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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결정에도 ‘피고 대한민국’이 기를 쓰고 감춘 그 문서는?

57년 전 어느 베트남 가족의 몰살… 재판부는 대한민국의 ‘현재적 은폐행위’ 매섭게 비판
등록 2025-07-24 22:15 수정 2025-07-31 12:02
임재성 변호사가 2021년 4월6일 국가정보원에서 받은 퐁니 학살 조사 자료. 임재성 제공

임재성 변호사가 2021년 4월6일 국가정보원에서 받은 퐁니 학살 조사 자료. 임재성 제공


1969년 11월, 중앙정보부는 한국군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 중 하나인 퐁니 학살을 직접 조사했다. 1968년 2월12일 사건이 일어난 지 1년9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국가정보원(중앙정보부의 후신)이 이 조사자료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2017년에야 드러났다. 이후 대한민국은 이 자료를 감추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번 화의 ‘날짜’는 국정원이 퐁니 학살 조사자료를 ‘비공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2017년 8월16일이다.

 

피고 대한민국이 처절하게 ‘깨진’ 이유

피고 대한민국은 1968년 베트남 퐁니 학살의 피해자 응우옌티탄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왜 졌을까? ‘학살이 실제 있었기 때문에 졌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법정에서 진실이 늘 이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패소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피고 대한민국이 법정 내외부에서 진실을 감추려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당장 법정에서 보이는 행태만으로 ‘나쁜 쪽’이 확연하다면, 판사의 무게추는 반대쪽으로 쉽게 기울 수밖에 없다.

재판부가 가장 주목한 것은 ‘국정원이 보유한 1969년 조사자료 비공개’ 결정이었다. 재판부는 변론 절차와 판결문 곳곳에서 피고 대한민국의 ‘현재적 은폐행위’를 매섭게 비판했고, 국정원의 엉성한 변명은 처절하게 깨졌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운동이 시작된 2000년, 한겨레21의 인터뷰로 이 사건에 대해 국정원 조사가 실재했음이 드러났다. 퐁니 학살을 수행한 청룡부대 1대대 1중대 각 소대장 3명은 인터뷰에서 모두 ‘1969년 11월 중앙정보부에서 직전 해에 벌어진 퐁니 학살에 대해 조사받았다’고 증언했다. 퐁니 학살은 그 잔학성으로 당시 한국과 베트남, 그리고 미국에까지 알려졌기에 군을 넘어 정보기관까지 직접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 인터뷰를 15년이 지난 뒤 접하고 국정원 자료가 남아 있는지, 있다면 어느 기관이 보관하는지 궁금해졌다. 2000년의 탐색이 멈춘 자리에서 조금 더 나아가고 싶었고, 정보의 존재 여부만이라도 확인된다면 당시 준비 중이던 국가배상소송에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판단 끝에 2017년 국정원에 “중앙정보부가 1969. 11.경 최영언, 이상우, 김기동을 조사하여 작성한 문서들(신문조서 등)의 목록”을 공개해달라는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8월16일, 국정원의 답변이 왔다. ‘비공개’였다. ‘부존재’면 끝이지만 ‘비공개’면 싸울 수 있다. 정보가 실제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 차원의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조사가 있었고, 그 정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확인이 공식적으로 이뤄진 순간이었다.

 

국정원의 집요한 재판부 요청 거부

필자는 국정원을 상대로 정보 비공개 처분을 취소하고 정보를 공개하라는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과정은 순조로웠다. 서울행정법원은 학살 조사자료가 공개돼야 한다고 판단했고, 서울고등법원은 국정원의 항소를 기각했다. 국정원이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패소 판결이 확정됐고, 판결에 따라 국정원이 정보를 공개할 일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국정원은 사유를 바꿔 다시 정보 비공개 처분을 하는 엽기적 결정을 했다. 이전 비공개 사유는 ‘국가안보 등 국익침해 우려’였는데, 이를 ‘사생활 비밀침해’로 바꿔 비공개 재처분을 한 것이다. 사생활 비밀이 문제였다면 왜 처음부터 사유로 삼지 않았을까? 누가 봐도 시간을 끌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국정원의 비공개 재처분 결정에 대해 또다시 소송이 시작됐고 결과는 1, 2, 3심 모두 국정원의 패소였다. 이렇게 다섯 번의 소송을 거쳐 국정원이 감추고자 했던 정보가 2021년 3월11일 공개됐다.

정보공개청구 이후 3년7개월 만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상세 내용도 아닌 ‘목록’이었고 조사한 문서의 제목 3줄, 15자에 불과했다. 필자, 그리고 필자와 함께 활동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들은 응우옌티탄의 국가배상소송 1심에서 ‘목록’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국정원이 보관한 이 목록의 정보들은 이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이 주장을 받아들여 국정원에 학살 조사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국정원은 재판부의 요청에 따르지 않았다.

국가배상소송 2심 재판부는 이러한 행태의 부당성을 수차례 지적했다. ‘피고 쪽은 왜 자료를 제출하지 않느냐? 제출하지 않는 사유에 대해 합리적 답변을 하지 않는다면 피고에게 불이익한 판단을 할 수도 있다’는 엄포까지 놓았다. 그럼에도 국정원은 구체적인 정보를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

 

국익 해칠 우려? 도무지 이해 어려워

퐁니 학살 국가배상소송 2심 판결문에는 이런 국정원의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피고 대한민국은 정보공개 소송 과정에서 정보의 보유 사실을 숨기고 그 공개를 극력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법원의 수차에 걸친 요구에도 불구하고 궁색한 이유만을 들며 응하지 아니하였다.’ ‘중앙정보부 자료의 증거 제출이 대한민국의 안보나 외교와 관련된 사항으로서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재판부는 ①국정원 보유 정보에도 학살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아니라면 공개했을 것), ②보유한 정보조차 기를 쓰고 감추는 대한민국이 피해자에게 ‘왜 빨리 소송하지 않았느냐’라며 소멸 시효 항변을 하는 것을 보면 피해자의 권리남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하면, 대한민국이 완패한 결정적 이유에는 ‘과거의 학살’에 더해 ‘현재의 은폐’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국가배상소송 원고 응우옌티탄은 2025년 6월 한국에 방문해 대통령실과 면담했다. 그가 대통령실에 전달한 요구 중 하나는 국정원이 보유한 정보의 공개였다. 우리는 과거에 한 행위를 바꿀 순 없지만, 최소한 지금 이 순간 파렴치하지 않기를 선택할 수는 있다. 한국쯤 되는 국가가, 그것도 2025년에 피해자를 상대로 궤변만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57년 전 가족이 몰살당한 사건의 조사자료를 공개해야 하는 까닭이다.

 

임재성 변호사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가해국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최초의 소송에서 피해자를 대리하며 마주한 순간들, 그 법정 안팎의 이야기를 ‘열두 번의 날짜’를 통해 소개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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