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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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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만큼 인간미도 프로급일세

항상 겸손한 태도로 주변 대하는 베컴과 지단 등 축구 스타들…
오랜 인기의 한 축은 ‘내면의 아름다움’ 아닐까
등록 2010-03-12 11:22 수정 2020-05-03 04:26

나는 베컴을 참 좋아한다. 남들은 내가 여자이기에 베컴의 수려한 외모에 반한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물론 베컴의 화려한 이미지 덕에 그런 편견이 쉽사리 생길 수도 있다. 사실, 베컴은 축구뿐 아니라 패션 아이콘으로도 유명해서 축구 외적인 면에서 많은 유혹을 받고 있다. 그래서 본업에 소홀하기 쉬울 수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LA갤럭시에서, 혹은 AC밀란 훈련장에서 본 베컴은 가장 일찍 훈련을 시작하고 가장 늦게 끝내곤 했다. 누가 뭐래도 본업에 충실한 프로였던 것이다.

데이비드 베컴(왼쪽)과 지네딘 지단 등 유명 축구스타는 실력만큼이나 겸손한 태도로 주변을 놀라게 했다. 연합· AP연합

데이비드 베컴(왼쪽)과 지네딘 지단 등 유명 축구스타는 실력만큼이나 겸손한 태도로 주변을 놀라게 했다. 연합· AP연합

고단한 훈련 뒤에도 스태프 도와 정리 작업

베컴의 매력은 비단 투철한 프로정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의 일화를 통해 베컴의 인간미를 엿볼 수 있었다. 혹독한 훈련이 끝나고 동료들은 기진맥진해서 몇몇 벤치 선수만 빼고 로커실로 들어가버렸지만, 베컴은 남아서 스태프들을 도와줬다. 녹초가 된 몸으로 골대를 옮기고 공을 주워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자신의 편안함 대신 동료의 노고를 먼저 생각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 마케팅을 배우고 싶은 욕심에 몇 달 동안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와 훈련장을 견학한 적이 있었다. 그때 베컴을 개인적으로 몇 번 만났는데 볼 때마다 이웃집 오빠 같은 친근감이 들었다. 몇 년 뒤, 내가 처음 한 웹사이트의 에디터가 되었을 때 베컴은 축하한다면서 자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은 다 물어보라고 했다. 작은 인연을 잊지 않고 그런 세심한 배려까지 하는 데 감명받은 기억이 있다.

베컴의 진면목을 아는 이라면 그가 내적인 아름다움까지 겸비했다는 것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AC밀란 채널의 프로듀서 마르코도 그런 경우다. 그는 7년 넘게 그곳에서 일했지만 베컴만큼 인간적인 선수는 드물다고 했다. 스태프들에게 다가와 수고한다는 인사를 하는 것은 물론 개인 파티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고 덧붙였다. 이런 마음가짐이 오늘의 베컴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지단도 항상 겸손함이 돋보이는 축구선수 중 한 명이었다. 프랑스 월드컵을 우승으로 이끌고 아트사커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지만, 그는 한 번도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마지막 연봉인 74억원을 유소년 축구기금으로 기부하고 이후에는 무료로 고문 역할을 하고 있다. 진정한 의리남인 것이다. 얼마 전에도 아이티 지진 참사 희생자를 돕기 위해 자선경기를 했고 유엔발전기금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그는 선수 시절에도 조용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동료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런 성실함과 인품 때문인지 2006년 독일 월드컵 결승에서 박치기를 했을 때도 조롱은 받았지만 큰 비난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인연으로 몇 번 본 적이 있는 나에게 베컴과 마찬가지로 인터뷰 기회를 주기도 했다. 얼마 전 마르세유에서도 조우했는데 그는 레알 마드리드의 칼데론 회장에게 날 소개해줄 정도로 마음 씀씀이가 좋았다. 지단을 데뷔 때부터 지켜본 의 무라드는 프랑스 최고의 스타임에도 겸손함이 변치 않는 점을 칭찬하며 이것이 지단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말했다.

현재 첼시를 지휘하고 있는 안첼로티 감독도 그랬다. 그의 딸을 친구로 둔 덕택에 그의 일상을 더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그의 겸손함과 인간미는 단순한 입소문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바이로 AC밀란 동계훈련을 따라갔을 때는 딸의 호텔방을 나에게 내줄 정도로 친절했다. 또 그는 딸의 졸업 파티 저녁 메뉴까지 챙기는 자상함을 보였고, 딸의 친구들은 안첼로티를 편안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하곤 했다. 이런 모습들이야말로 그의 진짜 인간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첼시의 주장인 존 테리는 안첼로티 감독이 자신이 경험한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라면서 그가 가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장점으로 들었다. 선수들 모두 그를 존경하면서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데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신뢰가 있다는 것이다. 항상 상대에게 유머로써 다가가는 인간적 성품이 있기에 덕장(德將)이라는 말을 들어도 과분하지 않을 것이다.

축구 여행을 하면서 만난 대스타에게 인간미를 느낀 적은 이외에도 많았다. 프리미어 최고의 미드필더라 불리는 첼시의 램파드는 항상 웃는 모습으로 팬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법이 없으며, 레알 마드리드의 카카는 아직도 전 소속팀인 AC밀란의 코치진들과 연락하며 옛정을 나누고 있단다. 2009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발롱도르(올해의 축구 선수상)의 주인공인 바르셀로나의 메시도 겸손하고 착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인기가 어중간한 선수들이 오히려 오만하고 거드름 피우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인기 어중간한 선수들이 되레 거드름

어느 분야든 최고의 위치에 오르려면 실력이 가장 중요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실력만 중요시하고 인격을 돌아보지 않을 때 그 위치는 오랫동안 지켜지기 힘들지 모른다. 축구도 그렇다. 누구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지만 잠깐의 달콤함에 취해 거만해지거나 겸손함을 잃는다면 팬들에게서 외면당하고 훈련도 소홀하기 십상이다. 그런 선수의 생명이 짧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런 점에서 내가 봐온 최고의 축구 스타들은 기량 못지않게 성품도 훌륭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받쳐졌을 때 그 사람이 진정으로 빛날 수 있음을 베컴, 지단 등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서민지 축구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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