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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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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가방에들어가시는’ 그날까지

여성 홈리스 육성 담은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책
2023 레드어워드서 ‘주목할 만한 기록’ 부문에 선정
등록 2023-11-24 14:14 수정 2023-11-30 04:20
2023년 8월25일 책의 화자인 임미희(가명)씨가 서울역 광장에서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책 모형을 세워놓고 그 안에 눕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2023년 8월25일 책의 화자인 임미희(가명)씨가 서울역 광장에서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책 모형을 세워놓고 그 안에 눕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제공

여성 홈리스들은 좀처럼 길거리에 나타나는 법이 없다. 폭력과 시비를 피해 화장실로, 광장 구석으로 꼭꼭 숨는다. ‘홈리스행동 생애사기록팀’은 그들 한명 한명을 찾아가 삶을 기록했다.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는 여성 홈리스 7명의 이야기를 육성 그대로 옮긴 책이다. 2023년 11월13일, 이 책이 2023 레드어워드 ‘주목할 만한 기록’ 부문에 선정됐다. 기록팀 일원인 홍수경 홈리스행동 활동가에게 소감과 책 이야기를 들었다.

—수상을 축하한다. 간단하게 소감을 말한다면.

“(수상 소식을 듣고) 책에 등장하는 화자 강경숙님이 떠올랐다. 처음 인터뷰를 수락할 때 그분이 ‘여기서 벌어지는 일 아무도 모른다. 할 말이 많다’면서도 ‘누가 우리 이야기를 보겠냐’고 했다. 이제 우리 책도 상 받았다고, 사람들이 주목한다고 그분께 말할 수 있어 좋다. 여성 홈리스가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한 책이 상을 받았다는 것도 여성 홈리스 활동을 향한 격려처럼 여겨졌다.”

—여성 홈리스는 거리에 잘 안 보인다고 한다. 화자들을 어떻게 만났나.

“거리에 여성 홈리스가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여자들이 거리에 있으면 너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기 공원에 있다더라, 화장실에 있다더라 하는 단서를 가지고 개개인을 찾아가 만났다. 몇몇 화자는 홈리스행동 인권지킴이 활동(홈리스 밀집지역 정기 방문) 중에 만나기도 했다.”

—한분 한분 만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2021년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양동 쪽방 주민 구술생애사)를 쓸 때는 주요 화자가 남성이라 만나는 거점이 명확했고 개개인 생애사도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엔 그런 거점이 딱히 없고 정신질환이 있는 거로 유추되는 분들도 있어 생애사를 듣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연락 수단이 없어 만남을 기약하기 어려웠고, 약속이 파투 나거나 서로의 언어가 미끄러지기도 했다. 작가들이 ‘여성 홈리스’ ‘빈곤’ 이런 단어를 꺼내면 입을 닫곤 했다. 고민 끝에 ‘이분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듣자’고 결정했다. 예를 들어 강경숙님은 역사 대합실에 온 2020년 이후부터 얘기하고, 이가혜님은 자신이 보는 환상에 대해 얘기하는 식으로 기록을 남겼다.

—‘콘셉트’ 없이 이야기를 듣는 건 상당한 모험이다. 그런 결정을 한 배경은 뭔가.

“우리도 여성 홈리스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실태조사도 없고 활동가들이 깊이 관계 맺은 분도 많지 않다. 책 작업을 시작할 때는 여성 홈리스라는 존재를 그들의 입으로 드러내려 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목적으로 이런 얘기를 들으려 한다’가 아니라, 우선 그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여는 게 더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책이 나온 뒤 어떤 변화가 있었나.

“화자 한 분이 최근 홈리스 야학 글쓰기 수업에 참여해 자기 인생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언젠가 한번 우리가 책을 낸 것처럼 나도 내 이야기를 담은 책을 내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또 다른 분은 이제 인터뷰 없이도 밥을 자주 먹는 사이가 됐다. 그럴 때 정말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활동하는 동료가 돼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홈리스행동에서 기록의 의미는.

“홈리스는 이미 우리 곁에 사는 동료 시민이지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지 않고 (집단으로) 퉁쳐진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 삶을 그들의 목소리로 기록하는 건 존재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가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게 조금 더 힘을 실어준다, 즉 ‘조력한다’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수상 소식을 알리는 에스엔에스(SNS)에 ‘모두가 방에 들어가는 날을 기다린다’고 썼다.

“사실 주거권 보장을 이야기하면 노숙인 등 일부 주거취약계층만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다들 경험으로 알다시피 집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최근 쪽방, 고시원 등 비적정 거처 인구가 갈수록 늘고 있다. 방(주거권)에 들어가는 건 홈리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굉장히 필요한 일이다. 많은 사람이 주거권을 ‘우리 문제’로 받아들이고 함께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한겨레21> 독자도 주거권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감사하겠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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