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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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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막아라! ‘청와대행 세월호’

김영한 업무수첩 속 세월호 참사 메모… 강압 통제의 결정판
등록 2017-01-27 06:34 수정 2020-05-02 19:28
쓰는 자 위에 푸는 자
이렇게 취재했습니다_고 김영한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남긴 업무 수첩은 드문 기록이다. 피아를 선명히 가르고 ‘적’에겐 공작과 응징으로 대응한‘ 박근혜식 유신통치’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3명의 기자는 지난 3주 동안 언론노조를 통해 입수한 업무수첩 복사본에 매달렸다. 우선 펜글씨로 적힌 내용을 일일이 한글문서 파일로 옮겨 정리했다. 그 내용을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시민단체 활동가와 언론학자, 법학자 등에게 자문했다.
그 과정에서 김 전 수석의 모친을 만나 보도 동의를 구했다. 김 전 수석과 함께 일했거나, 친분이 있었던 인사들과 접촉해 그가 어떤 인물인지도 되짚었다. 은 업무수첩의 주요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를 연재하는 한편, 원문 이미지 파일과 그 한글문서본을 독자에게 공개한다. 오독의 오류를 피하고 독자와 함께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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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다르다.’ 박근혜 청와대에 ‘세월호 참사’는 무엇이었을까. 그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록이 여기 있다. 2014년 6월12일부터 2015년 1월10일까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지낸 고 김영한 대구대 석좌교수의 업무수첩(비망록)이다.

그는 취임 이틀 뒤(2014년 6월14일)부터 사표 수리 하루 전(2015년 1월9일)까지 모두 210일간 메모를 남겼다. 단 한 문장이라도 메모를 남긴 날은 그 가운데 194일이다. 모두 ‘업무’에 관한 기록이다. 수첩에 붙여놓은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이나 검찰 수사 상황 출력물은 업무수첩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 전 수석이 민정수석직을 맡은 시기는 세월호 참사(2014년 4월16일) 두 달 뒤부터 의 ‘정윤회 문건’ 첫 보도(2014년 11월28일) 두 달 뒤까지다. 수첩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메모가 가득하다. 메모를 남긴 총 194일 가운데 최소 97일 이상 세월호 참사 관련 메모가 있다.

세월호 참사 책임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은 2014년 7월8일치 메모에 확연히 드러난다. 그 내용은 ‘선장·선원의 배반적 유기 행위와 해경의 초동 구조작전 실패, 그리고 유병언 일당 탐욕(배 수선·과적) 청와대 보고, 그 과정의 혼선 ×(없음). 정부가 변명 ×(하지 말고) 실태는 똑바로 파악’(그림1)이다. 유병언 일가를 내세워 청와대·정부가 참사 책임 면죄부를 얻으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 메모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長)의 지시를 옮겨 적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은 국회 운영위원회(7월7일)에서 참사 당일 청와대 보고 수발에 관한 질의가 쏟아진 다음날이다. 국회 ‘세월호 침몰 진상 규명 국정조사 특위’ 기관보고(7월10일)를 이틀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당시 청와대의 세월호 참사 대응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거악’으로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반면 청와대와 정부의 책임을 묻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묻어버린다. 참사 희생자 유가족의 목소리도 묻었다.

특히 진실 규명의 칼날이 청와대·정부로 향할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고 입법·감사·수사를 통제·관리한다.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철저히 비밀에 부친 건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 주요 내용을 정리·분석하면 다섯 대목으로 나뉜다.

① 유병언을 잡아라

검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은신했다고 추정한 전남 순천의 한 별장. 연합뉴스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검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은신했다고 추정한 전남 순천의 한 별장. 연합뉴스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등장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관련 메모는 8개월 동안 최소 26건 이상이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원인 중 하나인 과적·선체 증개축과 연계해 유병언 일가를 주요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전신 세모그룹 유 전 회장은 정부와 언론에 의해 ‘탐욕’과 ‘적폐’의 상징이 됐다. 청와대는 그런 유병언 일가 관련 수사 상황을 일일이 챙겼다.

유 전 회장 관련 보도는 참사 다음날인 2014년 4월17일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며칠 뒤, 검찰은 유병언 일가를 출국 금지하고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혐의는 재산 은닉과 탈세, 횡령, 재산 국외 유출 등이었다. 급기야 검경은 5월22일 유병언·유대균 부자 공개수배에 나섰다. 현상금은 각각 5억원, 1억원까지 뛰었다.

