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6월21일 베트남전 참전군인 김영만씨가 서울 영등포구 사랑의힘 강당에서 베트남 퐁니·하미 학살 피해자인 두 응우옌티탄(동명이인), 임재성 변호사를 만나 전쟁 트라우마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전쟁에 참여한 국가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베트남전쟁 시기 30만 명도 넘는 한국군을 전장으로 떠민 대한민국의 책임은 무엇인가? 최근 국회에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베트남전 파병 군인에게 발생한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는 내용을 담은 특별법이 발의됐다. 이번 회의 ‘날짜’는 법정이 아닌 국회의 날짜, 즉 이 법률안이 발의된 2025년 10월1일이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 운동에 참여한 주체들은 뜻있는 국회의원들과 함께 2020년부터 제20대, 제21대, 제22대 국회 때마다 진실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아직 법률이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연속적인 발의 자체, 그리고 12명에서 25명, 30명으로 법안 발의에 참여한 국회의원 수가 늘어가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역사다. 비록 일부지만 가해국 대한민국의 헌법기관 국회의원들도 반성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제20대 국회에서는 진보정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법안을 발의했지만, 참전군인단체의 쏟아지는 비난 속에 기자회견은커녕 보도자료도 내지 못했다. 제21대 국회에서는 한 발 더 진전하기 위해 대표 발의를 약속한 국회의원과 잇따라 국회 토론회를 열며 여론을 형성하려 했지만, 여러 압박 속에 해당 의원은 발의 자체를 포기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비례의원으로 다음 선거에 부담이 없었던 강민정 전 의원이 대표 발의를 맡아줬고, 당시 민주당 대표이던 이재명 대통령까지 특별법 발의에 참여했다.
법률안의 주된 내용은 한국 정부 내 독립적 조사기구를 구성해 베트남전쟁 시기 파월 한국군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학살 등 중대한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제주 4·3과 광주 5·18 등 과거 국가폭력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익숙하게 진행해오던 절차를 이제 베트남전쟁에도 적용하자는 상식적 내용이다.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3년 동안 ‘베트남전쟁 진실위원회’(위원회)가 운용되면서 피해자 등 사건 관계자들의 진실규명 신청을 받고, 개별 사건에 관한 판단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조처,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평화와 유대를 증진할 방안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작성하게 될 것이다.
제20대와 제21대, 제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 모두 앞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제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률안에는 또 다른 축이 보태어졌다. 파병 군인들이 행한 범죄(비전투원 공격)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그들에게 발생한 인권침해 문제(전쟁후유증)를 조사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베트남전쟁은 경제발전에 큰 동력이 됐다’ ‘실전 경험으로 국방과 안보의 수준을 높였다’ 따위의 문장이 가리고 있던 책임이 이 법률안을 통해 비로소 드러날 수 있게 됐다. 태극기를 단 젊은이 수십만 명을 베트남에 보내 죽고 다치고 트라우마를 겪게 한 책임. 그들이 공격해서는 안 될 사람들을 공격하고 죽게 한 책임.
특별법이 파병 군인 인권침해 문제 중 조사 대상으로 삼은 두 가지 사건이 있다. ①파병 군인이 대한민국 공권력에 의해 불법적으로 사망·상해·실종된 사건 ②파병 군인이 베트남전쟁 시기부터 현재까지 공권력의 작위 또는 부작위(국가보호의무 불이행)로 인해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자살·자해·정신질환 또는 후유장애 등이 발생한 사건이다. 전자는 과거사 또는 국가폭력 문제의 전형으로, 기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또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등에 신청 가능한 사건이기도 하다.
반면 후자의 경우 최초이자 매우 대담한 도전을 담은 내용이다. 특히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되는 ‘국가보호의무’를 명기했다는 점이 그러하다. 위원회는 해당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판단을 해야 한다. ①베트남전 파병 군인, 즉 국외 전장에 직접 동원한 군인에 대해 국가의 보호 의무는 무엇인지(어디까지인지) ②전쟁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파병 군인에게 발생한 자살·자해·정신질환 등 사건은 과연 베트남전쟁과 관련됐다고 할 수 있을지 ③만약 그들의 전후 고통(피해)이 베트남전쟁과 관련 있다면 이는 국가가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했는지(인과관계)를 각각 규명해야 한다.
이 작업은 필연적으로 ‘파병 군인에 대한 국가 책임’의 사회적 기준(원칙)을 정하는 것과 연결된다. 이 기준이 정립돼야만 파병 군인에 대한 기존 보훈정책과 의료지원 등에서 국가의 정책(작위)이 충분했는지, 충분하지 못했다면 그 불충분한 부분을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명명해 국가의 사과와 피해 회복을 위한 조처를 권고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쟁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전쟁 책임을 졌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분석적이고 포괄적으로 답하는 법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운동 주체들이 20년 동안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동시에 파병 군인의 비난과 공격 맨 앞자리에 서 있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전쟁이 만든 고통은 베트남 학살 피해자들만 겪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파병 군인들의 억울함과 울분에 조심스럽게 다가가 귀 기울이지 못한다면 폭력의 메커니즘을 직시할 수 없다. 일견 한국 사회에서 학살 피해자와 파병 군인 간의 대립처럼 보이는 이 문제의 갈등 구조는 사실 전쟁을 수행해 이득을 본 권력이 침묵하고 숨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거짓 갈등이다. 갈등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가해국의 사과도, 피해 회복도 요원하다.
동시에 운동 주체들은 경계하고 있다. 이 법률안이 ‘전쟁은 비극이고, 모두가 피해자다’라는 언설로 책임과 반성을 삭제하고, 한국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가해자성을 망각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폭력과 그 폭력이 야기한 고통에는 그 고유의 층위와 구조, 무엇보다 책임이 존재한다. ‘가해자이자 피해자다’라는 말에는 일단의 진실이 있지만, 폭력과 고통의 고유성을 지울 수도 있기에 매우 위험하다. 부디 법률안이 ‘베트남전 한국군 파병’이라는 역사적 폭력이 야기한 고통을 가장 온전히 드러내는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임재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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