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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이상화 ‘밴쿠버의 별’로 뜰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천m·여자 500m ‘메달권 접경지대’…
김연아와 함께 해당 종목 첫 메달 기대
등록 2010-01-14 16:03 수정 2020-05-02 04:25

한국은 올림픽에서 양궁, 태권도, 배드민턴, 레슬링, 핸드볼 등 비교적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을 땄다. 그러나 겨울올림픽 메달 획득 종목은 편식이 심하다. 지금까지 겨울올림픽에서 모두 31개 메달(금 17개, 은 8개, 동 6개)을 땄는데, 금메달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한 종목뿐이다. 메달을 획득한 전체 종목도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을 제외하면 스피드스케이팅 한 종목뿐이다. 그나마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남자 단거리에서만 단 2개의 메달을 땄다.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김윤만이 1천m 은메달, 2006 토리노 올림픽에서 이강석이 500m 동메달을 딴 게 전부다.

이승훈(왼쪽·연합)· 이상화(AP 연합) 선수

이승훈(왼쪽·연합)· 이상화(AP 연합) 선수

쇼트트랙에 편중된 겨울올림픽 메달들

그러나 이번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2월12일~3월1일)에서는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과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종목 이외에서도 메달을 딸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이 대표적이다. 김연아 선수 말고도 ‘기타 종목’에서 메달을 기대해볼 유망주가 있는데, 바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중거리의 이승훈과 여자 단거리 이상화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아시아 선수는 중장거리에 해당하는 1500m 이상은 어렵다는 게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아시아 최고의 중거리 선수라는 일본의 히라코 히로키 선수조차 세계대회 1500m 이상 중장거리에서는 8강 이상의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승훈은 그 벽을 뛰어넘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승훈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하다가 중학교 때 쇼트트랙으로 전환해 주니어 대표를 거쳐 시니어 대표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2009년 2월 겨울유니버시아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밴쿠버 겨울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2009년 4월 국내 예선에서 탈락해 본의 아니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 전향했다.

그런데 이승훈은 전향 8개월 만에 아시아 정상에 서면서 세계 10위 안에 들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전향 뒤 다섯 차례의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이승훈의 5천m 기록은 6분29초99에서 6분14초57까지 무려 15초가량이나 단축됐다. 1차 대회 직후 곧바로 세계 정상권인 디비전A로 승격했고, 세 대회 연속 세계 10위 안에 들었다.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천m에서 6분14초대 기록은 2006 토리노 겨울올림픽 금메달 기록이다. 당시 미국의 채드 헤드릭 선수는 6분14초68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는데, 한국 선수로 유일하게 출전한 여상엽 선수는 28명의 출전선수 가운데 최하위인 28위에 머물렀다. 이번 밴쿠버 겨울올림픽 남자 5천m는 6분12초대에서 금메달이 가려질 전망이다. 6분14초대면 6위 안팎의 성적이 기대된다.

이처럼 이승훈이 아시아 선수로는 드물게 중거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이승훈은 쇼트트랙 출신이기 때문에 코너워크가 뛰어나다. 대부분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가 코너에서 스피드가 떨어지는데, 이승훈은 코너에서 스피드가 줄지 않는다. 또 이승훈은 지구력이 좋은 장점이 있다. 쇼트트랙 선수 시절에도 초반에 뒤지다가 후반에 역전승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뛰어난 지구력과 코너링으로 단시간 내에 발군의 기록을 일군 이승훈이 밴쿠버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된다.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독보적인 이상화는 사실 4년 전 이탈리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도 메달 유망주로 꼽혔다. 그러나 당시 이상화는 여자 500m에서 아깝게도 5위에 머물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이후 4년 동안 이상화는 ‘칼을 갈아왔다’. 이상화는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500m와 1천m에서 메달에 도전할 계획이다. 주변에서는 500m 메달 가능성은 80% 이상, 1천m는 40% 미만으로 보고 있다.

기록으로도 이상화는 여자 단거리의 세계적 선수인 중국의 왕베이싱, 독일의 예니 볼프 등과 박빙의 접전을 펼치고 있다. 이상화의 500m 최고 기록은 2009년 12월12일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벌어진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5차 대회에서 기록한 37초24다. 당시 예니 볼프는 37초00으로 금메달을 차지했고, 왕베이싱도 37초대 초반을 끊었다.

가능성이 충분한 이상화는 밴쿠버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보완해야 할 점으로 ‘초반 스타트’를 꼽고 있다. 초반 스타트로 인한 기록 차이는 승부를 뒤집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초반 스타트와 100m까지의 래프타임이 사실상 메달 색깔을 결정짓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스타트·아웃라인 출발이 관건

세계랭킹 1·2위인 왕베이싱과 예니 볼프의 100m까지 기록은 10초02로 이상화의 10초04보다 100분의 2초 빠르다. 이 차이가 결승선을 통과할 때는 10분의 1~2초까지 벌어진다. 이상화가 4년간 기다려온 올림픽 메달을 따기 위해선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이상화는 100m 래프타임 10초02를 끊는 것이 목표다. 또 아웃코스에서 출발해야 피니시 때 인코스로 들어오면서 앞서가던 (아웃코스에서 출발한) 선수를 따라붙으며 마지막 피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인코스보다는 아웃코스 출발이 유리한데, 코스 운이 얼마나 따라줄지는 미지수다.

이상화는 1월16일 일본 오비히로에서 열리는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에 출전해 밴쿠버 올림픽을 앞둔 마지막 실전 무대를 가질 예정이다. 스프린트 선수권대회는 500m와 1천m 단거리 선수만 출전한다. 겨울올림픽에서 새로운 히로인이 태어날지 지켜볼 일이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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