정부도 나섰다. 안전행정부는 6월13일 유병언 일가 검거를 위한 전국 임시 반상회를 추진했다. 전국적인 ‘유병언 잡기’를 기획한 것이다. 6월19일 유 전 회장 수사 내부 문건이 유 전 회장이 몸담은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에 흘러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 달 전 경기도 안성 기독교복음침례회 본산(금수원) 압수수색·체포 영장 집행 때 검찰 내부 문건이 구원파 손에 들어갔다는 보도였다.

하루 뒤(6월20일) 김 전 수석 업무수첩에는 ‘국민 신뢰 실추’ ‘정보 누설·종이’ ‘징계’ ‘영장집행 과정 - 범죄자와 타협 ×(없음)’(그림2)이란 메모가 적혀 있다. 유 전 회장 일가에 대한 비타협적이고 철저한 수사를 강조한 내용으로 읽힌다. ‘長’(장)이란 한자가 병기된 것으로 보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지시한 내용을 받아 적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얼마 뒤 유 전 회장의 주검이 발견됐다. 경찰이 전남 순천에 있는 한 매실밭에서 발견한 무연고 변사체가 유 전 회장의 주검으로 확인됐다는 것이었다. 경찰 발표 날짜는 7월21일이었다. ‘거악’이 허망하게 주검으로 발견됐지만 청와대는 그 뒤에도 유병언 일가 재산 추적 상황을 일일이 챙긴 것으로 보인다.

10월7일치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김혜경 신병 일단 구속-협상-선처의 process’(그림3)라는 메모가 등장한다. 이 또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라는 표기가 돼 있다. 김혜경 한국제약 대표는 유 전 회장의 ‘금고지기’로 통했다. 불과 넉 달 전, ‘범죄자와 타협 ×(없음)’이라고 지시했던 김 전 비서실장이 ‘거악’의 ‘금고지기’를 잡아들여 선처 협상을 벌이겠다는 검찰 수사 기획을 지시한 것이다.

그 목적은 유병언 일가의 숨겨놓은 재산을 추적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유병언 일가 은닉재산’을 찾아내면 청와대·정부는 유병언 일가의 ‘탐욕’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부·수사기관의 성과를 알릴 기회도 얻게 될 것이었다. 검찰은 이날 김혜경 대표의 신병을 미국 당국으로부터 인계받은 터였다.

② 유가족을 분리하라

2014년 8월21일 단식 39일차에 접어든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씨. 박승화 기자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4년 8월21일 단식 39일차에 접어든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씨. 박승화 기자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전 수석 업무수첩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은 ‘과도하거나 무리한’ 요구(2014년 6월16일 메모)를 하는 집단으로 묘사됐다. 청와대는 희생자 유가족들이 주장한 ‘성역 없는 진상 규명’과 청와대·정부에 부담을 주는 ‘실종자 인양’에 부정적 입장이었다.

김 전 수석 업무수첩 8월22일치를 보면, ‘세월호 유가족(학생 유가족) 외 기타 유가족 요구는 온건 합리적. 이들 입장 반영되도록 하여 중화.’(그림4)라는 메모가 눈에 띈다. 이 또한 김기춘 비서실장 지시라고 표기돼 있다.

당시 세월호 참사 유가족 단체는 크게 둘로 나뉘어 있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가족대책위)와 ‘세월호 참사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대책위원회’(일반인 유가족 대책위)다. 여야가 8월19일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 내용에 대해 두 단체는 입장이 달랐다. 가족대책위는 ‘진상조사위원회’(이후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두지 않기로 한 합의안을 반대했다.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는 여야 합의안에 찬성하며 조속한 제정을 요구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로 보이는 8월22일치 메모 내용은 정부·청와대 입장에 부합하는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 입장을 반영하라는 취지로 읽힌다. 철저한 진상 규명의 길을 모색하는 대신 청와대·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는 길을 찾는 데 골몰한 것이다.

청와대는 다음달엔 김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 처리에 집착했다. 김현 의원과 가족대책위 간부들은 9월17일 대리기사와 폭행 시비에 휘말렸다. 이날 김 전 수석 업무수첩엔 ‘김현 의원, 폭행건-세월호 유족 선동 조종’(그림5)이란 메모가 적혔다. 이어 9월19~21일 이 사건과 관련해 ‘남부지검 고발-엄정’ ‘철저 지휘’ ‘기민하게 일하도록’(그림6)이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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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야당 의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의 ‘폭행 의혹 사건’ 수사를 독려하고 이슈화를 유발한 정황이 업무수첩에 기록된 것이다. 다음달(10월) 국회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에 여당은 김현 의원의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위원직 사퇴를 요구했다. ‘자유청년연합’이란 단체는 9월19일 김현 의원과 가족대책위 간부들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실종자 인양’에 부정적 입장이었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10월27일치에는 ‘세월호 인양-시신 인양 ×. 정부 책임, 부담’(그림7)이란 메모가 나온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지시한 내용이라는 표기도 있다.

