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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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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패·연승, 사람 피를 말리는구나

남자농구 전자랜드의 13연패 계기로 살핀 ‘연패의 역사’…
연승도 마음 졸이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
등록 2009-11-27 10:53 수정 2020-05-03 04:25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속은 타들어갔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박종천 감독은 팀이 연패에 빠지자 심한 스트레스와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몸무게는 10kg이나 줄었다. 10연패를 당하던 날, 그는 총감독으로 일선에서 물러났고, 유도훈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새로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전자랜드의 연패 숫자는 11월20일 현재 ‘13’으로 늘어났다. 유 감독도 극심한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다.

11월17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와 인천 전자랜드의 경기에서 13연패를 한 전자랜드 선수들이 맥이 빠져 있다. 한겨레 이상현 기자

11월17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와 인천 전자랜드의 경기에서 13연패를 한 전자랜드 선수들이 맥이 빠져 있다. 한겨레 이상현 기자

‘용병 야반도주’가 부른 오리온스 32연패

위안거리가 있다. 전자랜드의 연패는 1998~99 시즌 대구 동양(현 오리온스)의 32연패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 동양은 당시 박광호 감독이 김병철·전희철·박재일 등 주전 3명을 군에 보냈다. 이들이 돌아오면 최고의 전력으로 우승을 노려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동안엔 똘똘한 외국 선수와 식스맨들로 중위권만 유지하면 성공이라고 했다. 시즌 초반에는 2승5패로 ‘선방’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났다. 특급선수로 활약이 기대되던 그레그 콜버트가 부인과의 불화로 짐을 쌌다. 아직도 농구인들 사이에 회자되는 ‘용병 야반도주 사건’이다. 콜버트가 빠진 동양은 하염없이 추락했다. 1998년 11월24일부터 이듬해 2월24일까지 석 달 동안 32번을 내리 졌다. 구단 직원들은 고사도 지내고,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 108배도 했다. 마침내 1999년 2월28일 광주 나산을 물리치고 연패를 끊던 날, 대구실내체육관에는 마치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꽃가루가 흩날렸다.

여자프로농구에서는 구리 금호생명이 2000년 겨울 리그 때 16연패를 당한 게 가장 긴 연패다. 춘천 우리은행도 올해 초 14연패를 당하다가 금호생명을 꺾고 간신히 연패를 멈췄다.

프로배구에서도 프로농구 못지않은 연패 기록이 있다. KEPCO45는 지난 시즌 시작과 함께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25연패를 당했다. 그 전 시즌 막판 2연패를 포함하면 27연패다. 공정배 감독은 결국 경질됐다. 그런데 공 감독 대신 차승훈 감독대행 체제로 치른 첫 경기에서 거짓말처럼 연패가 끊어졌다. 시즌 개막 뒤 무려 석 달 만에 맛보는 승리였다.

프로야구 최다 연패 기록도 만만치 않다.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기록한 18연패다. 삼미는 85년 3월31일부터 4월29일까지 한 달간 내리 18경기를 졌다. ‘너구리’ 장명부를 떠나보낸 직후다. 쌍방울 레이더스도 1999년 8월25일부터 10월7일까지 17연패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사태로 모기업이 흔들리자 구단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축 선수들을 다른 팀에 죄다 팔고 1.5군으로 경기를 치른 탓이다. 삼미와 쌍방울은 최다 연패를 기록한 이듬해 각각 청보와 SK에 매각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롯데도 2002년 16연패의 만만치 않은 연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프로축구에서는 광주 상무가 지난해 23경기 연속 무승(5무18패)의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연패 기록으로는 1994년 전북 현대의 10연패가 있다.

범위를 국외로 넓혀보면,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NFL)에서는 1976~77 시즌 탬파베이의 26연패가 가장 길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1981~82 시즌에 기록한 24연패가 있고, 미국프로야구에서는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1961년 23연패를 당했다.

27년 동안 199연패를 당한 뒤 승리를 거둔 서울대 야구부. 대한야구협회

27년 동안 199연패를 당한 뒤 승리를 거둔 서울대 야구부. 대한야구협회

하지만 동양의 32연패, 탬파베이의 26연패도 이 팀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서울대 야구부다. 1977년 창단 이후 27년 동안 199연패(1무)를 당하다가 2004년 대학야구 가을철 리그에서 송원대를 2-0으로 꺾고 감격의 첫 승을 올렸다. 미국대학농구(NCAA) 캘리포니아 공대도 1976년부터 2007년까지 31년 동안 27연패도 아니고, 207연패를 당했다.

개인 기록으로는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의 투수 앤서니 영이 1992년 5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27연패를 당한 적이 있다. 타선이 지긋지긋하게 도와주지 않은 탓이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는 칩 벡이 1997~98년 46번 연속 컷오프되는 수모를 겪었다.

연패만 속이 타는 것은 아니다. 여자프로농구 안산 신한은행의 연승이 ‘23’에서 멈추던 지난 10월24일, 임달식 감독은 “오히려 잘됐다”며 홀가분해했다. 국내 남녀 프로농구를 통틀어 최다 연승을 하는 동안 위성우 코치는 경기 때마다 똑같은 넥타이를 맸다. 연승이 끊길까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연승 멈추자 “오히려 잘됐다”며 홀가분

남자프로농구 최다 연승 기록은 2004~2005 시즌 안양 SBS(현 KT&G)의 15연승이다. 당시 김동광 감독은 대체 외국 선수 단테 존스를 앞세워 시즌 막판 돌풍을 일으켰다. 김 감독도 냄새가 나고 꾀죄죄해질 때까지 붉은색 넥타이만 고집했다.

프로야구 SK 와이번스는 지난 시즌 막판 19연승의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중간에 무승부가 하나 끼어 있는 게 옥의 티다. 미국프로야구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1916년 26연승 기록이 있고, 미국프로농구에서는 LA 레이커스(1971~72 시즌)가 무려 33연승을 세운 적이 있다.

연승의 기쁨도, 연패의 슬픔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거리다.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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