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 가운데 하나인 제주 4·3의 길을 따라 걷는 ‘4·3 유적지 기행’은 이제 보편적인 제주의 평화기행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4·3 시기인 4월에는 유적지 기행에 나서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
2025년은 4·3 유적지 기행에 또 하나의 풍경이 추가될 듯하다.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때문이다. 문학작품 속 장소가 역사적 사실과 꼭 들어맞지 않는다 해도 소설 속 문장을 읽으며 4·3의 흔적을 찾아 제주 땅을 돌아보는 것도 색다른 여행일 수 있다.
제주 4·3 유적지들은 길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하는 곳도 있고, 차를 타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이번 설 연휴에는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유적지를 찾아 4·3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제주4·3 당시 주민 120여 명이 2개월 가까이 피신했던 동굴인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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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의 동굴들은 입구가 작아요.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정도니까 돌로 가려놓으면 감쪽같은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놀랄 만큼 커집니다. 1948년 겨울엔 한마을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 몸을 피한 곳도 있어요.” 작품에 등장하는 이 문장의 장소는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큰넓궤로 추정된다. 과거에는 도로에 내려서 걸어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안내 표지판이 서 있고 농로가 포장돼 쉽게 찾을 수 있다.
큰넓궤는 4·3 당시 동광리 주민 120여 명이 40~50여 일 동안 토벌대의 추적을 피해 숨어 지냈던 굴이다. 작품 속 내용처럼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놀랄 만큼 넓은 공간이 나온다. 지금은 안전사고 우려 때문에 입구를 철제로 막아놓았지만, 설명문이 있고 바로 옆의 ‘도엣궤’라는 작은 굴도 있어 당시 제주 사람들의 피신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서 차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무등이왓’이라는, 4·3 당시 토벌대의 방화로 사라진 마을이 있다. 그곳 길가에 웃자란 참대나무와 오랜 팽나무가 집터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지역의 4·3 역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동광리 복지회관에서 정보를 얻고 출발할 수 있다.
화산섬 제주는 곳곳에 크고 작은 굴이 있다. 4·3 당시 굴은 주민들의 피난처이기도 했고, 발각되면 몰살되는 학살터이기도 했다. 1992년 11구의 4·3 유해가 발견된 제주시 구좌읍 다랑쉬굴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당시 이 굴의 발견은 진상규명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최근 주차장과 굴 입구까지 올레길처럼 길을 냈다. 주변 다랑쉬오름과 용눈이오름 등 오름을 오르기도 좋다. 조천읍 선흘리 동백동산에 있는 목시물굴과 반못굴도 철문으로 막혀 있지만 접근이 어렵지 않다.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그 시국 때는 흉년에다가 젖먹이까지 딸려 있으니까, 내가 안 먹어 젖이 안 나오면 새끼가 죽을 형편이니 할 수 없이 닥치는 대로 먹었지만. 하지만 살 만해진 다음부터는 이날까지 한 점도 안 먹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개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소설 속 바닷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구절이 생각나면 정방폭포 인근 ‘정방 4·3 희생자 위령 공간’을 찾아 둘러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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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시 정방폭포 일대 서귀포 해안은 한라산 남쪽을 말하는 ‘산남지역’ 최대의 학살터였다. 정방폭포에서 학살된 4·3 희생자는 최소한 255명. 이 가운데 89명의 주검은 찾지 못했다. 정방폭포는 물줄기가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 주검들은 바다에 실려 갔다. 4·3 유족 김연옥씨는 이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동생 등 온 가족 6명을 잃었다. 부모가 파도에 실려 간 바다의 생선을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김씨는 “바다에서 시신도 못 찾았는데 차마 고기를 먹을 수는 없었다”며 ‘그날’ 이후 지금까지 바닷고기를 먹지 않는다.

제주 4·3 당시 비극을 품은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 백사장.
“P읍에 있는 국민학교에 한 달간 수용돼 있다가, 지금 해수욕장이 된 백사장에서 12월에 모두 총살됐어.” 그 백사장은 표선 백사장이 아닐까.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는 광고의 무대가 되는 표선 백사장은 ‘학살’이라는 용어와는 대조되는 곳이다. 학살터는 표선해수욕장과 맞붙은 한모살이라는 곳이다. 2005년 4월 제주민예총이 주관한 4·3 생존자와 유족들을 위한 해원상생굿이 열려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 백사장과 야자수 나무 사이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다. 지금은 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서고 제주올레 코스가 지나는 곳, 표선해수욕장에서 비명에 간 이들을 생각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순이삼촌 문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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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매가 마을로 돌아왔을 때, 시신들은 국민학교 운동장이 아니라 교문 건너 보리밭에서 눈에 덮여 있었어. 거의 모든 마을에서 패턴이 같아. 학교 운동장에 모은 다음 근처 밭이나 물가에서 죽였어.” 이 문장에서는 1949년 1월17일 제주시 조천읍 북촌초등학교에서 일어났던 떼죽음이 생각난다. 300여 명이 한날 죽은 마을 북촌리는 소설가 현기영의 작품 ‘순이삼촌’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곳 북촌초등학교 한구석에는 ‘제주 4·3 북촌 주민 참사의 현장’이라는 비석이 있다. 주변에는 너븐숭이 4·3기념관과 ‘순이삼촌’ 문학비도 있다. 비극과 어울리지 않게 예쁜 마을이다. 북촌마을을 걸으면서 그날의 북촌을, 고난에 찬 삶을 살았던 이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소설 속 인선의 어머니 정심은 평생 4·3 때 예비검속돼 행방불명된 오빠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4·3 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고 육지 형무소로 끌려간 제주도민은 최소한 2530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돌아오지 못하고 한국전쟁 발발 뒤 처형됐다. 제주에서도 예비검속돼 많은 이가 수장되거나 학살 암매장됐다.
제주의 예비검속 역사를 알려면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섯알오름 학살터에 조성된 위령비와 이곳에서 학살된 이들의 유해를 안장한 백조일손 묘역을 둘러보기를 권한다. 묘역 내에 2024년 8월 만든 백조일손 역사관에서는 당시의 예비검속 역사를 되새길 수 있다. 또 이 일대는 일제 강점기 제주도민들의 강제동원 숨결이 묻어 있는 일본군 전적지도 널려 있어 제주의 근현대사를 볼 수 있다.
한 곳만 간다면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방문을 권한다. 공원 내 위패봉안실의 1만5천여 기에 이르는 위패와 4천여 기의 행방불명인 표석 앞에서는 잠시 숨을 멈추게 된다. 평화기념관에서는 4·3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4·3 단체 관계자는 “한강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4·3 작품들을 찾아 읽으면서 문학기행을 통해 비극의 역사에 접근하고 제주 땅의 의미를 찾아보는 기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한겨레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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