당시 세월호 참사 실종자는 10명이었다. 메모 내용을 풀이하면, 정부 책임론을 일으키고 부담을 지우는 ‘실종자 인양’은 안 된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날은 세월호 실종자 가족 대책위원회 9가족(실종자 10명)이 투표를 통해 선체 인양 반대와 선체 수색 지속을 결정한 날이다. 마침 다음날인 10월28일, 102일 만에 세월호 참사 실종자가 발견됐다.

③ ‘세월호 특별법’을 막아라

2014년 7월 여야는 ‘세월호 특별법’ 합의에 실패했다. 쟁점은 ‘수사권과 기소권’이었다. 참사 유가족들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위원회는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위해 수사권·기소권이 있는 진상조사위를 요구했다.

청와대는 이 요구에 귀를 닫았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7월20일치를 보면 ‘검찰 세월호 사건 관계자 구속, 입건, 철저 수사 중인데도 유족은 수사권 부여 주장’ ‘경과, 방향, 의지 등을 소상히 알려서 국민 납득 요망’이라는 메모가 있다(그림8). 성역 없는 진실 규명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검찰 수사 ‘홍보’로 무마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청와대가 보기에 ‘세월호 특별법’은 ‘국난 초래’를 가져올 만한 ‘위험한’ 법이었다(그림9). 청와대는 참사 유가족과 야당이 요구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에 두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을 기필코 막아야 할 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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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7월14일 국회 앞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영오씨는 46일째 단식을 이어가다 8월28일 중단했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8월23일치에는 ‘자살방조죄 단식(생명위해 행위) 단식은 만류해야지 부추길 일 ×. 국민적 비난이 가해지도록 언론 지도. △각△지’(그림10)란 메모가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라는 표기가 있다. 유가족 김씨의 단식에 비난이 쏟아지도록 ‘언론을 지도’하라는 것이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8월29일치에는 국가정보원 직원이 김영오씨를 사찰한 구체적 경위(그림11)가 빼곡히 적혀 있다. 국정원 직원이 김씨가 입원한 병원에 김씨의 건강 상태를 묻고 김씨의 고향 전북 정읍 면사무소에 김씨의 가족관계와 학교 등을 물었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당시 국정원은 김영오씨 사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청와대는 국정원의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 대한 불법 사찰 정황을 직접 확인하고도 어떤 공개적인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는 유가족들의 ‘무리한’ 요구를 무마하고 여당 입장대로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는 데만 골몰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대로 됐다.

여야는 8월7일 세월호 특별법에 전격 합의했다. 야당은 두 차례 양보했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두는 대신 진상조사위가 특별검사를 추천하는 방안으로 후퇴했다가, 그조차 양보했다. 특별검사 후보 전원을 여야 동의 아래 선정하기로 선회한 것이다.

청와대는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기도 전에 특검추천위에 추천할 변호사들을 관리하고, 여당 성향의 특검 후보를 미리 물색하도록 지시했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8월4일치에는 ‘상설특검 특검 추천위(7인-여야 4인)-여당 15-20년 검사 출신자 중 적임자 리스트 작성 후 유사시 협조-평소 준비토록 할 것’(그림12)이란 메모가 적혀 있다. 8월8일치에는 ‘건전한 특검 임명 준비토록. pool. 평소에 변호사 리스트. 회동 추진. 위원회 투입’(그림13)이란 메모가 있다. 그 옆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지시라는 표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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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특별법은 11월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참사 205일 만이었다. 청와대는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관리에도 나섰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11월28일치에는 ‘①검찰 수사 ②세월호 진상 조사위 17명-부위원장 겸 사무총장, (정치지망생 好) *세계일보 공격 방안 *②석동현 ①조대환’(그림14)이란 메모가 있다. 청와대가 여당이 추천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조대환·석동현 변호사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지망생(이면) 좋다(好)’는 표현으로 미뤄 청와대가 관리하기 좋은 인사를 뽑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힌다. 조대환 변호사는 2014년 12월 새누리당 추천으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총장에 내정됐다.

④ 감사원·검찰을 관리하라

감사원이 2014년 7월8일 세월호 침몰 사고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감사원이 2014년 7월8일 세월호 침몰 사고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 세월호 참사 실체 규명에 나선 국가기관은 감사원과 검찰이다. 감사원은 2014년 5~6월 감사를 진행해 10월10일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참사 직후 수사에 착수해 10월6일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헌법상 독립기관인 감사원과, 검찰의 감사·수사 결과 발표에도 개입했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9월1일치에는 ‘감사원장 보고-Off The Record로 할 것’(그림15)이란 메모가 있다. 9월16일치에는 ‘세월호 감사원 감사 결과-전원 구조 발표→감사원 발표 시기’(그림16)란 메모가 등장한다. 청와대가 감사원 발표 내용과 시기를 사전에 조율한 것이다.

