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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 생존자 103명이 사과를 원합니다”

베트남전 국가배상 소송 승소의 씨앗이 된 청원… 대한민국의 ‘비사과’가 남긴 ‘책임 회피’의 증거
등록 2026-01-29 21:44 수정 2026-02-05 05:20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과를 촉구하는 103명의 청원인이 저마다 진술서를 쓰거나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과를 촉구하는 103명의 청원인이 저마다 진술서를 쓰거나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제공


대한민국은 왜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까? 이유 중 하나는 ‘베트남은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의 ‘날짜’는 이 인식이 허구임이 가장 분명하게 확인된 날이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 103명의 청원 접수일인 2019년 4월4일이다.

2019년 4월4일, 용기를 낸 사람들

지난 회에서 다룬 2018년 시민평화법정 이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모인 한국 시민운동은 활력을 갖게 되었다. 시민평화법정 이후 실제 소송을 준비하는 과제가 있었지만, 그것에 더해 조금 더 무엇을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모색 끝에 ‘청원법’을 이용하기로 했다.

청원을 한다는 것은 세 가지 점에서 특별했다. 첫째는 학살 피해자가 처음으로 한국의 공식 절차를 이용해 요구사항을 전달했다는 점이다. 20여 년간 공론화가 됐고 여러 언론 인터뷰, 피해자들의 방한과 증언 활동이 있었지만 공적 절차 활용은 처음이었다. 둘째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공론화 20여 년 동안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청원이 접수되면 법에 따라 답변해야만 했다.

마지막 특별함은 피해자들의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청원 절차상 베트남 피해자들은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자신이 경험하거나 목격한 구체적 피해 사실을 담아 한국 정부에 문서로 요구해야 한다. 권위주의 분위기가 가득한 베트남에서 타국 정부를 상대로 그런 문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도 있었다.

2019년 2월 한베평화재단 활동가들이 조사를 시작했다. 전화를 통해 기초사실을 파악한 뒤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피해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프억빈 마을 학살 유가족 응우옌리는 당시 94살이었는데, 고령에도 마을을 다니며 ‘청원에 참여하라’ 독려하고 있었다. 그 결과 18명이 청원에 참여했고, 아침 8시에 시작한 청원 작업은 다음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끝날 수 있었다. 퐁니·퐁넛 마을 학살 유가족 응우옌록은 소식을 듣고 후에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3시간30분, 120㎞를 달려와 청원에 참여했다. 당시 67살이던 그는 ‘엄마와 누나가 죽었다. 부디 밝혀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103명의 청원인이 모였다.

청원인들 분노케 한 무책임한 답변

“한국군이 마을을 떠난 뒤 오후 5시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와 가족들의 시신을 수습했습니다.”(청원인13 응우옌티훙)

“당시 8살이었지만 그날 학살의 기억이 아주 선명합니다.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분노가 치밀어오릅니다.”(청원인16 부이득번)

“나는 어째서 한국군이 우리 가족을 학살한 것인지 묻고 또 물었지만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크든 작든 그것이 무엇이든지 한국 정부는 우리를 도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청원인52 응오티럼)

103명은 청원서에서 한국 정부의 오래된 거짓말을 지적했다. “‘베트남 정부가 한국의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국 정부가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그 누구도 우리에게 찾아와 사과를 원하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청원서를 통해서 무엇보다 한국 정부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생존자들은 사과를 원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리고 싶습니다.”

‘베트남은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는 문장에서 주어인 ‘베트남’은 누구여야 하는가. 베트남 정부인가? 국가라는 거대한 이름보다, 자기 이름을 건 이 103명이 우리가 대답해야 할 진짜 ‘베트남’ 아닌가? 이들은 사과를 원한다고 말했다. 청원서는 2019년 4월4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제출됐다. 기자회견문 중 일부다. “103명의 목소리, 그리고 미처 담기지 못한 수많은 목소리에 응답해주십시오. 무책임하고 비겁한 침묵의 시간은 이제 끝나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청원법이 정한 90일 내에 책임 있는 답변을 하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2019년 9월9일 103명의 청원에 대한 답변을 내놨다. ‘당신들이 말한 학살은 확인되지 않고, 진상규명 절차를 이행할 계획이 없다’는 답이었다. 누군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묻는다면 이 문서가 최초이자, 가장 공신력 있는 답이다. 학살 부정, 진실 확인 거부.

한 장짜리 본문으로 구성된 이 문서는 톤이 특이했다. 극진한 예우와 공감, 위로의 표현이 가득하다. “대한민국 역시 전쟁을 겪은 국가로서, 베트남전쟁으로 인해 아픔을 겪으신 선생님들의 사연을 검토하며 국방부도 마음속 깊이 그 고통을 공감하였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신 사건들의 진실이 확인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과거의 불행한 역사로 인한 선생님들의 아픔이 치유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같은 문장이 담겨 있었다.

‘비사과’라는 개념이 있다. 외교 영역에서 가해국이 법적 책임을 피하려고 공들인 시도인데, 사과처럼 보이지만 사과가 아닌 의사표시를 의미한다. 분노한 피해국을 달래기 위해 동정심, 공감을 내포하는 ‘후회’ ‘슬픔’ 등의 단어를 쓰면서도 정작 책임과 사과는 외면하는 것이다. 진실이 밝혀지길 ‘간절히 바란다’면서도 진실 규명은 ‘할 수 없다’는 정부의 답변. 그것은 위로의 가면을 쓴 거절이자 ‘책임’이라는 단어만 쏙 뺀 외교적 수사, ‘비사과’의 전형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답변을 베트남어로 번역해 청원에 참여한 분들에게 전달했다. 청원인들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분노했다.

2019년 3월 베트남 프억빈 마을 학살 유가족 응우옌리(94)가 청원서를 작성하고 있다. 임재성 변호사 제공

2019년 3월 베트남 프억빈 마을 학살 유가족 응우옌리(94)가 청원서를 작성하고 있다. 임재성 변호사 제공


파장을 일으킨 103명의 절실한 호소

당시 대한민국은 몰랐을 것이다. 이 부인이 훗날 더 큰 책임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후 이뤄진 국가배상 소송에서 재판부는 이때의 국방부 답변을 중요한 증거로 ‘피고 대한민국이 책임을 회피해왔다’ ‘진실을 은폐한 자가 소멸시효 항변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운동이란 결국 권력의 침묵을 깨뜨리고 끝내 입을 열게 하는 일이다. 비록 그 입에서 나온 말이 ‘거부'였을지라도, 그 거부의 기록은 훗날 법정에서 가해자의 책임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2019년의 청원은 실패가 아니라 승소의 씨앗이었다. 103명의 이름으로 적어 내려간 절실한 호소는 ‘학살을 듣는 법정’에서 결국 파장을 일으켰다.

 

임재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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