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대한민국을 법정에 세운 소송, 시작은 진짜 재판이 아니었다

피해자와 가해국 시민이 연대한 모의 법정,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소송의 마중물 되다
등록 2025-12-25 20:48 수정 2025-12-31 13:38
2018년 4월22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시민평화법정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이자 동명이인인 두 응우옌티탄(왼쪽 둘째와 넷째)이 승소 판결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임재성 제공

2018년 4월22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시민평화법정에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이자 동명이인인 두 응우옌티탄(왼쪽 둘째와 넷째)이 승소 판결을 받고 기뻐하고 있다. 임재성 제공


본 연재 제목은 ‘학살을 듣는 법정’이다. 2020년 시작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한국 법정에서 진행하는 싸움을 다루고 있다. 베트남인이 베트남전 참전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전세계에서 이 소송이 유일하다. 예외적 소송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번 회의 ‘날짜’는 재판 운동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시민평화법정’ 마지막 날인 2018년 4월22일이다.

법정에 갇히지 않기 위해 만든 법정

‘학살을 듣는 법정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①1999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 공론화 이후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이어진 민간교류 ②민주화 이후 과거사 정리의 경험을 축적해온 한국 쪽 역량 ③2015년 베트남 피해자의 최초 방한 이후 다시 본격화한 운동의 흐름 ④오랜 민간교류 과정에서 베트남 피해자 쪽이 한국 활동가들에게 보내준 신뢰와 용기. ①과 ②가 큰 배경이라면, ③과 ④는 직접적 이유다.

2015년 학살 피해자들이 최초로 방한했다. 공론화 이후 16년, 시기적으로는 너무 늦었지만 큰 파장을 만들었다. 두 피해자는 전국을 다니며 자신의 고통과 경험을 증언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선생님이 수요집회에 참석한 학살 피해자들에게 “여러분도 베트남에 있는 한국대사관 앞에 가서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데모하세요. 저도 돕겠습니다”라며 연대의 마음을 전했다. ‘사건’이었다.

나를 포함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은 이 사건을 접하며 머리를 맞은 듯했다. ‘2000년대 떠들썩했던 이 일이 십수 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구나, 제주4·3, 한국전쟁, 고문·조작과 의문사 등 여러 문제가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건 그대로였구나’ 절감했다. 마침 기존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의 역량은 ‘한베평화재단’이라는 한국 시민단체로 집적됐다. 오랜 활동을 이어오던 이들과 새로운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 그리고 한국에서 목소리를 직접 전하고자 용기를 낸 피해자들이 모일 수 있었다.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새롭게 운동에 참여한 변호사들은 본인의 ‘주종목’인 소송을 검토했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뤄진 수많은 과거사 소송으로 확인된 한계점도 알고 있었다. 소송은 운동의 유력한 수단이지만 거기에만 갇히면 운동이 쪼그라든다. ‘시민평화법정' 기획은 그 과정에서 등장했다. 한국 사회의 여론을 환기하는 운동이자, 학살에 대한 구체적 책임을 묻는 운동으로서의 법정. 시민평화법정은 ‘진실을 확인하는 도구’이자 동시에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운동으로 기획됐다.

시민평화법정에 모인 수천 명의 양심

시민평화법정의 본격적인 준비는 2017년 여름부터였다. 현실적인 역량상 수많은 학살 사건 중 퐁니·하미 마을 학살에 집중하기로 했다. 준비팀 30여 명이 모였고 네 방향으로 움직였다. ①법정을 세우기 위해 돈과 사람을 모았고 ②현지 조사를 포함해 법정에서 쓸 수 있는 수준의 증거를 확보했으며 ③소장을 중심으로 법정에서 쓸 법률서면을 작성했고 ④원고로 참석하는 피해자들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안전하게 모시고 오기 위한 준비를 진행했다.

50여 단체, 시민 1천여 명이 준비위원으로 함께했다. 예산 5천만원도 어렵지 않게 확보했다. 두 차례의 현지 조사를 통해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있는 수준의 피해자 증언을 확보했다. 퐁니 학살의 경우 2000년 한겨레21 취재 이후 17년 만에 새로운 참전군인의 학살 증언도 입수할 수 있었다.

시민평화법정은 민사소송 형태로 피해자가 원고, 파병으로 인해 발생한 전쟁범죄의 궁극적 책임을 져야 하는 대한민국이 피고가 되는 것으로 구성했다. 두 학살 사건의 원고로, 동명이인인 퐁니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과 하미 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이 결심해줬다. 2025년 지금에야 두 명 모두 운동을 대표하는 ‘활동가’이지만 당시에는 한국 방문 자체에 큰 두려움이 있을 만큼 그분들도 낯설고 조심스러워했다.

당시 나는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이었다. 2018년 3월 한겨레21에 ‘‘연대의 법정’으로 오세요’라는 홍보글을 썼는데, 옮겨보면 이렇다. “우리는 이 법정을 ‘연대의 법정’이라 부르고 싶다. 피해자들의 용기와 가해국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무거운 마음이 만나는 법정. 시민평화법정은 2018년 4월20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다. 법정에 많은 분이 오시길 바란다. A의 옆에 서 있어주시길 바란다. 그것이 우리의 연대다.”

홍보글에 ‘A’라고 가명을 썼던 이유는 두 응우옌티탄의 입국에 혹시나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걱정에서였다. 그만큼 처음이었고, 걱정했다. 기우였다. 두 피해자와 그들을 돕는 세 사람, 모두 다섯 명의 베트남인이 무사히 한국에 왔고 시민평화법정을 통해 수천 명을 만났다.

‘박수’가 가장 좋았다는 두 응우옌티탄
2018년 4월22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시민평화법정에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연대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임재성 제공

2018년 4월22일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시민평화법정에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연대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임재성 제공


“아주 먼 길을 건너와서 오늘 이 자리에서 옛날에 제가 목격했던 진실을 말하려고 합니다.” 법정을 가득 메운 사람들 앞에서 두 응우옌티탄은 말했고, 호소했고, 통곡했다. ‘당신들이 군인을 봤어도 한국 군인은 아닐 수도 있는 거 아니냐’라는 날 선 질문에도 차분히 답변했다. 법정의 사람들은 함께 울었고, 큰 박수를 보냈다.

김영란 전 대법관, 양현아 당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석태 변호사(이후 헌법재판관 임명) 3명의 재판부는 심리 끝에 학살은 인정되고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도 인정된다 판결했다. 배상하고, 조사하고, 기억하라 판결했다. 법률 문장에 조금 어리둥절하던 두 응우옌티탄에게 법정에서 그들 옆에 있던 내가 다가가 알려드렸다. “우리가 이겼어요!” 두 사람은 번쩍 손을 들었다.

돌이켜보면 이 순간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소송을 준비하고, 시작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시민평화법정의 성공, 법정을 가득 채운 연대의 감정이었다. 피해자들에게 시민평화법정 중 무엇이 가장 좋았냐고 여쭈었을 때 ‘박수’라고 하셨다. 자신들의 말에 보내주는 박수가 참 따뜻하고 고마웠다고 하셨다. 그 경험을 나눈 주체들은 결심했다. 지난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차가운 절차를, 패소할 수도 있겠지만 시작해보자. 함께 손잡고 현실의 법정으로 가보자.

 

임재성 변호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