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취재했습니다_고 김영한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남긴 업무수첩은 드문 기록이다. 피아를 선명히 가르고 ‘적’에겐 공작과 응징으로 대응한‘ 박근혜식 유신통치’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3명의 기자는 지난 3주 동안 언론노조를 통해 입수한 업무수첩 복사본에 매달렸다. 우선 펜글씨로 적힌 내용을 일일이 한글문서 파일로 옮겨 정리했다. 그 내용을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시민단체 활동가와 언론학자, 법학자 등에게 자문했다.
그 과정에서 김 전 수석의 모친을 만나 보도 동의를 구했다. 김 전 수석과 함께 일했거나, 친분이 있었던 인사들과 접촉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도 되짚었다. 은 업무수첩의 주요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를 연재하는 한편, 원문 이미지 파일과 그 한글문서본을 독자에게 공개한다. 오독의 오류를 피하고 독자와 함께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시도다.
김영한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의 청와대 업무수첩은 2014년 6월14일 시작해서 2015년 1월9일에 끝난다. 총 210일간의 기록이다. 원본은 80쪽 분량이고, 글자로는 11만3400여 자에 이른다. 이 가운데 4천여 자는 한자로 쓰여 있다. 업무수첩은 양장 표지에 스프링으로 제본돼 있다. 각 면의 오른쪽 위에는 청와대 문양이 박혀 있다. 청와대 내부자들만 쓰는 수첩이다.
김영한 전 수석은 2014년 6월12일 민정수석에 내정됐고, 같은 달 23일 조윤선 정무수석, 윤두현 홍보수석, 안종범 경제수석, 송광용 교육문화수석 등과 함께 임명장을 받았다. 수첩의 기록이 시작된 2014년 6월14일은 정식 업무 시작 11일 전, 내정 이틀 뒤다. 날짜별로 요일을 따라 정리돼 있고,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까지 거의 빠지지 않고 작성됐다.
회의록 정리 상태는 작성자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반듯한 메모다. 전체적으로 개요식 정리가 돼 있고, 주요한 부분을 별(*)표 등으로 표기해 강조점을 두었다. 長(장), 政務(정무) 등을 동그라미로 표기해 발언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적어둔 것도 특징적이다. 한 법조인은 “전형적인 검사 스타일의 메모”라고 촌평했다.
“전형적인 검사의 메모”업무수첩에 적힌 내용은 그 자체가 박근혜 청와대의 국정 일기라고 해도 무방하다. 전방위적이다. ‘세월호 이후 국정 과제 정리’ ‘청문회 관련 언론 대응’ ‘민노총 동향 주시’ ‘국정철학 공유 기회’ 등으로 이슈를 정리해두었고, ‘정윤회 문건 파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법원 판결 개입’ ‘KBS 등 방송 통제’ ‘비판 언론 단속’ 등의 사항도 주요하게 등장한다.
이 밖에 시기별로 개각 등 주요 인선에 대한 구상과 검증, 領(령)이라고 표기된 VIP(대통령) 말씀 전달 사항, 주요 야권 정치인 동향 등이 기록돼 있다. 특히 왜 이런 일까지 청와대에서 논의됐을까 싶은 사안도 심심치 않게 적혀 있다. ‘보수단체 동원’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문화융성위원회’ 관련 사안도 몇 차례 등장한다.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수첩은 개인이 기록한 청와대 회의록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기록이다보니 흘려 쓰거나 압축적인 한자로 표기된 부분이 상당히 많다. 하루치 메모 분량이 많아지는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 경향이 심해진다. 수첩 내용을 시기적으로 보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법률 공방이 벌어질 무렵에 시작돼 정윤회 문건 파동까지의 기록이다.
이 시기는 박근혜 재임 기간 가운데서도 핵심적인 때다. 그 시기 민정수석의 역할이 얼마나 중차대한 것이었을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김영한 전 수석은 ‘정윤회 문건’에 대해 설명하라는 지시에 ‘항명’하며 권력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이 업무수첩은 청와대 핵심 권력과 불화했던 사정 책임자의 좌절과 비망의 기록이다.
세월호부터 정윤회까지김 전 수석은 검사 시절인 1994년부터 업무일지를 매해 작성해왔고, 그 업무일지들은 모두 자택에 있다. 청와대 업무수첩은 여러 업무일지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이 수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정점으로 치닫던 지난해 11월14일 TV조선의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김 전 수석의 어머니가 유품 정리 과정에서 보자기에 싸인 업무수첩을 발견했고, 이를 TV조선에 전달했다.
이후 여러 언론이 ‘비망록’이란 이름으로 김 전 수석 업무수첩의 주요 내용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국회의원들은 청문회장에서 수첩에 적힌 내용을 근거로 박근혜 정부 관계자들을 추궁했다. 이제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원본은 박영수 특별검사 사무실에 있다.
그럼에도 그의 업무수첩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은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적혀 있나. 각 문장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 여러 메모의 배경과 맥락은 무엇인가. 하여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는 무엇을 의논하고 어떻게 결정했나. 이런 질문을 독자의 눈높이에서 전체적이고 입체적으로, 깊이 있고 친절하게 정돈해야겠다고 은 판단했다.
우선 업무수첩 원본을 페이지별로 촬영한 이미지 파일 사본을 입수했다. 이후 20여 일 동안, 업무수첩 내용을 한글문서 파일로 일일이 옮겨 적었다. 원문에 적힌 한자의 뜻을 밝혀 한글로 옮기는 동시에 화살표 등 여러 표기도 최대한 그대로 옮겼다. 이후 법률가의 자문을 거치고, 김영한 전 수석의 노모 등 유족의 동의를 얻어,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전문을 독자에게 공개한다.
공개하는 전문은 업무수첩 원본을 각 장마다 사진으로 찍은 이미지 파일과 이를 옮겨 적은 한글문서로 구성돼 있다. 독자는 인터넷 홈페이지(h21.hani.co.kr)에서 펜글씨 원본 이미지 파일과 한글문서 사본을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
업무수첩 원본 및 사본에 대한 의견, 수정 사항, 제보 등은 funnybone@hani.co.kr(김완 기자)로 보내주시면 된다. 적극적 제보와 보완 사항을 토대로 업무수첩의 한글문서 사본을 계속 바로잡고 추적 취재할 예정이다.
적극적 제보·보완 기대업무수첩 전문 공개와 별개로 은 지난 3주에 걸쳐, 법학자·언론학자·시민단체 활동가 등과 함께 업무수첩 내용을 분석했다. 여러 언론이 그 ‘부분’을 떼어내 보도해왔다면, 은 그 전체를 맥락과 함께 여러 차례 연속 보도할 예정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김 전 수석의 노모는 “이미 수사를 하고 있는데, 그렇게 기사가 난들 그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기춘을 꼭 처벌해달라”고 당부했다. 비망록(備忘錄)은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 자신이 접한 사건이나 주요하게 관찰한 내용을 기억에서 망실되지 않도록 대비해 기록에 남기는 메모(memorandum)”다. 반드시 그 의미에 걸맞게 보도하겠다고 우리는 노모에게 약속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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