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20일 경북 문경시민운동장에서 열린 문경상무와 수원FC위민의 2025 WK리그 2라운드 경기에서 문경상무의 권하늘이 동점골을 넣은 뒤 특별한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유튜브 ‘iTOP21sports' 채널 갈무리
여자축구가 시시하다고? 박진감이 없다고? 여자축구를 제대로 보면 피치(경기장) 위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뛰고 구르며 한계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희로애락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한국 여자축구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세 번의 시즌을 보며 한국 여자축구 최상위 리그 더블유케이(WK)리그에서 놓쳐서는 안 될 명장면을 뽑았다.

2025년 8월 1일 경남 창녕 스포츠 파크 축구 경기장 찐팬 김나은 우만컴퍼니 대표가 선수들 경기를 촬영하고 있다. 창녕/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수원시설관리공단 여자축구단 선수 출신으로 WK리그 해설을 하면서 거의 모든 경기를 애정과 비판을 담아 지켜봐온 권예은 해설위원, 누구도 기록하지 않던 여자축구를 카메라로 기록하다가 2025년부터 한국여자축구연맹이 운영하는 WK리그 커뮤니티 ‘더블유케이 로그’(WK LOG)를 운영하게 된 이윤성씨, 어느 날 우연히 여자축구 경기를 보다가 ‘여축’(여자축구 덕후들은 여자축구를 ‘여축’이라 줄여 부른다)에 입덕해 WK리그의 팬이 되고 팬심으로 제1호 여자축구 문화전문지까지 펴낸 김나은 우만컴퍼니 대표가 ‘여축’을 사랑하게 만들 명장면들을 1·2부 나눠서 소개한다. ―편집자
1.
언제? 2024년 11월9일
누가? 수원FC위민 vs 화천KSPO 챔피언결정전 2차전
어디서? 강원도 화천생활체육공원 경기장

2024년 11월 9일 강원도 화천군 화천생활체육공원에서 수원FC위민과 화천KSPO의 디벨론 2024 W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이 펼쳐졌다. 이날 화천KSPO에 1-2로 패한 수원FC위민은 1·2차전 합계가 3-2이 돼 구단 역사상 두 번째 WK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수원FC제공
마지막 휘슬이 울리자 14년의 기다림이 터졌다. 선수들은 서로를 끌어안았고 관중석에서도 환호와 눈물이 뒤섞였다. 그날 경기장은 새로운 주인공의 탄생을 축하하는 무대가 됐다.
2024년 11월9일, 강원도 화천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2차전. 수원FC위민은 화천케이스포(KSPO)에 1 대 2로 패했지만, 1차전 홈에서 거둔 2 대 0 승리로 합계 3 대 2, 최종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우승의 기쁨 때문만은 아니다. 인천현대제철이 11년 연속 우승으로 지배하던 WK리그에서 마침내 새로운 주인공이 무대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수원FC위민의 우승은 ‘절대 강자 독주 시대’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리그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였다.
더욱 흥미로운 건, 2025년의 흐름이 또 다르다는 점이다. 화천KSPO, 서울시청 아마조네스,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WFC가 치열하게 선두 경쟁을 벌이고, 인천현대제철이 그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제 WK리그 우승은 더 이상 어느 한 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즌 마지막 날, 그 우승컵이 과연 누구의 손에 들려질까. 2025년에도 우리는 새로운 역사의 순간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권예은 해설위원

2024년 11월5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4 WK리그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심서연이 경기를 뛰고 있다. 이윤성 제공
2024년 11월9일, 강원도 화천생활체육공원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2차전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 수원FC위민의 심서연은 그라운드 한가운데서 포효했다. 16년간 쌓아온 모든 감정을 터트리는 듯했다. 경기 뒤 인터뷰에서도 어머니를 향한 깊은 그리움과 잦았던 부상,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이 고스란히 눈물에 담겨 흘러내리는 듯했다.
심서연은 2008년, 19살의 나이로 혜성처럼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에 등장했다. ‘고양-이천 대교’ 등 소속팀에서는 물론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수비라인의 핵심을 맡아 2015년 FIFA 여자월드컵 16강 진출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인천현대제철에서 팀의 8연패에 혁혁한 공을 세우며 이름을 높였고,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 경기에서도 묵직한 존재감을 남겼다.
그러나 실업팀 생활 10년째가 되던 2021년 세종스포츠토토, 2022년 서울시청에서 잦은 부상 등으로 은퇴를 수없이 고민했다. 그때 심서연에게 콜린 벨 당시 대표팀 감독과 그가 실업팀 생활을 시작한 수원FC위민(당시 수원도시공사)이 손을 내밀었다.
2023년 수원으로 복귀한 그는 다시 수비의 중심이 됐고, 2024년 은퇴 경기에서 화천KSPO를 꺾고 수원FC위민과 함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A매치 92경기 1골. 기록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늘 그 자리에 있던’ 믿음의 수비수 심서연이라는 이름이다.
이윤성 WK로그 운영자
2. 언제? 2024년 9월26일
누가? 화천KSPO vs 창녕WFC
어디서? 경남 창녕스포츠파크 5구장

