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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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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민으로 돌아가고픈 40년 농민들, ‘검은여’는 소원 들어줄까?

서산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농민으로 바뀐 부석면 옛 어민들
농식품부-국토부 이견 있지만, `역간척’ 사업 가능성 점점 커져
등록 2023-09-23 15:02 수정 2023-09-28 13:05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갈마리, 옛 적돌만 바다의 검은여 선돌 앞에서 2023년 4월3일 주민들이 검은여제를 지내고 있다. 송인걸 기자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갈마리, 옛 적돌만 바다의 검은여 선돌 앞에서 2023년 4월3일 주민들이 검은여제를 지내고 있다. 송인걸 기자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갈마리, 옛 적돌만이라고 부르던 바다에 검은여라고 소원을 비는 신묘한 바위섬이 있습니다. 소원이 이뤄지는 바위이니 전설쯤은 당연히 있습니다. 서산·당진을 일컫는 ‘스당’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죠.

검은여 일대, 천수만 간척으로 육지로 바뀌어

1406년 전인 서기 617년(신라 문무왕 17년)에 의상대사가 부석면에 나타났대요. 의상은 전국구 절집 분양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스님이죠. 전국에서 오래된 절의 상당수를 의상 아니면, 원효 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졌으니까요. 당나라 유학 당시 자신을 사랑하다 세상을 떠난 처녀의 혼을 위로하는 절집을 짓겠다는 명분을 내걸었어요. 원주민들은 절집 공사에 반대했다고 해요. 갈등이 커지자 하늘에 검은 바위가 떠다니고 “방해하면 벌을 내리겠다”는 큰 소리도 들렸답니다. 바위가 떨어져 죽을 판인데 누가 반대할까요?

검은 바위는 절이 준공되자 바닷가로 내려와 검은여가 됐습니다. 이 검은 바위는 밀물 때든 썰물 때든 바닷물에 잠기거나 크게 드러나지 않고 항상 같은 높이로 바닷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를 신묘하게 여긴 주민들은 대를 이어 천 년 동안 바위에 소원을 빌었죠. 의상이 지었다는 절집 부석사, 부석면이라는 지명도 이 검은 바위가 기원입니다.

지금도 부석면 주민들은 일 년에 한 번 검은여에 모여 풍년·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냅니다. 2023년 4월3일에도 검은여 선돌 앞에서 검은여제가 열렸죠. 풍물단이 한바탕 사물을 두드려 천지에 제를 고했습니다. “유~세차, 검은여 신령께서 고기 잡고 소금 굽게 해주시고 나무와 물을 주시고, 넉넉하게 보살펴주시니….” 초헌관이 축을 하고 부석사 스님이 불경을 하니 주민들도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빕니다.

주민들은 검은여 기도발이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웁니다. 사실 검은여는 1980년대 천수만(서산A·B지구) 대단위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됐습니다. 이로 인해 적돌만의 어민들은 40여 년을 농민으로 살았습니다. 주민들은 이를 검은여의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풍랑에 물귀신이 된 이가 적지 않다보니 바다가 지긋지긋해 농사꾼이 되는 게 소원일 때가 있었답니다. 농토를 갖고 싶다고 빌고 빌었더니 어느 날 간척이 이뤄져 바다가 육지가 되는 기적이 펼쳐진 것이죠.

검은여의 현대판 기적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빠지지 않습니다. 정 회장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농부가 되고 싶었다는데 간척한 이곳에 서산농장을 세웠으니 큰 농사꾼의 소원을 이뤘다는 겁니다. 또 주민들은 정 회장이 이곳에서 키운 소 1001마리를 이끌고 이북에 다녀왔으니 못다 한 ‘효도’까지 한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소원을 이뤄서였을까요? 정 회장은 ‘검은여가 간척지에 매몰될 판이다. 보존해달라’는 주민들의 부탁을 받자 검은여 주변에 울타리를 쳐줬다고 해요. “정 회장은 헬기를 타고 이곳에 여러 번 들렀어요. 그분도 효험을 들었을 테니 검은여에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요.” 이희동 새마을지도자 부석면 협의회장의 말입니다.

제관들이 2023년 4월3일 검은여제를 지내고 있다. 송인걸 기자

제관들이 2023년 4월3일 검은여제를 지내고 있다. 송인걸 기자

검은여 있는 서산 비(B)지구, 다시 바다 될까?

그런데 말입니다. 이 간척지를 바다로 되돌리기를 원하는 이가 늘고 있습니다. 염분이 많은 간척지에서 농사짓기가 쉽지 않은데다 요즘 갯벌과 바다의 경제적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검은여에 소원을 잘못 빌었다. 어민으로 죽고 싶다”고 후회합니다.

