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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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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임춘애’ 김하나에 거는 기대

10월 전국체전 육상 4관왕…
세계기록에 한참 못 미쳐도 차근차근 준비하면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때 기대해볼 만
등록 2009-11-11 12:06 수정 2020-05-03 04:25
지난 10월20~26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출전해 뛰고 있는 김하나 선수. 한겨레 이종찬 기자

지난 10월20~26일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출전해 뛰고 있는 김하나 선수. 한겨레 이종찬 기자

지난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09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김덕현 선수 등 19명의 선수를 출전시켰지만 단 한 명도 본선에 오르지 못하는 치욕을 당했다. 초라한 성적에 앞서 또 다른 걱정 소리가 들려왔다.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대구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홈에서 벌어지는 세계대회에서 한국 육상계가 큰 망신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한숨 소리였다.

여자 200m에서 23년 만에 한국 신기록

그러나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최근 육상계에 신데렐라가 나타났다. 바로 김하나(24·안동시청) 선수다. 김하나는 지난 10월20~26일 대전에서 열린 제90회 전국체육대회 여자 육상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4관왕에 올랐다. 2만 명에 가까운 출전 선수를 모두 제치고 최우수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김하나는 여자 육상 200m에서 23초69로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 박미선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세운 한국 기록 23초80을 23년 만에 0.11초 단축했다. 100m에서도 11초59로, 15년 전인 1994년 이영숙 선수가 제48회 전국육상선수권대회에서 세운 11초49에 0.1초 차이로 바짝 다가섰다. 400m 계주에서는 경북 대표로 출전해 45초33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서울 아시안게임 대표가 갖고 있던 45초59의 기존 한국 기록을 0.26초 단축했고, 1600m 계주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렇듯 전국체전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인 김하나를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20여 년 전 임춘애 선수가 떠오른다. 임춘애도 무명 선수였다가 전국체전에서 3관왕을 차지한 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86 아시안게임에서 임춘애는 800m에서는 1위를 차지한 인도의 이브라함 선수보다 1초나 뒤진 2위로 들어왔지만, 이브라힘 선수가 너무 빠르게 코스에 진입한 것이 밝혀져 금메달이 박탈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임춘애는 이어서 벌어진 1500m와 3천m에서도 중거리 강국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 선수들을 모두 물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해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올랐다.

한국은 당시 임춘애의 3관왕과 장재근(남자 200m), 김복주(남자 800m), 김종일(남자 멀리뛰기), 김희선(여자 높이뛰기) 등 7개의 금메달로 개최국의 체면을 살렸다.

비슷한 듯하지만 두 사람은 차이점도 적지 않다. ‘백조’라는 별명답게 김하나는 하얀 피부에 키 170cm, 몸무게 55kg의 뛰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다. 여고생이면 거의 모두 치르는 통과의례인 생리도 없었고 가슴도 깡마른데다 머리까지 짧아서 아시안게임 이후 성(性) 검사를 세 차례나 받는 곤욕을 치러야 했던 임춘애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사실 국내에서는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김하나가 갈 길은 아직 멀다. 2011 세계육상수권대회(8월27일~9월4일)는 불과 21개월 남짓 남았는데, 현재 김하나 선수의 기록으로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명함도 내밀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김하나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 차근차근 도약을 위한 준비도 세우고 있다. 김하나는 지금 같은 추세대로 나간다면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여자 100m와 200m 그리고 400m 계주에 출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선 100m는 세계선수권대회 때까지 남자 육상의 우사인 볼트 같은 기적을 일으킬 선수가 나오지 않는 한 미국의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1998년 사망)가 가진 10초49의 세계신기록이 깨지기는 어려울 것 같고, 10초 중·후반 즉 10초6~7 정도에서 우승자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8명이 겨루는 준결승 통과 기록은 11초대 초반, 16명이 오르는 준준결승은 11초3~4, 그리고 2라운드에는 11초4~5 정도가 통과 기록이 될 것 같다.

김하나는 우선 올겨울 열심히 동계훈련을 해서 내년 3월까지는 11초49의 한국 신기록을 깨트리는 것을 단기 목표로 하고 있고, 2011년 초까지 11초3~4 그리고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까지 자신의 기록을 조금 더 단축하는 것을 장기 목표로 정해놓고 있다. 만약 김하나의 목표대로 기록이 단축된다면, 100m에서 2라운드 통과는 물론 최대 준준결승까지 오를 수 있다.

근지구력이 좋은 김하나는 100m보다 200m가 더 긍정적이다. 역시나 2011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0m에서도 그리피스 조이너가 가진 21초34의 세계기록이 깨지기는 어렵겠지만, 21초6~7 정도에서 금·은메달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준결승 진출은 22초대 초반, 준준결승은 22초대 후반, 그리고 2라운드 진출은 23초대 초반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김하나는 2010년 3월에 23초대 중반, 2011년에 23초대 초반 또는 22초대 후반까지 목표로 하고 있어 준준결승 진출은 무난하고, 잘하면 준결승 진출까지도 가능하다.

김하나는 원래 멀리뛰기 선수였는데 5년 전 부상을 당한 이후 단거리로 전향했다. 순발력과 지구력을 겸비했고 정신력까지 뛰어나 육상계에서는 앞으로 2~3년 동안 꾸준히 자신의 기록을 단축해나갈 것으로 본다. 그만큼 안팎의 기대가 크다.

김하나는 현역 한국 남자 최고 스프린터인 임희남(25·광주시청) 선수와 육상계의 공인 커플이다. 두 사람은 2005년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훈련을 하면서 가까워졌고, 1년여 전 임희남의 프러포즈를 김하나가 받아들이면서 정식 교제를 시작했다.

앞으로 2~3년 꾸준히 기록 단축해나갈 듯

임희남은 지난 10월 대전에서 열린 전국체전 남자 100m에서 전덕형(대전체육회·10초48)에 밀려 은메달(10초65)에 머물렀지만, 10월30일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09 그랑프리 육상경기대회에서는 10초55로 1위를 기록해 11초65로 우승을 차지한 김하나와 ‘커플 동반 우승’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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