화천 KSPO는 2024년 9월 26일 경남 창녕스포츠파크에서 열린 WK리그 2024 최종 28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두 골을 넣은 최유정(32)과 선제 결승골을 넣은 문은주(24), 추가골을 넣은 위재은(28)의 활약을 앞세워 창녕WFC에 4-0 대승을 거뒀다. 이번 승리로 16승 8무 4패의 기록과 승점 56점을 기록한 화천KSPO는 2위 수원FC 위민(15승 8무 5패, 승점 53점)을 승점 3점차로 제치고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제공
2024 WK리그 정규리그 마지막 날. WK리그의 철벽이 무너졌다. 11년 연속 우승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인천현대제철을 화천KSPO가 꺾었다. 왕좌가 바뀌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날이자 WK리그 모든 팀에 우승 가능성이 열린 날이기도 했다.
값진 정규리그 우승이 탄생하고 뜨거웠던 한 해의 시즌이 종료되는 경기였음에도 그 축하는 놀라울 만큼 고요했다. 2024년 3월16일~9월26일 세 계절 동안 8팀이 각각 28경기씩 뛰어 정규리그 우승팀을 가리는 자리였는데, 무미건조한 우승 세리머니와 짧은 축하의 말만 번개처럼 지나갔다.
고요한 마무리와 달리 2024 시즌은 마지막 라운드까지 정규리그 우승팀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치열했다. 시즌 중반 이후부터 매 경기 승점과 골득실이 엎치락뒤치락하며 1위부터 3위까지의 순위가 계속 바뀌었다. 특히 2위인 수원FC위민과 화천KSPO의 승점과 골득실이 동일했기 때문에, 28라운드 결과에 따라 우승팀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28라운드 경기. 당시 3위였던 경주한수원은 수원FC위민과의 경기에서 2 대 0으로 승리를 거뒀다. 화천KSPO가 28라운드에서 창녕WFC를 상대로 4 대 0으로 승리했다. 골득실에서 앞선 화천KSPO가 정규리그에서 우승하는 순간이었다. 2024년 정규리그 첫 경기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한 경기도 빼놓지 않으려 전국을 뜨겁게 오간 팬으로서 이 큰 변화도, 그 고요한 순간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김나은 우만컴퍼니 대표
3. 언제? 2024년 9월12일
누가? 화천KSPO vs 인천현대제철 레드엔젤스WFC
어디서? 강원도 화천생활체육공원 경기장

2024년 9월12일 강원 화천생활체육공원 경기장에서 열린 화천KSPO와 인천현대제철 레드엔젤스WFC의 26라운드 경기에서 종료 휘슬이 울리자 화천KSPO 골키퍼 정보람이 그대로 경기장에 누웠다. 유튜브 ‘iTOP21sports’ 채널 갈무리
후반 44분. 화천KSPO 최유정이 코너킥 찬스를 맞았다. 최유정이 차올린 공이 골문 앞에 떨어졌다. 혼전 상황에서 최정민이 밀어넣었다. 순간 인천현대제철 선수들은 두 팔로 머리를 감쌌고, 화천KSPO 선수들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1 대 1 동점 상황에서 화천KSPO가 한 점을 얻었다. 화천KSPO의 2 대 1 승리.
이 경기가 2024년 WK리그 정규리그 판도를 바꿨다. 직전까지 수원FC위민, 화천KSPO, 인천현대제철 세 팀이 승점은 47점으로 같고 골득실로만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날 엎치락뒤치락의 두 당사자, 화천KSPO와 인천현대제철 레드엔젤스WFC가 만났다. 정규리그 마지막까지 단 세 경기만 남은 26라운드 경기였다. 이날 승리가 승점 3점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후반 44분 득점 뒤 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 화천KSPO의 수문장 정보람은 경기장에 드러누웠다. 90분 내내 몸을 날리는 선방으로 1점 실점 상태를 지켜냈다. 정보람이 골대 앞에 누워 얼굴을 감쌀 때 관중석에 선 내 입에선 절로 “고생했다”는 말이 새어나왔다.
이날의 골은 화천KSPO 2024 시즌 정규리그 우승의 포문을 연 득점이자, 2025 시즌 성장한 모습으로 뛰고 있는 최정민의 가능성을 보여준 득점이기도 했다.
김나은 우만컴퍼니 대표
4. 언제? 2025년 3월20일
누가? 문경상무 vs 수원FC위민
어디서? 경북 문경시민운동장
골망이 흔들리자 권하늘이 환하게 웃으며 배에 공을 넣었다. 그리고 엄지를 살짝 무는 제스처를 취했다. 아쉽게도 그 장면은 중계 화면에 잡히지 않았다. 비밀은 하프타임에 풀렸다.
은퇴한 안상미 전 선수가 연락이 와 “하늘 언니가 내 임신 축하 세리머니를 했다”고 알려줬다. 결혼식을 준비 중이던 예비 남편과 먼저 아이를 갖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는 혹시 곤란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그럼 중계에서 말하지 말까?”라고 물었지만, 그는 웃으며 “공격수는 골부터 넣는 거죠”라고 유쾌하게 말했다.
권하늘과 안상미 두 선수는 오랫동안 문경상무의 중심 공격 듀오로 활약하며 수많은 골과 승리를 함께 만들어왔다. 2024년 안상미의 은퇴로 한 시대가 마무리됐지만, 권하늘은 이날 골로 친구의 새로운 시작을 가장 따뜻한 방식으로 축하했다. 다행히 세리머니 장면이 녹화돼 후반전 시작 전 화면에 잡혔고, 안상미 전 선수의 기쁜 소식도 팬들에게 전해졌다.
이 장면은 결혼식 축하 영상으로도 제작됐다. 기록지에는 단순히 한 골로 남았지만, 그날의 세리머니 장면은 관중과 선수,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경기장을 넘어선 우정’이 무엇인지 보여준 순간이었다. 축구가 주는 감동은 때로 이렇게 작고도 특별한 장면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권예은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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