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을 좋아하는 제 아버지는 지금도 가족 외식을 할 때 꼭 술을 주문합니다. 한창 일할 적엔 일주일에 절반 이상 술 냄새와 함께 귀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은근히 자부심을 가진 원칙이 있다면 낮술은 절대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 게 낮술”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생 시절 저는 이렇게 대꾸하곤 했습니다. “그럼 뭐 해? 밤에 왕창 마시면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일할 때 술 안 먹는 게 상식 아니야? 왜 당연한 걸 대단한 것처럼 말해?”
옛 기사를 찾아보면 낮술 문화는 제법 보편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10여 년 전인 2013년,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커리어가 각각 직장인의 낮술 경험을 조사한 결과를 다룬 기사 제목은 이렇습니다. “직장인 10명 중 4명 ‘근무시간 낮술 마셔봤다’” “직장인 58%, 일 때문에 ‘낮술’”
하지만 이때를 기점으로 이런 기사를 더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시대가 변해 제 주변 또래들에게 낮술 경험을 물어보면 대부분 고개를 젓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프리랜서나 사람을 많이 만나는 광고·영업직군, 그리고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언론사 기자 정도입니다.
2022년 방영한 티브이엔(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등장인물인 ‘오인경’의 직업은 방송사 기자입니다. 평소 술에 의존하는 그는 정치인의 기자회견에서 의혹을 제기하는데, 그 전에 낮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습니다. 저는 “현실 고증이 하나도 안 돼 있다”며 깔깔거렸습니다. 기자들 대부분은 점심을 먹으면서 술을 한두 잔 마셔본 경험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자가 아닌 친구는 싸늘한 말투로 “그게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느냐”고 했습니다.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낮에 한 잔이라도 술을 마시고 일하는 건 사회의 보편적 인식과 거리가 멀다는 것, 그리고 이를 제가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요.
어쩌면 한국 사회가 알코올중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우리 사회의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이 술에 대한 민감도가 낮기 때문일 겁니다.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당장 대통령선거 기간만 해도 그렇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입당 여부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던 이준석 국민의힘 당시 대표와 ‘맥주 회동’을 하며 갈등을 봉합하는 모양새를 보였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퇴근길 남대문시장에서 국민과 소주 한잔하겠다”고 공언한 적 있습니다. 이는 다른 나라 정치인과 공인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저부터 잘해야겠습니다. 어느 날 회사 동료들과 낮술을 마신 제게 아버지는 “아비도 안 먹는 낮술을 딸내미가 먹는구나”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올해는 알코올에 ‘절인’ 뇌를 회복해보겠습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21토크ㅡ지난호 <한겨레21> 표지 기사의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안녕하세요, 알코올중독자 김입니다”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만취한 사회가 술 마시라고 권했잖아? 그래 안 그래?
“한국은 ‘일하는 알코올중독자’가 많은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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