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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된다’는 방치가 키스방 알리미 불렀다

등록 2024-09-14 16:44 수정 2024-09-17 10:50
화이트해커 최준영(가명)씨가 2024년 8월2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키스방 알리미’ 운영자를 추적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화이트해커 최준영(가명)씨가 2024년 8월23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키스방 알리미’ 운영자를 추적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키스방 알리미’의 존재를 알게 된 건 2023년 서울시립 다시함께상담센터(다시함께센터) 관계자와 대화하면서였다. “요즘 성매매 알선이 텔레그램으로 옮겨가고 있어요.” 성구매자들이 성매매 예약을 편하게 하기 위해 돈을 내고 예약 정보를 텔레그램 메시지로 받는다는 것이었다. 당시엔 ‘설마 누가 그런 걸 돈 주고 쓰겠나’ 싶어 가볍게 여겼다.

몇 달 뒤 제보를 받으면서 다시 한번 키스방 알리미를 떠올리게 됐다. “키스방 알리미의 운영자를 추적했다”는 제보였다. 키스방 알리미를 직접 써보고, 성매매 커뮤니티를 찾아봤다. 키스방 알리미는 대중화 단계에 들어서 있었다. 커뮤니티에서는 너도나도 “알리미 덕에 성매매 예약에 성공했다”는 범죄 자백이 올라오고 있었다. 안일하게 넘길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키스방 알리미의 등장은 성매매 산업의 주도권이 성구매자 쪽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밤의 전쟁’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성매매 알선 사이트는 업소와 사이트 운영자가 주도했지만, 키스방 알리미는 달랐다. 이들이 돈을 내기 때문에 업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후기와 품평, 심지어는 불법촬영물과 여성들의 신상까지도 공유하고 있다. 성구매자들은 개인이 키스방 알리미를 만들 수 있는 코딩 방법까지도 공유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오피스텔 알리미’ ‘스웨디시 알리미’ 등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

다시함께센터도 이 점에 주목했다. 다시함께센터 관계자는 “성구매자는 보다 ‘수월한 성매매’를 위해 새로운 기능을 개발하면서 성매매 산업에 적극 개입하고, 성매매 알선의 지형은 성구매자를 중심으로 확장하고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한겨레21 탐사팀은 대표적 키스방 알리미인 ‘노○’의 운영자를 추적했다. 그렇게 찾아낸 운영자 조아무개씨는 불법과 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아이티(IT) 기술을 활용해온 사람이었다. 불법적인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케이(K)팝 콘서트 티켓을 대량 구매해 되팔았고, “나는 돈 버는 방법을 안다”고 과시하기도 했다.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됐지만 조씨는 이미 다른 범죄를 저질러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찰 수사망을 피해 숨어서 ‘노○’을 운영하고 있다. 성매매 알선으로 돈을 벌면서 블로그엔 매일같이 기도문과 사랑에 대한 시를 올리고 있다. 경찰이 이미 세 번 이상 키스방 알리미 운영자들을 풀어줬기 때문에 일말의 경각심도 없어 보인다.

키스방 알리미를 고발한 한겨레21 기사를 읽으면서도 ‘우리는 규정에 따라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수사·행정 기관 관계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결국 ‘설마 누가 그런 걸 돈 주고 쓰겠나’ 하는 안일한 생각이 불법 성산업을 키우고 더 많은 성매매를 방관하고 있다. 성매매는 분명한 불법이고, 성착취다.

“외관상 강요되지 않은 자발적인 성매매 행위도 인간의 성을 상품화함으로써 성판매자의 인격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 성매매는 그 자체로 폭력적, 착취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경제적 대가를 매개로 하여 경제적 약자인 성판매자의 신체와 인격을 지배하는 형태를 띤다.”(헌법재판소 2013헌가2 결정)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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