만18명으로 더 많았다. 올해에도 8개 구단 가운데 관중 동원 1위(117만5665명)를 기록했다. 지난해 구단 매출액은 310억원을 돌파했다. 롯데그룹에서 패키지 광고 명목으로 받은 130억원을 제외하고도 입장 수입, 상품 매출, 광고 유치 등으로 180억원을 벌어들였다. 마케팅 환경이 열악한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무엇보다도 로이스터 감독은 ‘외국인 야구 감독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전례를 만들었다. 프로야구는 외국인 감독 영입에 소극적이었다. 1980년대 일본인 도이 쇼스케가 롯데 감독 대행을 맡은 게 유일한 전례다. 미국 프로야구 출신 감독은 로이스터 감독 이전에는 전무했다. 2008년 1월 로이스터 감독이 한국에서의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받은 질문은 “번트를 얼마나 자주 댈 것인가” “훈련 시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이 질문에는 미국식 야구가 한국에서 과연 통할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깔려 있었다.
만년 하위 팀을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는 점만으로 로이스터식 야구는 일단 성공작이다. 가까운 일본 프로야구와 비교할 때 최초의 외국인 감독과 한국 야구의 관계도 우호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외국인 감독은 1972~77년 주니치 드래건스의 월리 요나미네다. 요나미네는 하와이 태생의 일본계 미국인이었다. 1975년엔 조 루츠가 히로시마 카프에서 일본인 피가 섞이지 않은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 됐다. 그러나 루츠는 한 달 만에 해고됐다.
1979년엔 한신 타이거스는 돈 블레이싱게임을 감독으로 임명했다. 블레이싱게임은 선수로 세 시즌, 코치로 9시즌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었다. 코치 시절에는 뛰어난 야구 식견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감독이 됐을 때 상황은 달랐다. 강훈련에 익숙한 코치와 선수들은 블레이싱게임의 느슨한 훈련 방침에 불만을 터뜨렸다. 구단은 신인 선수 기용 문제를 두고 감독과 대립했다. 언론은 선수단과 떨어진 호텔을 이용하는 그를 공격했다. 블레이싱게임은 결국 2시즌 만에 해임됐다.
1994년 지바 롯데 마린스는 미국의 텍사스 레인저스 감독 출신 바비 밸런타인을 연봉 60만달러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했다. 그는 만년 B클래스(4위 이하) 구단인 지바 롯데를 일약 퍼시픽리그 2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구단은 2년 계약을 한 그를 1년 만에 해고해버렸다. 일본식 ‘관리 야구’의 대명사인 히로오카 다쓰로 단장은 밸런타인의 자유분방한 리더십과 적은 훈련량을 대놓고 비판했다. 코치들을 규합해 감독 몰래 비밀 훈련을 하기도 했다. 일본 야구에서 중시하는 희생 번트 사인을 거의 내지 않은 것도 비난의 대상이었다. 한 코치는 구단주에게 “감독의 미숙한 작전 구사 능력으로 15승을 손해 봤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서 밸런타인 감독 아래 지바 롯데가 전해보다 27승을 더 많이 거뒀다는 점은 무시됐다.
한국 야구와 사이좋았던 외국인 감독
로이스터 감독은 부임 3년째인 2010년에도 여전히 기자들로부터 훈련과 번트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롯데가 패할 때면 ‘한국식 야구’의 우수성을 이야기하는 방송 해설가도 있었다. 선수 기용에 의문을 나타내는 코치들도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심각한 갈등은 아니었다. 선수를 존중하는 리더십은 선수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준PO 최종전을 앞두고 롯데 선수들은 “감독 재계약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기자”고 다짐했다. 김경문 두산 감독은 준PO 기간에 “롯데의 공격적인 스윙은 우리 선수들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효봉 MBC Life 해설위원은 “SK의 성공 이후 김성근 감독식의 강훈련과 작전 수행 능력, 불펜 운영을 중시하는 야구가 대세가 됐다. 하지만 야구에 정답은 없다. 로이스터 감독은 ‘야구의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로이스터 감독에게서 2011년 지휘봉을 앗아간 건 그가 이질적인 외국인 감독이어서가 아니다. 어느 나라 프로야구에서나 볼 수 있는 성적 지상주의가 문제였다. 롯데 외국인 선수 라이언 사도스키는 “한국 구단들은 인내심이 적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메이저리그가 더 심하다”고 말했다. 명문 뉴욕 양키스는 1975~82년에 감독을 무려 아홉 차례나 교체한 적이 있다. 롯데 고위 관계자는 “2년 안에 우승을 해야 한다”는 말로 감독 교체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롯데를 ‘2년 내 우승 전력’으로 평가하는 야구계 사람이 적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최민규 기자 didofid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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