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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밀어주는 사람 아니 사회

등록 2023-09-22 23:14 수정 2023-09-26 13:01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얼마 전 커뮤니티에서 글을 보고 싸늘해졌습니다. 다시 찾을 수가 없어 기억을 복원해 적습니다.

“제목: 님들아, 혼자 사는 사람 냄새나는 거 다 이 때문이다

본문: 다들 여기서 냄새가 날 거야, 라며 이쪽저쪽 구석구석 닦아보지만 실제로 냄새나는 곳은 따로 있다. 지금 목 아래 등 부분을 손으로 닦은 뒤 냄새를 맡아보라.”

바로 그 부위가 혼자 사는 사람들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곳에 손이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피지 속 지방산이 산화하며 만들어지는 노넨알데하이드가 모공에 쌓이면서 냄새를 유발한다고 합니다. 더 찾아보면 등에는 피지선이 많이 분포됐는데 피부 각질층이 두꺼워 피지 배출도 어렵다고 합니다.

목욕탕에서 등 밀던 파란만장한 역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추석은 목욕탕 가는 계절로 진입했다는 신호입니다. 추석 전날 새벽이면, 바구니에 수건을 넣고 아직 해도 뜨지 않은 길을 눈을 비비며 엄마 뒤를 따라 걷습니다. 탕 속에 1초도 못 있겠는데 엄마는 천천히 100 셀 때까지 있으라고 합니다. 바로 100을 세고 튀어나오면, 때가 불었는지 손끝으로 밀어보던 엄마는 ‘불합격’ 신호를 내립니다. “100개 더.” 몸을 다 밀어주던 시절이 지나, 자라게 되면서 등만 밀어주셨습니다. 어느 때든 엄마의 등은 내가 직접 밀어드려야 했습니다. 밀다보면 “왼쪽 아래, 좀더 밑에” 등의 지시를 내리곤 했습니다. 엄마 등을 보며 이 넓은 등을 언제 미나 했던 게 생각납니다. 그에 반해 등이 밀리는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내 등이 밀리려면 남의 등을 미는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겪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고향을 떠나 대학교가 있는 곳으로 간 뒤, 어느 해 들어온 대학 후배가 ‘때를 미는 세대’와 ‘안 미는 세대’로 구분하는 걸 듣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떤 목욕탕에 있던 등밀이 기계도 떠오릅니다. 기계에는 이태리타월을 씌운, 튀어나온 부위가 있습니다. 동전을 넣으면 이 튀어나온 부위가 뱅뱅 돌아갑니다. 거기에 등을 대고 문지릅니다. 어중간하게 높이가 낮아서 무릎을 굽히고 등의 모든 부위가 기계의 타월에 밀리도록, 본전을 뽑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목욕탕 옆에 앉은 사람과 품앗이할 수 있지만, 생판 모르는 사람과 등을 교환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우연히 앉은 옆 사람이 ‘때를 미는 사람’(후배 때문에 알게 된 인간 분류법)인지 관찰해야 하고, 적절한 순간을 노려야 합니다. 방심하다가, 그 사람이 샴푸질을 하면 끝입니다.

그런데 요즘 누가 서로 등을 미나요? 이제는 본격적인 ‘등밀기 자본주의’ 시대입니다.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는 거지요. 지난봄 목욕탕을 그만 가야 하는 때가 되어, 세신사에게 ‘등만 얼마인가요?’ 물어봤습니다. 세신사분은 “1만5천원, 다 밀면 2만5천원이니까, 그냥 다 밀어” 합니다. 이미 민 게 아까워 다 밀기는 그렇고, 등만 밀기에는 돈이 아까워 밀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나왔습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서로 등 밀어주는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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