송영철 부석면 갈마리 2구 이장은 2023년 제관으로 참례했습니다. 송 이장도 “검은여가 다시 물에 뜨기를 소원했다”고 합니다. 이성로(78)씨는 “갯벌에서 조개 잡다가 물이 서면 여에 올라와 놀았다. 널린 게 안주니 술 한 병이면 부족한 게 없었다”고 회고하고 “역간척을 한다고 하는데 긴가민가해. 상전벽해 되는 날이 정말 올까 싶다”고 한숨지었습니다.

충남도는 2011년 태안군 안면도~황도 방조제를 허물고 연륙교를 건설하는 등 갯벌복원사업을 하고 있어요. 부남호도 갯벌복원사업 대상입니다. 비지구 담수호로, 간척농지 3745㏊에 농업용수를 공급해야 하는데 수원 부족으로 수질이 2019년부터 6등급 이하로 악화하면서 농업용수로서 기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2019년에 조사한 자료를 보면, 부남호의 수질은 염분 20psu(1psu는 해수 1㎏에 염류 1g이 녹아 있는 상태) 이상이 1592만6828t, 30psu 이상이 1499만4473t이었고 용존산소는 3㎎ 이하가 2250만4431t, 생물이 살 수 없는 2㎎ 이하도 2157만9094t이었습니다. 백승호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책임연구원은 “부남호의 전체 수량 7500만~8천만t 가운데 해수가 2500만~3천만t, 생물이 살지 못하는 물이 약 2천만t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부남호에서는 개발-보존-복원 가운데 최선의 방안을 찾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갯벌복원 방법은 해수 소통형, 갯벌 재생형, 기능 개선형, 경관 개선형, 기수역 복원형 등이 있는데 해수 소통형이 힘을 얻는 모양새입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은 `부남호 제방(길이 1228m)의 수심 5~8m 깊이에 대형 암거(길이 100m, 높이 3m)를 설치해, 밀물과 썰물 때 담수와 해수를 하루 2만t 유통하면 1년 뒤 부남호의 리터(ℓ)당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은 200㎎에서 70㎎, 3년 뒤 수질은 6등급에서 2등급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또 부남호 내수면적 1560㏊(평균 수심 8m) 가운데 소조기에 353.5㏊, 대조기에는 571.5㏊의 갯벌 생태가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해수 소통형은 부남호에 보를 쌓아 하류 쪽은 갯벌로 돌리고 상류 쪽은 담수호로 남겨 간척농지를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해, 원주민이 소원하는 ‘방조제를 전면 개방해 간척지를 바다로 되돌리는’ 역간척은 아닙니다.

역간척 사업은 농림축산식품부의 태도에 따라 가능할 수도,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농림부는 “간척사업은 농지를 확보해 식량을 증산하기 위해 국가가 농지관리기금을 투입해 추진했다. 또 간척지 담수호는 농업은 물론 공업, 생활용수로 잘 활용하고 있으므로 (수질 악화 등을 빌미 삼아) 역간척을 주장하는 것은 검토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해왔습니다.

검은여제에 참례한 주민들이 적돌만 바다와 어장이 있던 쪽을 가리키고 있다. 송인걸 기자

검은여제에 참례한 주민들이 적돌만 바다와 어장이 있던 쪽을 가리키고 있다. 송인걸 기자

그런데 말입니다. 부남호는 다른 간척지와 달리 농지관리기금이 투입되지 않았습니다. 나랏돈 대신 현대건설이 돈 들여 간척했고 현재 토지 소유권은 현대와 농민이 갖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해수 피해와 수질 악화 등으로 영농 여건이 불리해 농사짓지 못한다면 (토지 소유주인) 현대와 농민이 협의해 국토의 효율적 이용 차원에서 산업용지 전환 등 다른 토지 활용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부남호 갯벌복원사업의 공이 충남도와 현대건설, 비지구 전업 농민의 손에 넘어온 셈입니다. 하지만 갯벌 복원이 결정돼도 중앙정부와 협력해 수천억원에 달할 사업예산 확보는 물론 토지 보상과 어촌 복원 등 현안까지 겹겹이 놓인 산을 넘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김태흠 충남지사는 “산업화와 개발의 시대에 간척사업은 더 잘살기 위한 생존전략,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것은 식량 증산 기회이자 국토 확장 방법이었다”며 “이제는 환경과 개발이 지속가능한 관점에서 국가적 차원의 연안 담수호 생태복원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밝혔습니다.

국토부, 충남지사도 역간척에 전향적 의견

검은여 기도발일까요? 2023년 봄은 가물었습니다. 전국에서 대형 산불이 잇따랐죠. 검은여제 축문에는 비를 내려달라는 기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반나절 뒤 비가 내려 꺼질 줄 모르던 충남 홍성·보령의 산불이 진화됐습니다.

서산=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명절마다 전국 각 지역의 따끈따끈한 이슈를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전달합니다.
검은여제에 앞서 농악대가 사물을 치며 천지에 제례 거행을 고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검은여제에 앞서 농악대가 사물을 치며 천지에 제례 거행을 고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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