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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루되었다

등록 2024-04-05 22:25 수정 2024-04-10 18:26
2024년 4월2일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의 모습. 10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2024년 4월2일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의 모습. 10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10년의 시작부터 고통이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유가족과 시민들을 고통에 빠뜨린 건 ‘전원 구조’ 오보였다. 사고 해역에 도착해 보도와 달리 승객 구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확인한 유가족은 절규했다. 유가족의 절규와 세월호의 침몰을 생방송 화면으로 확인한 시민들은 비통함에 빠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통은 보편적이었다.

이후 10년 동안 실종자 수색, 선체 인양 등의 과정에서 유가족은 계속 배제됐다. 초기 진상조사 때 정부는 유가족을 피해자가 아니라 ‘이해관계자’로 규정하기도 했다. 유가족을 지독하게 괴롭힌 ‘피해자다움’이라는 굴레가 그렇게 시작됐다. 유가족은 사회가 정해놓은 전형적인 피해자로서의 행동을 강요당했다. 초기에 함께 고통을 느꼈던 유가족과 시민은 이 과정을 통해 강제로 분리됐다. 유가족의 고통이 공동체 모두의 고통으로 확장되는 일은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고통은 어떻게든 설명되어야 한다.” 사회학자 전상진의 저서 <음모론의 시대>에 실린 첫 문장이다. “이유를 알 수 없고,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무엇보다 고통을 일으킨 죄인이나 책임자를 찾을 수 없을 때” 고통은 비로소 문제가 된다. 세 차례의 국가 조사기구를 통해 이뤄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과정에서 끝내 설명되지 않은 고통은 두 가지 문제로 환원했다. 하나는 참사 이후의 진상규명 과정이 형사처벌 위주의 해결책에 매몰되면서 사회를 바꿀 급진적 정치 이데올로기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로 민낯을 드러낸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초기의 문제의식이 언젠가부터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가해자들을 찾아내 형사처벌하자는 주장 뒤로 밀려났다”(이번호 표지이야기)는 평가가 나온 까닭이다.

이런 상황이 또 다른 문제인 음모론으로 이어졌다. 2015년 방송인 김어준씨, 2018년 김지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 등이 세월호가 운항 중 앵커(닻)를 해저에 던져 걸리게 해 고의로 침몰했다는 이른바 ‘앵커 침몰설’을 주장했다.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이 음모론은 그러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까지 이어진 진상조사가 끝내 잠수함 충돌 등에 의한 ‘외력설’을 포기하지 못한 계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유불리나 이해관계에 따라 음모론을 이용하는 사람들까지 속출하면서 유가족은 진상과 함께 고립됐다.

이 고립을 풀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참사를 만든 사회구조, 그리고 유가족의 고통에 우리가 연루돼 있음을 재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이 재인식을 위해선 지난 10년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10년 동안의 조사를 통해 이윤 극대화를 위해 개조한 세월호는 언제든 넘어질 수 있는 배였고, 역시 이윤 극대화를 위해 과적한 화물은 고박도 되지 않았으며, 배가 넘어져도 침몰을 더디게 해줄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고, 구조에 무능했던 해경에 의해 침몰 사고가 결국 참사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겨레21>은 형사처벌 위주의 해결책과 음모론이라는 문제를 넘어 이런 사실들을 정치하게 재구성하는 것으로 ‘애도의 4월’에 전하는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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