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열흘 남짓이었다. 2023년 12월11일 인터뷰에서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창업기를 말하던 청년이, 느닷없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언론에 등장한 날짜는 12월22일. 그새 이예빛(27) 몸 대표에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대표는 26일 전화 통화에서 “상황이 워낙 급박해서 ‘서울여성공예센터 입주기업 비상대책위원회’를 정신없이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여성공예센터(이하 센터)는 이 대표의 사무실 겸 작업실이 있는 곳으로, 서울시 산하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위탁운영하는 여성 공예 (예비)창업가 지원 기관이다. 매년 공모로 뽑힌 공예가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작업실을 대여해주는 등 각종 지원을 한다. 이예빛 대표는 2023년 초 센터에 입주했고, 같은 해 10월 입주 연장 심사를 통과했다. 2024년까지 센터에서 창업 초기를 버틸 예정이었다. 하지만 15일 그를 포함한 입주 연장 기업 대표 16명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시가 센터 운영을 중단하기로 했으니 2024년 2월까지 퇴거하라는 것이다.(한겨레 기사 “기관명에 ‘여성’ 있어서”…강제로 문 닫는 서울여성공예센터 참조)
—12월15일 퇴거 공지를 받고, 12월22일 기자회견을 했어요.
“대책위를 기자회견 전날인 12월21일에 만들었어요. 서울시의원들에게 전화를 열심히 돌렸고 이때 ‘대책위원장은 누구냐’는 물음이 많아서 제 이름을 말했던 거고요. 나중에 보도를 보니 서울시가 센터 운영 예산을 전액 삭감한 안을 시의회에 낸 게 12월 초인데 저희는 시의회에서 최종 결정이 나고서야 상황을 알았더라고요. 시의원들이 ‘왜 이리 늦게 연락했냐’고 물을 때마다 속상했습니다.”
—공예 창업가들에게 작업실이나 ‘크래프트팜’(센터에서 공예 장비를 비치해 창업가와 시민 등에게 개방한 공동작업 공간) 같은 공간이 지닌 의미가 특별하다는 얘길 여러 사람에게 들었어요.
“창업을 사무실 없이 노트북 하나로 시작하는 거로 생각하는 분도 있을 텐데 공예는 다른 사업과 달리, 망치질·물레질 등의 작업을 위한 기계와 공간이 꼭 필요해요. 위험한 기계도 있어 아무 데나 놓을 수 없죠. 금속공예를 하는 한 친구는 (일반) 공유공간에 입주하면서 운영진에 망치질한다는 얘기를 미리 했음에도 나중에 운영진이 ‘도저히 안 되겠다’며 나가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센터는 방음시설이 비교적 잘돼 있고, 소리가 들려도 다들 작업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있죠.”
—대책위는 서울시나 시의회에 어떤 요구를 하는지,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떤지 궁금해요.
“첫째는 센터를 계속 운영해달라고 요구해요. 센터가 가진 가치가 분명 있으니까요.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하루 만에 2천 명 이상이 동참해주셨어요. 둘째는 입주 연장 심사가 끝난 기업들에 원래 약속한 2024년 12월까지 공간 사용을 보장해달라는 거예요. 다른 공간을 알아보려 해도 이미 공모가 끝나서 갈 곳이 없거든요. 셋째는 크래프트팜을 누구나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거예요. 시민들이 많이 쓰기도 하고, 예전에 센터에 입주했다가 기간을 채우고 졸업한 창업가 가운데 크래프트팜의 장비를 쓰려고 센터 근처로 이사까지 한 분들도 있어요.”
이 대표와 통화를 마친 뒤, 과거 인터뷰 기록을 살펴봤다. “저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라며 “누군가의 일상에서 실용적 의미를 넘어 기쁨을 줄 수 있는 물건, ‘사랑할 수 있는 물건’에 대해 고민한다”는 말이 눈에 띄었다.(제1493호 ‘우리 것이 힙한 것이여’ 참조) 그가 다시 창업의 기쁨과 슬픔에만 몰두할 날은 언제쯤일까.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기승전21은 <한겨레21>과 인연이 있는 ‘그때 그 사람’을 찾아 안부를 묻고 <21>의 안부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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