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당시 작성된 한겨레21 제310호 표지이야기 갈무리.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퐁니 민간인 학살 국가배상소송 과정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수년간 참전군인을 접촉했다. 그 결과 그들의 진술서가 다수 제출됐다. 이번 화의 ‘날짜’는 퐁니 학살 직후 베트남에서 이 학살을 조사했던 해병대 수사요원 성백우가 피고 대한민국을 위해 진술서를 작성한 2024년 3월19일이다.
퐁니 학살 국가배상소송을 진행하면서 예상과 가장 달랐던 부분은, 피고 대한민국이 단 한 명의 참전군인도 증인으로 신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못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소송이 시작되면서부터 베트남전 참전군인 단체 누리집에는 ‘증언자를 찾는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피고 대한민국도 변론 과정에서 ‘참전군인들을 접촉해 증인으로 나와주길 설득하고 있다’며 재판부에 시간을 더 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다.
퐁니 학살은 많은 증거가 축적된 사건이다. 다수의 참전군인이 피고 대한민국 쪽에 서서 이를 반박하지 않으면 학살이 부인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국가를 위해, 나라를 위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해달라고 사활을 걸고 매달렸을 것이다. 고령의 참전군인에게 정부 명함, 국방부 명함을 내미는 이들의 설득은 분명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설득’은 실패했다. 나는 이 재판에서 단 한 명의 참전군인도 피고 대한민국의 증인이 되지 않은 것이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적 모습이라 말하고 싶다. 1968년 대한민국은 젊은이들에게 학살을 명령할 수 있었지만, 2020년대 대한민국은 노병들에게 거짓말을 명령할 수 없었다. 퐁니 학살이 사법부에서 인정될 수 있었던 것에는, 참전군인들의 이러한 소극적인 ‘저항’도 중요한 구실을 했다.
대신 피고 대한민국은 참전군인 다수의 진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증인으로서 법정에 직접 출석해 위증할 경우 처벌받겠다는 선서를 하며 판사 앞에서 진술하는 것과, 다른 이가 대신 작성하고 본인은 서명만 한 것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는 진술서 사이에 증거 가치 차이는 확연하다. 심지어 그렇게 제출된 진술서에는 ‘학살이 없었다’가 아니라 ‘본인은 알지 못한다’ 정도의 내용이 전부였다. 압박과 고뇌 속, 그들은 최소한 적극적인 거짓말은 하지 않겠다 결정했던 것이다. ‘학살이 있었다’에 부합하는 수많은 증거를 ‘나는 알지 못한다’ 수위의 진술로 깰 수는 없다.
오직 하나의 진술서가 문제적이었다. 퐁니 사건 직후 이를 베트남에서 수사한 해병대 수사요원 성백우의 진술서였다. 그는 2024년 증거로 제출된 진술서에서 ‘2000년 한겨레21에 실린 본인의 인터뷰는 나와 관계없는 기자의 추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쪽 대리인인 나는 2000년 성백우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만나 취재 경위를 들은 바 있다. 1999년부터 한겨레21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관련 보도가 이어졌고, 특히 2000년에는 퐁니 학살을 인정한 참전군인 인터뷰 기사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때 성백우가 한겨레신문사로 먼저 전화해 퐁니 학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퐁니 학살 직후 상부에서 ‘퐁니 학살은 베트콩이 한 것으로 결론을 맞춰서 진술을 받아와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 부당성을 알면서도 따랐다고 말했다. 그의 고백은 2000년 6월 “청룡여단서 양민학살 조작은폐: 전 해병 헌병대 수사계장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왜 이렇게 다 말씀해주시는 겁니까?”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는 물었고, 성백우가 답변했다. “아들이 지금 많이 아픈데, 그게 베트남에서 제가 잘못한 일 때문인 거 같아서요.” 부당한 명령을 따른 성백우는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살았다. 자신과 같이 해병대 장교의 길을 걸었던 아들이 젊은 나이에 큰 병에 걸리자, 본인의 과오 때문인가 절규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진상을 밝히겠다고 용기 있게 대처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죄책감이 든다”며 한스러워했다.
한 사람의 상반되는 두 진술, 그 뒤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성백우의 이 인터뷰 기사는 퐁니 학살 1심 판결에서 피해자가 승소하는 데 결정적 증거로 쓰였다. 피고 대한민국으로서는 어떻게든 이 기사를 흔들어야 했기에 2024년 성백우 진술서가 등장한다. 허위 조사를 강요한 국가가 사과하긴커녕 다시 한번 양심을 배반하라 요구했다. 피해자 쪽은 ①성백우가 먼저 연락해와 인터뷰가 이뤄졌고, 사진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으며, ②기사가 나간 이후 어떤 항의도 없었음을 강조하며 2024년 진술서는 믿을 수 없다고 변론했다.
재판부는 분노했다. 2025년 1월 선고된 퐁니 학살 항소심 판결문에는 ‘2024년 진술서를 믿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아가, 피고 대한민국이 고의적으로 허위 진술서를 제출했으며 이는 소송상 신의를 어기고 “진상을 은폐하는 행위”를 한 것이라는 질타가 가득했다. 1968년 베트남에서의 은폐가 2024년 한국 법정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는 죽비 같은 지적이었다.
해병대 소령이던 성백우의 아들은 2000년을 넘기지 못하고 순직했다. 아들 때문에 과거를 고백하기로 결심한 성백우는 2024년 진술서에도 아들이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는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썼다. 그는 진술서 마지막에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별도의 사실 확인은 하지 않겠다’고 기재했다. 거짓을 알아차려달라는 신호였다. 재판부는 “진술서의 증거가치를 의심하게 하는 문구를 스스로 추가”했다며 이 신호에 응답했다.
이 소송은 과거의 학살뿐만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베트남전 학살 자체를 넘어 이 소송에서 가해국이 무엇을 했는지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마치 윤석열 일당의 2024년 12월 계엄·내란처럼, 이 재판 속에서도 국가는 거짓을 강요했고 폭력을 정당화했지만, 군인을 포함한 시민도 재판부도 그 편에 서길 거부했다. 이 재판이 끝나면, 정부의 책임 있는 누군가가 학살 피해자뿐만 아니라 성백우씨에게도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 부당한 명령과 고통스러운 복종은 계속되고 있다.
임재성 변호사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가해국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최초의 소송에서 피해자를 대리하며 마주한 순간들, 그 법정 안팎의 이야기를 ‘열두 번의 날짜’를 통해 소개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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