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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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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과 ‘감정 민주주의’

중요한 경기에서 실패했을 때 가차 없는 비난 대신 위로와 격려가 쏟아진 것은
국민 심성에 여유가 생긴 덕분
등록 2009-08-04 18:04 수정 2020-05-03 04:25

1978년 5월 발매된 ‘산울림’ 2집 앨범은, 그 표제곡인 가 무려 3분이 넘도록 강력한 단선율의 전주로 일관한다는 충격으로 인해 이미 오래전에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이 되었다. 그해 가을, 산울림은 3집 앨범을 곧바로 발매하게 되는데,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은 겨우 5곡. 둥그런 LP 뒷면에는 단 한 곡만 수록돼 있었다. 라는 노래로 무려 18분48초에 달하는 전무후무한 ‘대곡’이다. 19분에 가까운 이 노래는 서너 번 정도, 격렬하거나 따스하게, 화성이 바뀐다. 강렬과 록 비트에서 애상적인 발라드까지 넘나들면서, 이 대곡은 저 1970년대 후반의 헛헛한 풍경을 보여준다.

2009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박태환이 7월27일 오후(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포로 이탈리코 메인풀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200m 준결승 레이스를 마친 뒤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태환은 조 5위, 전체 16명 중에서는 13위에 그쳐 8명이 겨루는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사진 연합 최재구

2009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박태환이 7월27일 오후(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 포로 이탈리코 메인풀에서 열린 남자 자유형 200m 준결승 레이스를 마친 뒤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박태환은 조 5위, 전체 16명 중에서는 13위에 그쳐 8명이 겨루는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사진 연합 최재구

‘싱싱한 활어’가 나오기 힘들어져버린 시대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1975년 겨울, ‘대마초 파동’으로 적어도 대중문화의 기류는 ‘동토의 왕국’이 되고 말았는데, 어찌하여 이 충격의 실험들이 가능했을까? 나는 그것이 ‘단 하나의 적’과 비교적 순수했던 ‘자본의 시대’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그 무렵, 동토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잡혀가거나 도망치거나 숨죽이고 있거나 하면서 살았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함께 연주하고 노래했던 친구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거나 ‘연예 활동 정지’라는 잔인한 부고장을 받는 마당에 일부 살아남은 음악계 사람들 마음 역시 울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공백을 메우며 등장하는 혜성들이 있다면 아낌없이 지원하려는 순수한 열망이 없지 않았다. 이 억눌린 감정의 시대에는 음악가와 음반업자와 방송사 PD와 음악다방 DJ들 모두 아직은 때가 묻지 않았다. 산울림의 실험이 가능했던 것은 데뷔 이전에 이미 100여 곡의 자작곡을 완성했던 천재 김창완의 덕분이지만, 그 ‘순수했던 시절’의 풍경 또한 큰 조력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실험은 산업과 방송의 바깥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자본이 완전히 장악해버린 연예 흥행과 방송은 지난 시절의 록그룹 리더들까지도 ‘버라이어티’의 재주꾼으로 바꿔버린다. 지난 시절의 정치 권력은 통제를 했지만 오늘날의 자본 권력은 어린 소녀들에게 핫팬츠를 입히고 ‘후크송’(단순한 후렴구를 활용해 만든 노래)만 부르게 할 뿐이다. ‘싱싱한 활어’가 뛰어놀 수 있는 시대는 끝난 것이다.

싱싱한 활어! 곧 박태환 선수 얘기다. 자본과 계파의 협잡들 속에서 간신히 버텨온 이 활어는 그만 앞서가는 선수들이 흩뜨려놓은 물길을 간신히 헤엄쳐갈 수밖에 없었다. 잉글랜드 유학파로 현재 K리그 인천유나이티드 마케팅팀장을 맡고 있는 권성진씨는 우리의 축구 문화를 ‘아기 몸통에 어른 머리가 붙어 있는’ 양상이라고 비유하면서 “산업은 성숙하지 않았는데 대리인이 적정 수보다 많이 배출되고 활약하는 동시에 이 기능을 조절하고 관리할 만한 시스템이 아직 자리잡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과열경쟁과 부당거래가 빈번히 발생하고 그 와중에 좋은 선수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희생”되고 있다고 썼다. 비단 축구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박태환 선수가 쓰라리게 입증했다.

다만 한 가지, 이 비극 속에서도 섬세하게 들여다볼 만한 게 있다. 박태환 선수를 대하는 팬들의 반응이 그것이다. 박태환 기사에 붙는 댓글에 비난의 언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적다. 예전 같으면 ‘매국노’ 소리를 들어도 시원찮을 상황이지만, 그처럼 조잡한 댓글은 곧 이어지는 따스한 위로의 글과 사태의 전체를 보려는 냉철한 글들에 의해 묻혀버린다.

20세기의 현대사는 눈물의 역사였다. 상처 입고 패배한 사람들이 흩뿌린 눈물이 한반도의 지난 세기를 아로새겼다. ‘적자생존’의 잔혹한 게임만이 유일선의 방법론이 되어 긴 세월 동안 우리의 현대사를 지배했다. 그 시절, 마음은 강퍅했고 누군가의 실패를 너그럽게 감싸안아줄 심성의 여유가 부족했다. 게다가 ‘국위선양’이라는 핏빛 깃발이 나부꼈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 한반도는 패배해 슬피 우는 자에 대해 깊은 연민을 갖게 되었다. “그까짓 것, 한 번 질 수도 있지 뭐” 하는 위로와 격려는 집단적 국위선양의 스포츠 문화가 부드러운 정서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짐작건대 이 마음의 변화는, 앤서니 기든스가 말한 ‘감정 민주주의’의 발전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그는 에서 “민주주의는 하버마스가 정의한 공공 영역에만 한정될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민주주의’의 잠재력도 존재한다”고 썼거니와, 이제는 보수 언론이나 재벌들도 흔히 사용하는 ‘연대와 나눔’이라는 정서의 확산은 금세기 유보할 수 없는 민주주의 강령이 되었다.

박태환이라는 싱싱한 활어를 횟집 어항 속의 생기 잃은 물고기로 전락시켜버린 자본의 구조와 협잡은 틀림없이 문제 삼아야 한다. 그와 동시에 씁쓸한 표정으로 전광판을 바라보는 박태환을 향해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수많은 팬들의 ‘감정 민주주의’를 각별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본이 대세를 장악해버린 스포츠에서도 아직 ‘순수한 열망’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순수한 열망’은 살아 있다는 증거

어느 네티즌의 인상 깊은 댓글이 있었다. “박태환이 런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성을 간다, 성을 갈아.” 비난인가? 그건 아니다. 뒷부분은 이렇게 끝이 난다. “내 그냥, 박씨로 성을 간다.” 그런 심정으로, 싱싱한 활어가 좀더 합리적인 시스템 속에서 더 성장해, 이라크 출신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런던 아쿠아틱센터의 잔잔한 수면을 가장 앞서 흩뜨려버리는 선수가 되길 기원하자.

정윤수 스포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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