감사 최종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감사원 조사보고서 초안을 청와대가 미리 받아본 정황도 나타났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10월2일치에는 ‘초동-해임 등 48명. 안전점검 10명 안전운항-16명. 재난 대응체계 20 총 94명(27명) 해경, 청장, 차장, 서해청장, 경비국장, 인천항만 청장 2명, 해양 실장, 국토부 물류기획관’(그림17)이란 메모가 있다. 감사원 감사 최종 결과 발표 8일 전에 적힌 메모다.

메모에 적힌 징계자 분류는 감사원의 감사 분류인 ‘초동 대응’ ‘선박 도입·검사’ ‘안전운항 관리감독’ ‘재난대응 체계’와 유사하다. 감사원은 앞서 7월8일 중간결과 발표를 했는데, 그때는 징계요구자 현황을 언급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따로 감사원에서 결과보고서 초안을 받아 봤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감사원 감사 최종 결과에선 징계요구자가 총 50명으로, 메모에 나온 규모(94명)보다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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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감사원 감사 최종 결과 발표문을 미리 받아 수정·보완을 요청한 흔적도 나타났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10월8일치에는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미리 받아 검토, comment’(그림18)란 메모가 있다. 이틀 뒤인 10월10일 발표 예정이던 감사원 최종 결과 발표문을 미리 받아 수정·보완을 요청할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검찰도 예외는 아니었다. 검찰의 ‘세월호 침몰사고 수사 결과’ 발표를 사흘 앞둔 10월3일, 청와대가 검찰 수사 발표 자료 문구를 문제 삼으려 한 흔적도 나타났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10월3일치에는 ‘발표문(10/6)-초동대응 미숙(정부) 용어.→구체적 지적’(그림19)이란 메모가 있다. 검찰 수사 결과 발표문을 미리 받아 본 뒤 ‘정부의 잘못과 책임’을 표현한 구절을 문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이후에도 청와대가 감사원·검찰 조사·수사 결과 발표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도록 주문한 정황도 나온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10월13일치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 지시라는 표기와 함께 ‘수·감·조사 결과 발표시 사전 내용 파악하여 정무적 판단, 표현 등 조율토록 할 것→유념, 검찰, 감사원’(그림20)이란 메모가 있다.

⑤ ‘그분의 7시간’을 보위하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2016년 11월16일 청와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구속 수사와 ‘세월호 7시간’ 행적 소명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2016년 11월16일 청와대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 구속 수사와 ‘세월호 7시간’ 행적 소명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당시 청와대는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소명하라는 국회의 요구에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유가족들의 ‘수사권·기소권 있는 진상조사위’ 설치 요구와 청와대·정부 책임론 부상에 대해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김 전 수석 업무수첩 7월15일치에는 대통령의 행적을 비밀로 분류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준비한 자료(그림21)가 붙어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 비공개 지침을 내렸다. 7월18일치 메모에는 ‘4/16 동선, 위치 말씀-답변서 작성-문언 국가원수, 경호△경, 기침 취침 집무, 경내 계신 곳이 집무 장소 경호상 알지도 알려고도 않는다. 자료 제출 불가’(그림22)란 메모가 있다.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에 대한 함구령을 내린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국회 운영위원회(7월7일)와 국회 ‘세월호침몰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기관보고(7월10일)에서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에 대한 추궁을 받았다. 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 8월9일치에는 ‘국가원수의 경호 안전상 대통령의 동선을 공개할 수 없음. 사생활, 국가 안보 운운은 부적절’(그림23)이란 메모가 등장한다. 박 대통령의 참사 당일 행적에 쏠리는 의혹에 대해 지속적으로 함구토록 내부 방침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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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수석의 업무수첩은 세월호 참사 관련 메모(6월14일)로 시작해 ‘정윤회 문건’ 관련 메모(1월9일)로 끝을 맺는다. 김 전 수석은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국회 운영위에 참석하라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그의 사표는 다음날(1월10일) 수리됐다.

이틀 뒤인 1월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담화에서 ‘정윤회 문건’ 사건에 대해 “나라를 위해 헌신과 봉사를 해야 할 위치에 있는 공직자들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 기강을 무너뜨린 일은 어떤 말로도 용서할 수 없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비선 실세’ 의혹 사건은 그렇게 ‘문건 유출’ 사건이 됐다. 세월호 참사 책임자가 정부가 아니라 ‘유병언’이 된 것처럼.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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